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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Oct 28. 2024

커피 그놈의 커피

47문장

근래 커피가 대중의 인식 속에 깊게 박힌 건 아마 2010년 언저리 스타벅스 널리 알려진 시기 즈음일 것이다. 사실 그 당시 스타벅스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했다. 매장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무언가 그 허세 부리는 이미지, 당시 된장녀라는 워딩과 궤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굳건히 살아남았다. 십수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크게 오르지 않은 커피값덕에 오히려 요즘엔 가성비가 좋다는 평을 받는다. 엄청나게 늘어난 매장수, 카톡 선물함에 흔히 보이는 기프티콘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전 국민들이 커피를 자주 맛보고 각자의 취향도 생긴 나머지 더 이상 스타벅스 커피의 맛을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으로 내세우는 경우는 드문듯하다.


나 역시도 일을 하기 전 커피에 대해서 그리 좋은 인식을 갖지 않았다. 술에 대한 논리와 마찬가지로 '아니 맛있지도 않을걸 왜 그렇게 마셔대는 거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용고시에 매진하던 시절 도서관 1층 카페에서 1500원짜리 카페라테 한잔을 마시며 즐기던 그 작은 여유로 그 생각은 바뀌었다. 커피가 주는 맛의 깊이도 조금씩 느낄 수 있었고 카페인 각성효과가 주는 에너지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하며 목격한 바로 직장인들은 그야말로 커피에 미쳐있다.


커피를 먹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일단 매장에서 사 먹는 방법. 사 먹는 커피는 분명 가성비가 좋다고는 못한다. 저렴한 커피 브랜드도 많이 있지만 우선 구매자가 직접 움직여야 하고 계속 커피를 사 먹다 보면 싼 커피만 먹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 동안 사 먹으면 그 지출 금액이 꽤 크다. 물론 카페에 머무르며 각자에 맞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비용이 또 그리 비싸지만은 않겠다. 그리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먹는 방법. 이것 역시도 몇 가지로 세분화된다. 커피 믹스로 마시는 코리안 트레디셔널 방법, 드립백으로 먹는 방법, 원두를 갈아 내려먹는 방법, 커피머신을 이용하는 방법 등 어찌 보면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는 결과행위보다 이 커피와 수반된 풍부한 프로세스 자체에 더 관심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이 중 내가 가장 낯설었던 방법은 로스팅한 원두를 구매하여 기계로 갈아낸 뒤 거름종이에 두고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려먹는 드립 방식이었다. 현재 내가 있는 교무실에서 가장 주력으로 커피를 먹는 방법이며 그로 인해 나도 최근에야 친숙해졌다. 이 방식은 맛은 둘째치고 그 과정이 참 낭만적이다.


커피를 먹고 싶으면 슥 테이블로 간다. 거기에는 커피원두를 담아둔 병, 그라인더, 커피포트, 드리퍼 세트, 거름종이가 있다. 누군가가 내린 커피가 없으면 내가 내려야 한다. 잠시 멍 때린 뒤 일단 커피포트를 들어 정수기에 물을 받기 시작한다. 물을 받고 끓이는 동안 다른 작업을 하며 시간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원두를 그라인더에 간다. 나는 두 종류 이상의 원두가 있으면 내 멋대로 섞어 블렌딩을 한다. 그리고 거름종이를 펼쳐 곱게 갈린 가루(원두 따라 곱지 않기도 한다)를 담고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그 위로 붓는다. 봉긋 올라오는 크리미 한 커피 거품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겁다.


솔직히 내리고 마실 커피 자체가 그리 기대되지는 않는다. 그냥 그 과정자체가 흥미롭다. 그리고 내린 커피에 적당량의 물을 부어 간을 맞추거나, 나의 경우 내린 원액에 카누 가루를 조금 섞어 진하기를 맞춘 다음 우유나 두유, 얼음을 넣고 라테를 자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맛은 꽤 괜찮다.



얼마 전 학교에서 교무실 별로 커피머신을 구매해 주었다. 40만원 가량의 필립스 커피머신인데 배송이 온날 얼른 탁자 위에 설치하여 앞으로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겠싶었다. 교무실 선생님 모두가 기계 앞에 모여 웅성웅성 이 버튼 저 버튼 눌러가며 커피 내리는 방법을 공유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 커피머신에 대한 평은 하나로 수렴했다.


'맛없다'


급기여 오늘 아침, 한 선생님께서 창고에 넣어둔 그라인더를 다시 꺼내고 말았다.

그렇지, 커피에는 역시 낭만 한방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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