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으로 이사와 첫 보금자리를 틀었던 곳은 예테보리 외곽의 어느 부촌, 지금은 은퇴한 수의사 부부가 별채로 소유한 30 제곱미터 짜리 복층 집이었다. 집은 조용하면서도 편의시설이 가까워 생활하기 좋은 동네에 있었다. 그 동네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 키우기 좋아 많이들 이사 오는 신흥 부촌이라 집값이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좋은 동네라 한들 30 제곱미터 복층 집에서 살아가는 이의 생활은 불편할 뿐이었다. 요리를 하면 침대가 있는 다락으로 냄새가 올라왔고, 작은 옷장의 옷들에도 음식 냄새가 배기 일쑤였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뜨거운 공기가 집안으로 퍼져 벽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해 집주인이 제습기를 사다 줄 정도였다. 밥을 먹는 식탁에서 재택근무를 했고 그곳에 앉아 저녁엔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했다. 정신적 퇴근을 위해 일을 마치면 랩탑을 서랍에 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내 중심가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월세였지만 성인 2명이 생활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은 집이었다. 이사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차라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웨덴 살이 1년 차, 본격적으로 집 매물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월세만 전전하는 삶을 벗어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한 이십 대를 보내면서, 언제나 마음속 꿈에 그리던 집이 있었다.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동화 같은 집,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마음속 스케치북에 어여쁜 집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그 위에 현실적인 조건들을 덧대며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만족시켜줄 집을 찾기로 했다.
1. 차도와 거리가 멀어 조용하고 자연과 밀접한 동네여야 한다.
2. 이웃집과의 거리가 적당히 확보되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3. 가드닝을 할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4. 방이 최소 2개는 있어야 한다.
5. 직장 출퇴근 거리가 최대 1시간-1시간 반 사이어야 한다.
6.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7. 마트 및 편의시설이 멀지 않아야 한다.
8. 동거인과 나 둘 중 한 명의 수입이 갑자기 끊기더라도 은행 대출을 갚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집값이어야 한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골 동네의 넓은 집은 집값은 좋았으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불가능하거나, 대중교통 이용이 쉽고 집의 상태가 좋으면 비딩(경매)을 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훌쩍 넘어갔다. 사람들 보는 눈은 결국 모두 비슷해서 내가 보아 마음에 들면 다른 이들도 그 집을 갖기 위해 안달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사를 가고 싶다는 열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적당한 집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자 나중엔 허물어져가는 폐가를 보고도 매매를 하고 싶어졌다. 나에게 마음에 드는 집이 동거인의 마음에 들지 않아 신경전을 벌이는 날도 있었다.
집을 보러 다닌 지 어언 1년이 되어갈 즘 여름휴가의 끝자락에 새로운 매물을 발견했다. 동거인은 심드렁하게 보며 관심이 영 없다는 투였다. 이사할 집을 못 찾아 안달이 난 건 나였기에 이미 비딩이 끝났지만 아직 사인을 하지 않은 그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려 포장도로에서 비포장도로로 빨려 들어가는 직은 동네였다. 길 옆으로 펼쳐진 들판에는 말들과 양이 풀을 뜯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십 미터는 훌쩍 넘을 큰 나무가 마당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다. 경사진 마당을 따라 올라가 집 앞에 이르자 연세가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셨다. 65 제곱미터의 그 작은 집은 노부부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는 집이라 했다.
오밀조밀 작은 집에 없는 것이 없었다. 작고 아담한 주방, 작은 거실, 작은 티브이 룸, 침실, 샤워실, 화장실, 게스트룸. 이 작은 집에 이 모든 것이 들어차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고양이를 키우는 할머니의 취향을 따라 벽에는 고양이 사진과 그림이 많이 걸려있었다. 작은 집인데도 구획을 잘 나누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점이 좋았다. 땔감을 모아놓은 창고가 바깥에 있었고 집을 직접 뜯어고치는 걸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위한 작업실도 따로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바깥에서 집을 보면 꽤나 우스꽝스러운 형상을 한 집이었다. 침실 문은 싸구려 접이식 미닫이문이라 방음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나누어 놓아 공간적으로 굉장히 협소했다. 거실로는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운 면이 없잖아 있었고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는 집이라 땔감 창고 옆에 두고 쓰는 세탁기는 겨울에는 물이 얼어 작동이 안 될 거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집을 나와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창고와 워크숍, 손님방으로 쓰이는 별채도 구경했다. 바위가 많아 울퉁불퉁한 땅이었지만 나무와 꽃들이 무수히 자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할머니는 마당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에서 열매를 따다 몇 알 나눠주셨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블루베리 맛에 기분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숲을 뒤로 끼고 있는 집 앞으로는 넓은 마당이, 그리고 그 마당 끝엔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이웃집이 보였다.
멋스러운 집은 아니었으나 개성 있는 집이었다. 엉성하고 부족한 부분은 많으나 펑키하고 말괄량이 같은 느낌이 매력적인. 그 느낌에 반해 65년 된 65 제곱미터의 집을 사기로 했다. 이렇게 내게도 집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