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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웨덴 시골집 Dec 31. 2021

누가 봐도 내 집 같은 집

스웨덴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  집에서의 마지막 여름과 가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던 이유에선지 집주인 노부부는 가을이 찾아온 10월에야 집을 비워주기로 하셨다.  주변의 숲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10월이 되어 키를 받았다. 아기자기하고 포근함이 매력적이었던 첫인상과 다르게 부동산과 은행 서류를 처리하고 다시  집은 당장  몸과 짐을 들고 들어가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깨끗이 청소된  집으로 들어서자 비스닝을 했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벽한 집은 아니었다.


 미적 감각을 뽐내기보다 실용성을 더 추구했던 할아버지의 취향 때문이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에는 의문이 가고 성가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건을 걸기 위해 벽에 박아둔 무수한 못 들. 방이면 방마다 붙어있는 온도계와 시계. 집으로 들어서는 현관문 바로 옆에 걸린 시계, 할아버지가 직접 공사한, 작은 방의 기울어진 바닥, 딱 들어맞지 않는 부엌 상부장과 상부장 사이의 빈 공간, 보는 사람의 머리마저 복잡해질 정도로 벽 위를 얼기설기 오가는 전선들, 벽을 부수고 설치한 에어컨, 설치 후 보수를 하지 않아 깨어진 채로 유지된 부엌의 창틀 상태. 문이 없는 침실, 비율이 이상하거나 애매한 위치에 달린 창문들까지.

헌 집이면서도 내게는 새집이기도 한 시골집으로 이사 가기 전, 가장 급한 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거실과 티비룸 사이의 벽을 허물어 거실로 들어오는 채광 확보하기. 벽지 뜯고 도배, 페인트칠 하기, 화장실과 샤워실 사이 벽 허물고 공간 넓히기, 세탁기와 건조기 설치를 위한 화장실 리모델링, 부엌 하부장 뜯어 식기세척기 설치하기. 스웨덴의 높은 인건비 탓에 지출이 컸지만 사람답게 살려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손을 보고 나머지는 살아가며 손을 보기로 했다. 굵직한 작업들을 끝내고 새 소파를 들이자 70년대에 머물러 있었던 공간이 조금은 젊어지고 화사해졌다.


 시골집으로 이사 오면서는 나의 20대를 뒤흔들었던 니어링 부부의 책 조화로운 삶을 다시 손에 잡았다. 그리고 책에서 발견한 문장.


집의 생김새는 거기에 사는 사람을 표현해야 하고, 그 집으로 집주인을 알 수 있어야 한다. ...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말해준다. - 조화로운 삶


무릎이 탁 쳐지는 구절이었다.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닮아있거나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거칠고 투박한, 어찌 보면 의문을 자아내는 구석이 많은 집이, 실은 할아버지의 수수한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노부부의 취향이 이해가지 않는다면서도 그런 모습에 이끌려 이 집을 받아들인 나 역시 어쩌면 노부부와 비슷한 결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언제나 정장보다는 청바지가, 구두보다는 운동화가, 셔츠보단 맨투맨 티가 더 좋았던 나니까.


 그래도 그렇게 많은 못을 벽에 박았어야 했냐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을 뽑아대는 작업은 빼놓을  없었다. 못을 하나하나 뽑아낼 때마다, 시계를 떼어낼 때마다 속이 후련해졌다. 아직도  봐야  곳이 많은 만큼, 수십   집에  붙이며 살아온 노부부의 취향을 빠르게 지워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흔적을 모두 지워내는 것도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있는 것이라곤 하루하루 부지런히 나의 취향을 담아 공간을 가꾸어나가는 것일지도. 그래서  다른 세월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나를 닮아있는 집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하며.


다락에서 발견한 집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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