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 이 집에서의 마지막 여름과 가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던 이유에선지 집주인 노부부는 가을이 찾아온 10월에야 집을 비워주기로 하셨다. 집 주변의 숲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10월이 되어 키를 받았다. 아기자기하고 포근함이 매력적이었던 첫인상과 다르게 부동산과 은행 서류를 처리하고 다시 본 집은 당장 내 몸과 짐을 들고 들어가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깨끗이 청소된 집으로 들어서자 비스닝을 했을 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벽한 집은 아니었다.
미적 감각을 뽐내기보다 실용성을 더 추구했던 할아버지의 취향 때문이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에는 의문이 가고 성가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건을 걸기 위해 벽에 박아둔 무수한 못 들. 방이면 방마다 붙어있는 온도계와 시계. 집으로 들어서는 현관문 바로 옆에 걸린 시계, 할아버지가 직접 공사한, 작은 방의 기울어진 바닥, 딱 들어맞지 않는 부엌 상부장과 상부장 사이의 빈 공간, 보는 사람의 머리마저 복잡해질 정도로 벽 위를 얼기설기 오가는 전선들, 벽을 부수고 설치한 에어컨, 설치 후 보수를 하지 않아 깨어진 채로 유지된 부엌의 창틀 상태. 문이 없는 침실, 비율이 이상하거나 애매한 위치에 달린 창문들까지.
헌 집이면서도 내게는 새집이기도 한 시골집으로 이사 가기 전, 가장 급한 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거실과 티비룸 사이의 벽을 허물어 거실로 들어오는 채광 확보하기. 벽지 뜯고 도배, 페인트칠 하기, 화장실과 샤워실 사이 벽 허물고 공간 넓히기, 세탁기와 건조기 설치를 위한 화장실 리모델링, 부엌 하부장 뜯어 식기세척기 설치하기. 스웨덴의 높은 인건비 탓에 지출이 컸지만 사람답게 살려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손을 보고 나머지는 살아가며 손을 보기로 했다. 굵직한 작업들을 끝내고 새 소파를 들이자 70년대에 머물러 있었던 공간이 조금은 젊어지고 화사해졌다.
시골집으로 이사 오면서는 나의 20대를 뒤흔들었던 니어링 부부의 책 조화로운 삶을 다시 손에 잡았다. 그리고 책에서 발견한 문장.
무릎이 탁 쳐지는 구절이었다.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닮아있거나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거칠고 투박한, 어찌 보면 의문을 자아내는 구석이 많은 집이, 실은 할아버지의 수수한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노부부의 취향이 이해가지 않는다면서도 그런 모습에 이끌려 이 집을 받아들인 나 역시 어쩌면 노부부와 비슷한 결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언제나 정장보다는 청바지가, 구두보다는 운동화가, 셔츠보단 맨투맨 티가 더 좋았던 나니까.
그래도 그렇게 많은 못을 벽에 박았어야 했냐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을 뽑아대는 작업은 빼놓을 수 없었다. 못을 하나하나 뽑아낼 때마다, 시계를 떼어낼 때마다 속이 후련해졌다. 아직도 손 봐야 할 곳이 많은 만큼, 수십 년 이 집에 정 붙이며 살아온 노부부의 취향을 빠르게 지워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흔적을 모두 지워내는 것도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루하루 부지런히 나의 취향을 담아 공간을 가꾸어나가는 것일지도. 그래서 또 다른 세월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나를 닮아있는 집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