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개조하여 만든 거대한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여행하듯 살아가는 70대 할아버지, 10년째 여행을 하며 산다는 유럽의 여행자들, 캐리어가 아니라 60리터 배낭을 메고 다니는 이들, 번듯한 승용차가 아니라 흙먼지를 뒤집어쓴 벤과 고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게 디폴트인 삶, 화려하진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행자들을 만나다 보면 나도 그리 살 수 있을 거라 믿게 된다. 나 역시 나이를 먹어도 그렇게 부유하며 물 흐르듯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의 삶을 살 거라 생각했다. 그리 큰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그렇게 살아 봤고 그렇게 사는 게 먼 미래에도 가능하리라 믿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지독한 장기 여행에서 돌아와 어딘가 배낭을 내려놓고, 나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는 텐트의 흙을 털어 정리할 수 있는, 비와 땀에 젖은 옷을 빨아 널 수 있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달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착에 대한 갈망은 여행과 여행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안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어차피 어딘가 정착해 살거라면. 가난했기 때문에 돈이 싫었고 돈이 싫어서 자본주의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 나라, 저 나라의 커뮤니티를 방문하기도, 살아보기도 했다. 방황 끝에, 결국 내가 해야 할 것은 시골에서 니어링 부부처럼, 소로처럼 살아가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50대 작가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땐 나 역시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보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어디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농사지어서 살면 참 좋겠다’ 20대의 나에게 니어링 부부의 삶은 꿈이자 해답이었다. 시골집으로 이사 오며 다시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꺼내 읽었다. 20대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니어링 부부는 100퍼센트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여 팔아 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어왔다는 것.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감자는 스웨덴에서도 재배가 쉽다. 스웨덴의 큰 명절, 미드썸머가 되면 테이블엔 언제나 그 해 재배된 햇감자가 연어와 함께 올라온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감자는 나에게 쌀과 같은 존재인 것. 스웨덴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겠다며 감자를 키워 허구한 날 먹어도 쫀득하고 달달한 흰 쌀밥이 주는 만족감은 절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결국 햇감자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열에 한 번은 흰 쌀밥을 먹고 말 한국인이라는 사실. 그래서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다면서 결국 마트에 들려 쌀을 사고 말 것이 눈에 훤하다. (쌀 재배 자체가 어려운 스웨덴에서 물물교환으로 직접 재배된 쌀을 구하기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20대의 나였다면 인정하기 싫었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돈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고 내가 돈을 좋아한다는 것을. 쌀을 사 먹을 때뿐만 아니라 주말이면 사먹는 구디스 (스웨덴에서 젤리, 사탕류를 부르는 말), 문화생활을 할 때 필요한 입장료, 관람료는 또 어떻고.. (내가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라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돈은 지속 가능한 삶, 대안적인 삶, 자급자족의 삶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니어링 부부가 군것질을 하기 위해 단풍나무 시럽을 팔아 돈을 번 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지만 않는다면 니어링 부부에게 돈이 그랬듯,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돈을 거부하는 마음이 아니라 돈에 기대어 살지 않기 위한 밸런스를 찾는 것이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