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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Aug 15. 2022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베른하르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나는 한 막사를 응시한 뒤 눈을 감고서 막사들을 줄을 지어 배치했다. 나는 한 막사의 치수를 측정한 다음, 안내 책자를 근거로 막사 안의 빽빽한 주거 밀도를 계산하고서 그 비좁은 형상을 상상해보았다. 나는 막사들 사이의 계단이 동시에 점호대로 사용되었음을 알아내고 수용소를 아래쪽에서 위쪽 끝까지 올려다보면서 줄을 지어 뒤로 돌아서 있는 수감자들의 등들로 그 계단을 채워보았다. 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비참하고 부끄러운 느낌뿐이었다.     


- 베른하르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이래, 2004, p166~167.





배터리 케이지*          




이곳은

A4 용지 2/3 크기죠  

   

야성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안락을 온전히 품을 수도 없이    

 

오늘을 살아요     


여기는 잠속이 좁고 어두워

어항 속 물고기가 되는 꿈을 꾸죠

슬픈 날개와 지느러미

다시 갇히는 세계와 멀어지는 방향     


죽음을 탐색해도 될까요

동족의 날개 밑 온기를 쪼아도 될까요     


의심 없이

반성 없이     


본능은

가끔 깨집니다     


모성이 우글댑니다     


달이 차지 않아도 무럭무럭 태어나는

무정한 것들은

어디로 굴러가서 바깥이 되나요?     


아무도 모르게

내가 독백을 숨겨놓았는데  

   

달걀 생산 방식 중 하나로 좁은 공간 안에 닭 6~8 마리를 집어넣는 구조물          


- 김네잎, <<작가들>>, 202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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