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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Jun 27. 2023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다윈이 거기 있을 것이라 약속했던 땅분기 학자들이 볼 수 있었던 땅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더 풍요로운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을.

 

룰루 밀러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 P257.          






동물행동학자 K       




             

드디어 도착한 극점은 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어둠 없는 밤이 시작되었다

빛의 혼돈   

  

펭귄이 줄줄이 태어났다 다 같이 검고 다 같이 흰 부모와 새끼들, 날씨는 가장 공평한 방식으로 생존을 궁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해가 지지 않거나 해가 뜨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점점 더 깊숙이 잠수하는 펭귄에게 위치기록계를 달았다 아무거나 먹지 마 일주일 치 한꺼번에 털어 넣지 마, 이런 당부는     


펭귄에게 한 걸까 K 자신에게 한 걸까     


가끔 기지로 가는 길을 잃는다 똑바로 걷는데 늘 한쪽으로 뱅뱅 돈다 사람마다 더 무거운 쪽이 있다     

환장하게 환한 밤이 감옥 같아서 K는 펭귄보다 더 먼저 멸종을 택했을 거다     


K가 남긴 기록장을 읽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위해 맨 앞장부터 읽었다      


깃털이 좌우 대칭인 새는 날지 못한다 뜨는 힘이 발생하지 않으니까, 펭귄도 마찬가지였다 좌우가 다른 나는 언젠가 빙봉氷峯에 올라가 비행을 시도해 보려 한다   

  

위치기록계를 달고 떠난 펭귄은 k에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김네잎, 《P.S시와 징후》2023 여름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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