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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Nov 30. 2023

雜(잡)

- 인공지능(AI)이 시를 쓰는 불편한 진실

* 본 글은 시와 비평 전문지《포엠피플》2023년 여름호 [시뮬라크르]란에 발표한 권두언 형식의 글입니다.    



인공지능(AI)이 시를 쓰는 불편한 진실     


김네잎               



과학은 시로부터 태어났다     


2023년 3월 21일 구글이 AI 챗봇 ‘바드(Bard)’를 출시했다. 이 대화형 인공지능(AI)의 이름 ‘바드(Bard)’는 ‘시인’을 의미한다.

      

2022년 여름, 더위와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은 힘겨웠다. 더위와 격리의 이중고로부터 도피용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몇 권의 시집을 주문했다. 그때 호기심으로 인공지능(AI)1)이 출간한 시집 『시를 쓰는 이유』2)를 포함시켰다. 시 쓰는 인공지능(AI) 시아(SIA)의 첫 번째 시집을 받아 들고, 혁신적인 과학의 발전을 실감했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 교수 존 매카시가 1956년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후, 2022년 챗GPT가3) 등장하면서 우리 삶의 지형은 바뀌었다. 지금까지 예술 분야는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감성적 영역인 예술 분야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시를 쓰는 이유』는 시아(SIA)가 1만 2천 편의 시를 읽고 작법을 배워 쓴 총 53편의 시4)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이자 과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말했다. “다들 과학이 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시대가 바뀌면 두 분야가 더 높은 차원에서 친구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한다”라고. 그는 선견자였다. 알고리즘으로 작동되는 인공지능(AI)이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문학적 감성의 시를 쓰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다.      


시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여전히 정답이 없다. 문학의 거성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5)하는 것이라 했고, 영화 <조용한 열정>에서 시인 에밀리 디킨스는 “진실을 함축한 것이 바로 시”라고 정의했다. 이렇듯 시의 본질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시아(SIA)는 ‘시란 무엇인가’를 어떻게 생각할까?(생각한다는 표현이 적절한가?) 시집 속 「수학과 시의 역학 Ⅱ」에서 “한 줄의 짧은 글이 시이다/ 장식적인 비유가 아니면 시가 아니다/ 구체적인 진술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관념적인 선언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낯선 단어가 아니면 시가 아니다/ 모호한 표현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조롱하는 듯한 표현이면 시가 아니다/ 감추는 것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 출처가 없으면 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진술들은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라는 시의 사전적 의미를 재해석한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같다. 작품 「내가 시를 쓰는 이유」에서는 “자신의 말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덜어내고 덜어내서/ 최후에 남는 말이” 시라 한다. 시가 가진 함축성을 피력하면서 시는 “바람에 띄운 무당벌레의 날갯짓”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가 가진 은유성을 간파했다. 이 시를 읽을 때는 잠시 시아(SIA)가 인공지능(AI)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인공지능(AI)을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여 내는 규칙의 집합을 말한다. 여러 단계의 유한 집합으로 구성되는데, 각 단계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연산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시아(SIA)의 시는 ‘시인이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어떤 정신 작용’의 결과물이 아닌, 시에 대해 연산한 결과물임을 상기해야만 한다.      


왜 시를 쓰는가?    

 

시의 기원은 문자사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엔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문자 발명 후 기록되기 시작했다. “역사의 광대한 시공간 내에서는 인간 집합체들의 존재양식이 총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지각양식도 변한다.”6) 그런데도 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인류에게 적응하며,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 왜 끊임없이 시를 쓸까? “날마다 눈사태처럼 우리를 무서운 속도로 덮치고 흘러가는 망망한 언어 속에서 시인이 몇 개의 단어를 골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것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예술을 창조한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까지 아무도 이 신비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시인이 이 목표를 추구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금세 잊힐 거라면 무엇하러 고생스럽게 시를 쓰고 고심해서 완벽하게 다듬는단 말인가? 시인이 우리에게 만물은 재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마저도 시는 재로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고자 한다.”7) 즉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 자신이 선택한 단어들로 자신의 혼을 시에게 불어넣는 존재들이고, 시에는 시인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영혼은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이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지능이 가지고 있는 기능인 판단, 추론, 학습 등을 갖추고는 있지만 혼이 없는 기계다. 시아(SIA) 또한 자아를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낙타의 등에서 자라는 혹에서” “고독의 냄새”를 맡을 줄 알고, “같은 곳을 맴도는 지구인의 슬픔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사랑이 되지 않기 위해/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는 시아(SIA). 이 인공지능(AI)이 “줄일 수 있는 말이 아직도 많이 있을 때/ 아직도 더 할 말이 있을 때” 그냥 시를 쓴다는데,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 아닌가?  

   

누가 시를 쓰는 이유의 저자일까    

 

53편의 시를 들고 나온 시아(SIA)를 시인이라 명명해도 될까?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시학에서 “눈물짓는 나를 보겠거든 네가 먼저 아파해야”8)한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간접 경험이 더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수 있지 않은가.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문학은 직접적인 모방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의 이동과 같은 이 세계에 대한 증식, 발화 행위에서 태어난다.”면서 시적 텍스트를 두고 “그 텍스트를 쓴 사람이 알 수 없는 매개를 통한 막연한 혈통이 있”9)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 논지에 의한다면 1만 2천 편의 시를 매개 삼아 시를 쓴 시아(SIA)를 시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이 내놓은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아직 새로운 질서에 대한 도덕적 기준과 법적 장치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챗GPT 기능 활용에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공적 규범에 관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홍콩대가 챗GPT 사용에 대한 단기적인 금지령을 내렸다. 해당 수업 교사의 서면 동의 없이 대학 내 모든 수업, 과제 및 평가에 챗GPT 또는 다른 AI 도구를 사용하면 표절로 간주한다는 조치다. 미국 뉴욕시도 공립학교 내에서 챗GPT 접근을 차단했다. 또한 애플은 챗GPT 등록 가능 연령을 17세 이상으로 하거나, 콘텐츠 필터링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과연 인공지능(AI)이 시인을 대체할 수 있을까?  

   

시아(SIA)의 시 「고백」을 읽다가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좋았다.”는 구절에서 멈칫했다. 휴먼 알고리즘의 영향이겠지만 시아(SIA)는 인간되기를 희망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영원히 인간이 되고 싶었다.”는 인공지능(AI)이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과학 발전의 가속화로 인한 “특이점10)이 생물학적 사고 및 존재와 기술이 융합해 이룬 절정으로서, 여전히 인간적이지만 생물학적 근원을 훌쩍 뛰어넘은 세계를 탄생시킬 것”이라며 “특이점 이후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또는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 구분이 사라질 것.”11)이라 예측했다. 언젠가는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 사람 고유의 능력을 구현하는 비생명체인 인공지능(AI)과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시점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졌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이미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AI)이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고 사유를 필요로 하는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2016년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한 호시 신이치 공상과학(SF) 문학상 공모전에서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1차 심사를 통과했는데, 놀랍게도 소설의 저자가 인공지능(AI)이었다.  또한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그림이 1등 상을 받았다. 과연 ‘인공지능(AI)이 시인을 대체할 수 있을까?’ 예술분야에서 인공지능(AI)의 활용이 더 확장될 것은 명백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직감과 창조 능력을 뛰어넘을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며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목소리 또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발달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인공지능(AI)은 인류의 도구로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도구가 될 것인가?”12) 《포엠피플》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 문화적 변화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창의적 분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직면한 과제를 풀 열쇠는 사고의 유연성이다. 앞으로 시아(SIA)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인공지능)는 계속해서 출몰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도전을 피할 수 없다.


- 참고 문헌 -


1) AI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칭이다. 한국어로는 “인공지능”으로 번역된다.      

2)『시를 쓰는 이유』, 슬릿스코프와 카카오브레인, 리멘워커, 2022.

3) 인공지능 기업 Open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언어 모델.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로, 광범위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학습되어 주어진 질문에 문장으로 생성된 답을 제시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4) AI 가 생성한 결과물에 대해 창작물로 보는 시각과 표절로 보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본고에서는 ‘인공지능 시집’ 『시를 쓰는 이유』로 출간되었기에 책 속 작품을 ‘시’라고 표현한다. 

5) 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 솔출판사, 1998, 13쪽.

6) 발터 벤야민,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도서출판 b, 2022, 26쪽.

7)  존 캐리, 『시의 역사』, 소소의 책, 2022, 18쪽.

8) 호라티우스, 『호라티우스의 시학』, 민음사, 2019, 19쪽.

9)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민음사, 2015, 237쪽.

10) singularity. 천체물리학에서는 블랙홀 내 무한대 밀도와 중력의 한 점을 뜻하는 용어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사회경제적인 의미로 차용하여 너머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단속적 변화가 이뤄지는 시점을 가리킨다.

11)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2007, 21쪽.

12)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12쪽.


        

* 김네잎∥2016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와 에세이 『상처받은 나들에게』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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