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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Feb 20. 2024

결국은 '밤양갱' 한 개였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이야.

(사진: 멜론, [밤양갱] 비비. 앨범사진)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을 때다. 멜론 랜덤 플레이로 흘러나오는 노래. [밤양갱]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아, 이토록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보았나. 역시 장기하의 음악 색깔이란. 수능 금지곡에 추가될 법하다. 혼자 웃으며 흥얼대다 갑자기, 불현듯, 불쑥 숙연해졌다. 아니, 이 경쾌한 노래를 듣다가 회상에 젖을 일인가. 그런데 온갖가지 추억이 그만 허락 없이 떠올라버렸다.

멜론, [밤양갱] 가사 캡쳐본

 20대의 풋풋한 연애 장면이 떠올랐으면 좋았을 텐데,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 생각나버렸다. 함께 있어도 외롭다고, 왜 더 내게 마음을 쏟지 않냐고 투정 같은 억지를 부렸던 때의 연애가 있었다. 떠올려보면 어리고 미숙했던 나는, 끊임없이 일방적인 애정과 관심을 갈구했다. 첫 사회생활에 치여서, 시험 준비에 전전긍긍이어서 마음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네가 바라는 만큼의 그런 모습이 될 수는 없어."


 이 말을 처음으로 들었던 날, 나의 연애는 이별을 향해 가고 있구나 직감했다. 망각의 힘일까. 그와 왜 다퉜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뒤였고, 돌아오는 길은 음악 대신 적막으로 가득했다는 것만 떠오른다.집으로 달리는 차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놀라울 만큼 별이 쏟아졌다는 것 정도만이 마음에 남았다. 하필 이럴 때에 이토록 아름다울 건 또 뭐람. 속상했다. 눈물이 흐르는 건 별이 너무 아름다워서였다고 기억하고 싶다.

 '내가 너무 지나친 마음을 바라는 걸까.' 자책과 고민에 괴로웠다. 머잖아 그와, 20대의 추억과 이별했다.


 "선생님,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했던데 보러 가실래요?" 

사랑에 대한 회의감에 뒤덮여 있을 때였다. '결국 연애가 다 그런 거지. 일이나 하자.'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달려온 사람이 있었다. 헤어지기 싫다고 아이처럼 우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렇다. 외모도 마음도 동그란 동그리였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거지? 좀 이상한 사람 아닌가. 왜 만날 때마다 결혼하자는 말을 하는 거지.' 

 처음엔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곧, 알았다. 감정에 솔직한 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 진짜 사랑은 있어. 지금의 이 사랑이 진짜의 사랑인 거야. 이제야 결혼할 사람을 만난 거야.'


 열렬히, 열심히, 절절하게 사랑했고 우리는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내 마음을 이해해 줄 한 사람과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아 참. 나도 피곤한데 바라는 것도 많아. 당신은 "

   "내가 뭘 그렇게 많이 바라는데? 어디 말해봐." 

 바라는 게 왜 그리 많냐는 남편의 투덜거림에 발끈한 나였다. 쓰레기 좀 버리고 와 달라는 말에 하는 볼멘 소리였다. 생각해보면 그리 심한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들불처럼 번진 서운함이 화르르 마음을 태웠다. 역시 상대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나. 이 사랑 역시 기대가 많은 내가 문제인 건가. 나의 마음이 상대를 힘들게 하는 건지. 끝없이 침잠해 가는 마음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하루를 보냈다. 생각은 이가 많은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녁 무렵, 신랑이 조용히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갔다.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로 봐서는 간식을 사러 가는 모양이다. 말 없는 배웅을 하고, 노트북을 켜서는 의미 없이 키보드만 뚱땅대고 있었다.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지금의 감정을 썼다간 욕설금지 조항에 걸리고야 말 테니. 작은 것에서 터진 마음이 수습되지 않았다. 원망도 자책도 아닌 이상한 감정으로 눈에 자주 물이 고였지만, 물티슈로 슥슥 닦아내며 괜찮은 척 나 자신을 속였다.

나의 [밤양갱]. 아몬드 초코.

 집에 들어온 신랑 손에 들린 따뜻한 라떼와 아몬드볼 초콜릿.

 "엄마, 아빠가 이거는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서 꼭 사야 된다 했어." 도담이의 말 뒤에,

 "당신 이거 좋아하잖아. 아까는 너 서운하라고 한 말 아니야. 기분 풀자 우리." 남편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내가 더 이상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게 끌어올려준 건, 대단한 위로도 조언도 아니었다. 그저 아몬드초콜릿 하나.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었다.  [밤양갱]의 가사처럼 상다리가 부러지고,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릴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상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누가 먼저 건네느냐의 문제.


 예전부터 나도 분명 알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정확히 전하지 않은 채, 그저 알아주기만을 기다려왔다. 굳이 남녀 관계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는 상대의 마음에 밤양갱 하나 건네며 위로할 줄 알았던가. 그냥 먼저 다가갔으면 됐을 걸.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지.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한 개만큼의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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