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잘 왔어, 사랑해.
2월 23일 새벽. 두 개의 편지를 썼다. 한 시간 여 써 내려간 글귀에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큰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비장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일이다. 내가 수술대에 오르는 날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첫째와 달리 우리 늦둥이 도동이는 엄마 뱃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다 본인이 결정한 포지션으로 딱, 자리 잡고 있었다. 아기의 머리가 명치에서 느껴지는 이 오묘한 경험을 하며 만삭을 보냈다. 30주, 32주, "혹시 모르니 기다려봅시다. 아기가 한 번쯤 더 휙 돌 수도 있으니까." 예견이었을까. 의사 선생님은 만삭까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넸다.
첫째 도담이도 잠시 역아 상태로 있었던지라, 그때의 경험을 살려 갖가지 방법을 써봤다. 고양이 자세, 물구나무 자세. 그러다 손을 명치에 대고 "도동아, 이제 한 바퀴 돌아볼까 우리?" 이런 혼잣말도 했다. 하지만 38주가 넘어서도 도동이는 역아 상태로 멈춰 있었다. 예상 몸집은 이미 3.5킬로그램을 넘겼다. 자연분만을 권장하는 병원이었지만, 담당의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려웠는지 수술을 권했다. 둘째는 그렇게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했다.
자연산 생일은 아니라지만, 이왕이면 좋은 날짜를 뽑아야지 싶어 용하다는 철학관에 찾아가 날짜를 받았다. 첫째를 친정엄마께 맡기고, 눈물의 이별을 했다. 이제 내 인생 마지막 출산을 위해 출발이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병원에 도착, 수술실 입성 전 마지막 초음파를 봤다. 이틀 전에도 봤지만 절차상 봐야 한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아, 이제 수술이구나. 그런데 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에 한참 말이 없던 의사 선생님. "와, 이런 거 또 오랜만에 보네! 도동이가 한 바퀴 돌아서 자세를 바꿨네! 자연분만으로 갑시다."
초지일관 역아였던 도동이가 수술날 자세를 바꾼 것이다. 반전의 아이. 역시 드라마틱한 아이다. 밥을 먹고 오라 해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어안이 벙벙한 첫째와 함께 식사를 하고 두 번째 이별식을 한 뒤, 가족분만실로 들어섰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동그리와 연신 웃었다. 수술 안 하고 자연분만할 수 있겠다! 기뻐하며 입장한 분만실. 둘째는 빨리 나온다는데, 출산하고 내일 회 먹어도 되려나? 웃으며 대화도 나눴다. 다가올 일을 까맣게 모른 채.
역시 내 인생에 거저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도분만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직감했다. 출산을 위한 도킹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하염없이 시간이 지났다. 촉진제도 소용이 없었다. 간호사분들이 힘들지 않냐 측은해할 정도로 운동을 하고,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조급해졌다. 출산이 더뎌서? 아니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이러다 실패하고 수술이라도 하면 도담이와 더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어쩐담. 아이는 전화로 연신 눈물을 글썽였다. 나의 출산보다 첫째가 느낄 상실감이 길어질까 애가 탔다.
가족분만실 입성 3일째가 되었다. 이제는 안 되겠다며 촉진제의 강도를 최대치로 올렸다. 하루만 더 시도해 보자고 했다. 드디어 숨도 쉬지 못할 고통이 시작됐다. 진행이 너무 더뎌 이대로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저녁이 되니 통증은 극에 달했는데 아이는 세상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저녁 8시쯤이었을까.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진다. 당직의에게 전화를 했다. 산모인 내 몸이 불덩이가 되기 시작했다. 38.5도 6.7.8. 촉진제의 강도가 너무 강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 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다.
72시간을 꽉 채운 시점이었다. 당직의가 달려와 제왕절개를 하잖다. 초음파를 봤더니 아이의 얼굴이 출산하기에 좋지 않은 포지션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이대로면 태어나다 질식할 위험이 크다했다. 내 귓가에 뜨거운 물이 흘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렸다. 도동이의 상태에 대한 걱정에다 3일을 보낸 허탈감까지. 결국 이렇게 아기와 나는 고생만 하다 수술로 만나겠구나.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마스크 틈으로 새어 나온 울음소리를 도동이가 들을까 꾹꾹 참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긴급 제왕수술을 위한 준비 시간이 30분 정도 걸린다 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뿐인가.
그때였다. 기진맥진한 마음으로 누운 내게 간호사 4분이 달려왔다. 3일 동안 오며 가며 인사도 나누고, 간식도 함께 나눠 먹던 분들이었다. 평소의 눈빛과 사뭇 달랐다. 흡사 간벤져스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산모님, 나 6년 동안 분만실 있으면서 엄마처럼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하는 분 못 봤어. 나 다음 당직 때는 만나지 말자 했잖아요. 왜 또 만났어. 맘 아프게. 이렇게 노력했는데 너무 허탈하지. 어때요. 수술팀 꾸려지기 전에 딱 20분 정도 있어. 한 번만 더 우리랑 노력해 볼래요?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마지막이야."
"흑흑흑. 네."
"그럼 지금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엄마, 울지 마요. 아기 힘들게 할 거예요?"
"아..니...요..."
꾸중 같은 격려를 들었고, 간호사 네 분이 내 곁에 붙어 섰다.
"남편분은 나가세요."
아기는 위험하다 하지, 아내는 열이 올라 정신이 없지. 이미 나보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동그리는 문 밖으로 쫓겨나고, 그때부터는 가족분만의 낭만? 르바이예분만? 그런 단어가 무색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됐다!!! 됐어!!! 아기 머리가 방향을 돌렸어. 당직선생님, 콜 해 빨리! 빨리!! "
달려온 당직선생님이 아기를 받았고, 도동이는 간벤져스와의 합작으로 태어났다.
"엄마 의지가 대단하네, 고생했어요! 축하해요! "
당직 의사분이 악수를 건넸다. 그렇게 가족분만실 입장 72시간 만에 태어난 아이. 수술 당일 방향을 바꾸어 기어이 자기 힘으로 나온 아이다.
2월 25일. 우리 도동이가 태어난 지 2년이 되었다. "엄마, 쥬아(좋아). 진짜 쥬아(좋아)" 하고 방실방실 웃는 너를 보고 있으면 그날의 고통과 힘듦은 한 조각도 남지 않고 행복만이 나부낀다. 그날은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아니라, 아주 특별했던 하루로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겠지.
우리 가족에게 잘 왔어.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고마운 도동아, 생일 축하해.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나온 것이리라. 세상 밖으로 나오느라 갖은 애를 쓰다 첫 울음을 목 놓는 걸지도 모르겠다. 모든 탄생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이상의 경이로움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태어났을 때 엄마가 너 못 생겼다고, 큰일 났다 한 거 사과할게. 매력으로 승부 보자.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