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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Mar 21. 2024

어린이집이라는 세계의 문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3월은 있다지만.

 3월이다. 새해가 밝은 것이다. 학생이거나, 학부모거나, 혹은 교사이거나. 교육의 언저리에 있는 모든 이에게 3월은 새해를 의미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존재하는 우리집의 3월은 설렘과 긴장이 남다르다. 올해는 그 두근댐이 배가 되었으니, 이유는 우리 집 늦둥이 도동이의 어린이집 입소 때문이다. 두 돌이 지나 세 살이 된 도동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이 끝도 없었다. 첫째를 싸고 키우다 못해 품고 지내다 어린이집을 패스했던 나였다. 대단하다와 유별나다의 어디쯤에 있었던 첫째의 육아였다.


 둘째라고 마음이 초연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아기 도동이는 첫째와 기질이 많이 다르고 호기심도 에너지도 왕성한 데다 생일이 빠른 편이라, 기관 생활에 잘 적응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매일 바깥놀이를 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밝은 도동이의 성격에 걸맞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입소를 결정했지만 첫 등원을 앞둔 일주일 전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 아직 너무 어린 도동이가 엄마와 떨어져 즐거울지, 필요한 표현을 선생님께 잘 전달할지. 고민만 하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 보내기로 한 이상 기관을 믿고 도동이의 힘을 믿어 보자.


 그날이 왔다. 첫 등원이다. 첫 주는 엄마와 함께 보내는 1시간. 교실에 들어가 장난감을 만지고, 놀이를 하며 공간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도동이는 즐거우면서 어리둥절하다. 내가 알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얼띤 모습이다. "내꺼! 내꺼!"가 입버릇인 아이가, 친구가 갖고 가버리는 블록에도 눈길만 남길 뿐이다. 형아 학교며 학원이며 따라다니기에 바빴지, 도동이 본인의 연령에 맞는 활동을 많이 못 한 테가 난다. 웃는 도동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아리다. 장난감 가득한 놀이터에 엄마와 함께 오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첫 등원, 너의 모습이 뭉클했어.

 일주일이 지나고, 또 며칠이 흘렀다. 이제는 엄마와 떨어져 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눈물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도동아, 엄마 화장실 갔다가 금방 데리러 올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니 도동이는 그만 눈물을 놓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 선생님께 안겨 드리고 문을 나선다. 당장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그러나 이대로 아이를 안아 들고 집에 가는 게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 약속한 시간이 될 때까지 cctv화면에만 눈을 둘 뿐이다. 마음은 교실에 두고 몸만 덩그러니 나와선 무기력한 엄마가 된 것 같다. 우리 둘은 녹초가 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차에 타더니 이내 잠이 든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니 눈물이 흐른다. 아이를 울리면서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맞는 건지. 계속 힘들어하면 어쩌나. 오만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엄마와 30분 떨어지기 연습을 며칠, 1시간을 며칠, 그리고 두 시간을 연습했다. 오늘은 점심도 한 그릇 싹 비웠다는 희소식이 날아든다. 눈물이 그렁하던 아이의 사진은 천천히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본래의 눈빛이 사진에서 보인다. 엄마의 눈에만 보이는 아이의 감정. 아이의 마음이 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모(선생님)가 물 칙-해서 손 씨더(씻어) 죠떠(줬어)."

"사가(사과) 마이더떠(맛있었어)"

같은 후일담도 늘어놓는 도동이다. 아이는 세상에 나오던 그날처럼 온 힘을 다 쓰고 있구나. 부지런히 자라는 중이구나. 아이에게서 성장을 배운다. 아이는 어린이집의 세계에 용기를 다해 입장했다.

 적응을 해야하는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어린이집 학부모의 세계'다. 나이는 많아도, 괜찮은 언니이고 싶은데 거울 속 모습이 추레하다. 동생일 때는 느끼지 못한 묘한 서글픔이 일었다.  자기 전에 마스크팩 한 장을 얹고 내일의 아침을 맡긴다. 옷장 문을 열고 또 열어 최대한 덜 뚱뚱해 보일 옷을 챙긴다. 나이 탓일까, 살 탓일까. 탓을 해서 무엇하리.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는 건 애당초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늦둥이를 낳으면 이렇게 새 경험을 하는구나.


 자리를 뜨기도 어려운 1시간의 여유, 카페인이 절실했는지 어린이집 앞 유일하게 자리잡은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엄마가 카페 단골 멤버가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새로운 관계가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걱정과 달리, 엄마들은 나이불문, 꾸밈불문 그저 3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일 뿐이다. 아기의 영양제며 소아과며 내복이며 캐주얼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면 오전 시간은 금방이었다. 고단하지만 유쾌한 시간이다.  


 앞으로 펼쳐질 어린이집의 생활은 어떨지, 학부모의 세계는 어떨지 예단할 수 없지만 기우 속에 나를 가두지 말아야겠다. 한 달 내 울음을 놓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조금씩 평정을 찾기 시작했고, 학부모로서의 나의 시작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잘 해 내야지 하는 마음이 때로는 덫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그런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속에 나를 놓아두자. 이런 생각이 3월의 끝자락에 든 것이 반갑다. 내 마음에 있는 긍정의 기제가 작동해줘서 다행이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매년 3월은 오고, 누구에게나 그 시간은 있다지만 너무나 새로웠던 올해다. 적응의 3월, 새해의 3월. 이제 열 번의 밤만을 남긴 이 달이 지나면 이 긴장과 설렘도 추억이 되리라. 얼른 지나갔으면 하기보다, 꼭꼭 씹어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야겠다. 도동이도 엄마도 함께 성장한 기억으로. 어쩌면 우리가 일 년 중 가장 열심히 겪어내는 '3월'이니 말이다.


(대문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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