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해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속담 10개

by 열혈청년 훈

ㅇ 노비도 대감집 노비가 낫다.


어차피 내 사업, 내 장사를 할 것이 아니라면 대감집을 선호하는게 당연합니다.

똑같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기업규모가 작고 인지도가 없을수록 언론에 제보하기도 어렵고 이슈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있는 사기업이나 공공조직은 잘만 하면 사회적 이슈도 될 수 있고 해결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대기업이나 공공조직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고 그걸 충족시켜줄 능력도 있지만 대상(노동자)도 일정부분 특정되는데,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원래 그런거야",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런걸 어쩌겠어"라는 반응만 나오고 대상도 불특정 다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5일제나 대체공휴일도 소위 좋은 직장에는 적용이 되지만 상대적으로 작고 열악한 곳일수록 늦게 적용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아직도 단순히 임금차이로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한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이 있다는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ㅇ 곳간에서 인심난다.


제가 늘 주위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본심은 돈과 시간을 어디서 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돈과 시간의 공통점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시간은 1년 364일 24시간만 주어지고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더 버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은행 총재가 아닌 다음에야 쓸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그 사람이 나에게 밥 한 번이라도 사주는지를 보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ㅇ 큰 일이면 작은 일로 두 번 치러라.


직장인은 위에서 시키면 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원하는 일, 원하지 않는 일을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직장인이라고 무조건 수동적으로만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지시받은 것보다 작게라도 시작하고, 하기 싫은 일은 지시받은 일보다 더 키우면 됩니다.


일을 크게 키워 관여하는 부서를 늘리고 예산을 크게 하고 의사결정 관여자를 많게 할수록, 각자의 이해관계와 생각, 셈법이 다르기에 일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생기며 적어도 일의 추진이 늦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일을 작게 시작하면 할수록 필요한 사람, 예산 등이 적어지고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작아지므로, 다른 사람들이 개입하기도 어렵고 반대할 명분도 줄어들게 됩니다.



ㅇ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흔히 이 속담이 어떤 집단에서 튀는 사람이 질시, 질타를 받는 뜻으로 쓰이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튀어나온 돌이 정을 맞는 것은 튀어나온 부분이 예술가의 작품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지, 만약 튀어나와 있는 돌이 예술가가 생각한 작품에 들어가 있다면 절대 정을 맞을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위치에 따라서는 돌의 평평한 부분이 정을 맞을수도 있는 것입니다.


네모 반듯하게 깍아만 놓은 돌은 건축자재일 뿐, 예술품이 아닙니다.

모든 대리석 예술품이 튀어나온 부분이 필요한 것처럼 조직에는 모난 사람, 평평한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성향이고 이 조직이 그런 성향을 필요로 하는지, 언제 그런 성향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 아닐까요?



ㅇ 원님 덕에 나팔분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깜냥'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지간해선 자기 스스로의 깜냥을 알게 마련이고, 설령 나의 깜냥을 내가 몰라도 내 주위 사람들은 내 깜냥을 놀랄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내 깜냥이 내가 원하는 자리나 업무를 맡을만큼 되었을 때 그 자리나 업무를 맡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나 그렇겠지만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하거나 자기 깜냥을 알아도 욕심이 앞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곧잘 사용하는 수법 중 하나가 '원님'입니다.


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여 한 자리를 얻고 "이 일은 원님이 시킨 일이다!"하면서 나팔을 붑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원님이 필요로 하는만큼 나팔을 분 뒤 버려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이방은 원님이 직접 불기 어려운 나팔, 내 사람을 시키기에 부담되는 나팔을 불게 하기 위한 용도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 내치는데에 사람들이 반발할 일도 없어 원님에게는 부담도 없습니다.


저도 저의 깜냥을 파악하고 은인자중하며 실력을 기르고 조급한 마음과 욕심은 버리고자 합니다.



ㅇ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릴 수 없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오해로 인해 여백사 가족을 몰살시킨 뒤 한 말입니다.

여백사 일가족 몰살과 저 말의 진위는 차치하고라도 사회생활에서 한 사람이 갖는 고뇌를 아주 잘 함축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는 누군가가 반드시 주도권을 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관계, 모든 사회생활관계에서 내가 주도권을 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설령 황제라 할지라도 부인, 아내, 자식 등 가족이 주도권을 쥐거나 자국보다 더 힘이 강한 인접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도권이 남이나 조직에게 있는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필부필녀들은 세 개의 굴을 파야합니다.

주도권을 쥔 상대가 일방적이고 폭압적으로 나올 경우 상대를 아프게 만들 가시나 도망칠 곳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조조처럼 협천자하며 왕이 되어 "내가 천하를 버릴"수 있을 경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천하로부터 버림받지 않도록"은 필부들도 해야 할 일 같습니다.



ㅇ 운칠기삼의 운은 사람에게서 온다.


이건 운칠기삼을 응용하여 제가 만든 말입니다.


27살 아직 유비에게 출사하기 전의 제갈양과 오장원에서 사망한 54세의 제갈양의 능력이 같을까요?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출사 이후 27년간 제갈양은 한실부흥이라는 대업을 위해 국가를 경영하고 군대를 감독하고 전장에 나아갔습니다.


27살 시점의 제갈양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천재적이었다고 한들 그 이후 27년간 누구에게도 출사하지 못하고 농부로 살았다면 오장원에서의 54세 제갈양이 될 수 있었을리는 만무합니다.

또한 삼국지에서 다소 애매한 능력치로 평가받는 간손미(간옹, 손건, 미축)이지만, 만약 제갈양이 평생 농부로 살았다면 같은 54세일때 간손미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하고 크려면 그에 걸맞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할 기회는 결국은 사람이 줍니다.

따라서 로또 당첨 정도를 제외하면 사람의 운은 하늘이 아닌 기회를 줄 사람에게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ㅇ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예나 지금이나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 인터넷, SNS의 삼신기가 있어 동네 구석의 조그만 일도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로까지 번져갑니다.


이건 저 같은 필부들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예전처럼 전달매체가 소수의 유력자들에 의한 그들만의 리그로 남아있을 때와는 다른, 언로의 다양성, 확장성, 즉시성이 차원이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죠.



ㅇ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어떤 흠도 없는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조직이나 사람들을 이끌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살리기 위해 사람들을 다그칠 수도 있고 육두문자를 쓸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실수 한 번에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수술실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실수한 부하에게 친절하게 하나하나 강의하듯 알려주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물론 부정부패나 범법행위는 다른 얘기입니다만, 어떠한 도덕적 흠도 없고 성격적으로도 원만하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적어도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일정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 중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ㅇ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유유상종은 과학적 법칙이다."

제가 믿고 따르는 형님의 말씀인데 백번 공감합니다.


사실 속담에서 말하는 친구보다 조금 더 확장하여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더욱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건 이해관계에 의해서 어울리거나 속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 무리를 보면 그 친구를 보는 것 만큼이나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어떤 것에 이익을 느끼는지, 어떤 주장에 동조하는지, 어떤 가치를 버리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시간이 엄청 길어졌네요.


언제나처럼 여러분의 의견과 감상을 기다립니다.

대체공휴일 연휴 즐겁게 잘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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