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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깜빠뉴 Feb 18. 2021

두부김치에 미나리를 왜 넣어?!!

주부도 사정이 있다

매일 저녁 메뉴가 고민이기도 하지만,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만들어야 하니 어찌 보면 메뉴는 한정적이다.

이 날 나의 냉장고에는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두부, 그것도 그냥 두부도 아니고 좀 더 맛있을 것 같아 두 배나 더 비싸게 주고 산 두부.

오늘의 메인 재료는 바로 이 두부였다.

그가 두부김치를 먹고 싶다고 한 게 생각나서 산 두부였다.


두부김치를 사 먹어본지가 언제던가. 아이를 키우며 술집에 가는 일이 거의 없으니 최소 10년 이상 두부김치를 사 먹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본래의 두부김치가 어떤지 기억에 없어 그냥 내 방식대로 만들어 먹는다.


원래 나의 두부김치 레시피는 이렇다.

양파와 김치를 송송 썰어 팬에 설탕을 뿌려 볶는다. 여기에 냉동실에 상비해두는 우삼겹이나 차돌박이를 넣고 쯔유와 설탕, 간장으로 양념해서 볶으면 끝이다. 초간단이지만 꽤 좋은 술안주라서 딱히 생각나는 저녁 메뉴가 없을 때 해 먹는다.

나는 두부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특히 기름에 부쳐내어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두부부침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난번에 만든 두부김치의 두부는 내 취향껏 두부부침으로 곁들였다.

두부김치 지난버전

나는 이 날 결혼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두부부침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부부는 살면서 서로 많은 것을 알아간다. 연애할 때는 그의 아토피가 이렇게 심한 줄 몰랐었고 결혼 1년 차에는 그가 꽁치김치찌개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결혼 9년 차에는 시댁에서 그가 그렇게 맛있게 먹던 과메기를 좋아서 먹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두부부침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 살면서 또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계속 궁금한 존재이다.


사랑하는 그가 옆에 있다고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방에서는 남편이 옆에 있으면 요리가 산으로 간다. 양념을 너무 많이 넣는 게 아니냐, 기름이 튀니 불을 좀 약하게 해라, 국물이 너무 많다 등등 온갖 잔소리로 머리를 혼란스럽게 해 넣어야 할 것을 못 넣는다던지 혹은 내 방식과 그의 방식이 뒤엉켜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남자는 주방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조선시대적 발언도 쓸데가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원래의 두부김치를 어떻게 만드는 건지 정확히 모르는 오늘의 요리사는 나만의 레시피로라도 두부김치를 만들고 싶었지만(두부부침 말고 데친 두부를 곁들여) 사정이 있었다.

냉장고엔 내일이면 시들어 버릴 것 같은 미나리 반 단이 있었고 냉동실엔 우삼겹 대신 제육볶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의 두부김치는 제육과 김치를 볶다가 미나리를 넣기로 했다. 내다 팔 것도 아닌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원래 넣던 양파는 요즘 양파 가격이 많이 올라 아끼기로 하고 양파 대신 미나리를 넣은 걸로 퉁 치기로 했다. 양파가 하나에 무려 천원이 넘으니 이 결정이 너무한 건 아니지 않을까.


팬에 미나리를 넣고 있는데 어김없이 남편의 태클이 들어왔다.


두부김치에 미나리를 왜 넣어???


"그냥 만들어주는 대로 먹으면 안 될까"라는 말을 삼키고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라고 대답했다.


누구에게나 어느 상황에서나 사정이 있다.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면 사정을 봐줄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되도록 융통성을 발휘해 사정을 봐주는 것이 삶을 더 유연하게 만든다. 부부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봐주는 관계이다.


미나리는 보이지도 않는데

재료가 어떻든 만드는 방식이 어떻든 어찌어찌 이번에도 맛있게 완성되었다. 과정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세상엔 결과만 중요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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