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우리 넷은 이 책을 읽었었다.
그것도 수 십 년 전에... 그것도 아이들과...
하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애벌레가 나비가 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전혀...
오십을 넘어 다시 집어 든 '꽃들에게 희망을'은
얇고 그림이 예쁘기만 한 동화책이 아니었다.
줄무늬 애벌레였던 때의 나
노랑 애벌레이고 싶었던 나
그냥 애벌레였을 나
누군가에게 밀려나서 떨어져 버렸던 나
혹은
누군가를 짓밟고 위로 올라서려 했던 나 아니면 짓밟힌 것도 모른 채 버둥거렸을 나
그런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쯤 훨훨 날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벌레 기둥 더미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꾸 위아래에 뭔가 있지 않을까 쳐다본다.
한동안 침묵이 테이블 위 공기를 무겁게 덥혔다.
마침내 ㅁ이 입을 열었다. "제목을 참 잘 지은 책이야."
ㅇ은 "늘 나비가 마음에 와닿았어. 예전에는 나비가 지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비가 태도라고 생각이 자꾸 들네."
"아직도 벌레 기둥 더미 속 어디선가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ㄱ이 푸념했다.
ㅈ은 조금은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난 애벌레처럼 세상을 보기 싫어. 나비처럼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어. 독수리까진 바라지도 않아."
오늘도 우리의 독서모임 여전히 괜찮은 거겠지...
책여우-내게 온 인물의 캐릭터 분석을 위해 책 읽는 여배우들의 모임
ㄱ-내년이 환갑이라는 사실에 대충 낙담하는 스타일
ㅁ-총명한 머리, 그럴듯한 외모. 본인만 모르는 비밀
ㅈ-책여우 이름을 지은 사람
ㅇ- 21학번 늦깎이 대학생
독서모임, 북살롱, 북클럽...
결국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기 위한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