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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탈출』 읽고

얇고 넓은 독서가 준 영감을  짧은 소설로 기억하려 한다



그는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를 보러 왔다.

"너를 사람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네가 내 며느리가 되니까 사람으로 바라보는 거, 그게 잘 안 되더라. 내가 어른으로서 못났었다. 용서해다오."

그리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가장 빛나고 예쁠 때부터 연얘 하고 결혼했던 시간들을 이렇게 수포로 만들어서 미안하다.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가 가득 챙겨 온 건 나를 위해 산 겨울 옷가지들이었다. 그가 그날 내게 전해준 코트가 내가 가진 가장 따듯하고 값진 옷이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동시에 서로 이만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단숨에 역할극 속 갈등으로 몰아넣었던 이전의 시간에 대해 선명히 되새긴다. <본문 중에서 117p>




장기 취준생 딸 앞에서 결혼이란 단어는 금지어!!!

탁자 위의 책을 힐끗 보더니 

"결혼의 반대 말이 결혼 탈출! 아주 유괘 해!" 

오랜만에 딸아이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으니 나도 따라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유쾌함도 잠시


"카톡"


고등학교 동창 딸내미의 온라인 청첩장이 떡허니 날아들었고

동창은 득달같이 내게 전화했다. 


"민정이 이쁘더라. 축하한다고 전해줘."


축하만 하고 입을 다물었어야 했다.


"너, 좋은 장모가 될 거야. 난 평생 못 해 보 ㄹ......."


"우와와악 커어어억 커어어 콰아악!!!!!!"


좀 전까지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히던 딸이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야생 사자처럼 긴 머리를 흔들며 비명인지 통곡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순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코 찔찔이 민정이가 결혼한다고...  흐흐흐... 그으래... 결혼을 해야 결혼 탈출하는 거저. 그래 탈출하려면 결혼해. 탈출결혼...  아니 결혼탈출...  나두 탈출하고 싶어... 탈출이라고... 탈출... 탈...출..."

알 듯 모를 듯한 혼잣말을 하며 내리까는 눈빛에서 서늘한 광채가 순간 스쳤다. 


그날 밤, 남편은 안방 방문 손잡이 가운데 있는 잠금장치를 유난히 꾹 눌렀다. 


그날 밤, 역시 난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날 밤... 절대 갱년기 불면증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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