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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유리멘탈 개복치로 판정 받았다』를 읽고

얇고 넓은 독서가 건넨 영감으로 쓴 숏(Short)설(說)

네 살 무렵의 일이다. 떼쟁이였던 나는 중국집에 가서 "지난번에 먹은 그것을 달라고!"라는 말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울었다. 초조하게 날 달래던 가족들은 자장면, 탕수육, 짬뽕을 주문해 차례대로 들이밀었다. 울보인 데다 목소리까지 컸던 나는 도통 화를 멈추지 않았다. 식사 막판에 가서야 가족들은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게 단무지였음을. <중략>

대놓고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건 뻔뻔한 태도라 생각했다.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사람은 사랑받기 어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이성적이고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훌륭하고 배려 있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작 남의 욕구를 세심하게 살피느라, 또는 뻔뻔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서 내 욕구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남들에게 배려 있는 나로 남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은 뒤편으로 미뤄 놓았다. 내가 원하는 걸 잘 모르니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일조차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저자 태지원 / 출판 크레타]




-어디야? 언제 오는데? 어떻게 맨날 늦어! 배고파, 배고프다고! 

나는 핸드폰 화면 속 엄마에게 성질을 부렸다.


"그.. 그... 럼 그... 냥주..세.. 요..."

환불하려 갔다가 그럴 리가 없다는 주인의 힐난에 조용히 물러났다. 낙서가 있는 책을 가방에 넣었다. 난 평화주의자다. 




-팀플 때문에 밤새야 한다고! 학교 아니고 스카에서 한다니까! 팀원들 다 여자야! 쓸데없는 데 걱정 마시고...  카톡으로 송금이나 해주셈요.

화장실 창문 앞에서 난 갖은 짜증을 부렸다. 인스타에서 난리가 난 클럽 화장실인 건 아빠한테 비밀.


"제..가... 그..그...런... 거... 못... 하는... 데.................. 그... 그... 럼 어...떻...게 해... 야.... 하나.... 요?"

후원을 받아오라는 선배들 앞에서 거의 울상이 되어 겨우 말을 이었다. 우린 고등학생 디베이트 대회를 기획 중이었다.




-이게 말이 돼!! 회사!!??! 일요일에도 출근시키는 거지같은 회사! 내가 때려 뿌셔버린다. 

친구에게 아니 친구의 회사를 향해 분노의 침만 쏟아냈다. 얼마전 취직한 절친과 겨우 연결된 전화였는데...


"이건 모카라떼 잖아요! 전 바닐라라떼 시켰다고욧! 다시 만들어주시든가 환불해 주세욧!!!!"

이렇게  소리질....렀...... 아니 소리치고 싶었다. 잘못 나온 아이스모카라떼 컵에 맺힌 물기에 자꾸 손이 미끄러졌다.




-오빠야? 오디이이? 밥은? 아이~~ 오빤 내가 그렇게 이뻐.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면서도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오빤 꼭 내가 여기만 오면 영통하자구 그러드라~~

한껏 수분을 가득 머금은 아기 같은 피부. 

촉촉이 젖어 윤기가 흐르는 검은 긴 머리. 

이런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난리난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폭력처벌법위반으로 형사처벌됩니다.  아시겠어요?"

-저...저...는....그...냐.....ㅇ....오....빠가......보....고.싶.......다...고해....서.....통..화만 ...했.......는....데...........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관이 출동했다.

간절했다, 누군가 내 대신 이 말을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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