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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Short)설(說)】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줄곧 도시락에 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어요. 집에 가서 빨리 도시락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어서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 택시를 기다렸어요. 겨우 택시를 잡아도 기사님이 길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헤매는 사이에 시간이 끝나고 말아요."

시간이 끝난다고요?

"날이 밝기 전에 새벽녘쯤 가게가 문을 열 무렵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그게 규칙이니까요."

규칙...이라는 거죠, 아아.

"언제나 어김없이 시간이 끝나버려서 집에 당도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늘 반복됐죠. 기사님 덕분에 마침내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천만의 말씀인니다.

아, 도시락 가게가 보이네요. 가게 앞에 곧 도착합니다. 거기에서 내려드리면 될까요?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 저자 가토 겐 / 번역 양지윤 / 출판 필름>



-내년 엄마 환갑엔 오성급 호텔 뷔페에서 거하게 한 턱 쏠게. 기분 풀어요.


엄마 생일을 며칠 앞둔 주말, 난 엄마와 겨우 시간 약속을 잡았다.

대학가 무한리필 고기뷔페 집, 미안한 내 마음을 모르는지 엄마는 잔뜩 성난 얼굴로 고기만 구웠다.

내 것보다 몇 배나 비싼 명품 립스틱을 생일 선물로 건넸다. 

-으응, 뭘 이런 걸... 고마워.

엄마는 립스틱이 든 쇼핑백을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에 놓았다.

-저기, 메뉴판에 있는 옛날도시락은 따로 시켜야 하는 거지?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엄마의 모든 주름이 좍 펴진 듯 얼굴이 환해졌다.

계란 프라이를 얹은 하얀 밥과 볶은 김치, 멸치 볶음, 분홍 소시지 부침이 가지런히 놓인 네모난 도시락.

흥분한 엄마의 젓가락은 바쁘게 움직였다.

덩달아 신이 난 엄마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 엄마! 보리밥으로 싸달라니까!! 

선생님한테 혼난다 말이야. 

저번에도 쌀밥 싸줘서 손바닥 맞았다구!!

내 타박에 엄만 급히 쪄 둔 깡보리밥 한 수저 듬뿍 떠서 하얀 쌀밥에 얹었지.

그리곤 덩어리 진 깡보리밥을 쌀밥 위에 살살 피셨어.

역시 우리 엄마!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보리밥을 쌀밥에 슬쩍 얹은 덕에 선생님의 도시락 검사는 무사통과했지.


간혹 엄만 보리밥을 얹는 걸 깜빡 잊어버리셨어.

그땐 짝꿍 정옥이 꽁보리밥 한 수저와 내 소시지 하나랑 바꿨지.

참, 정옥인 공책이랑 교과서는 컬러풀했어.

작은 유리병에 김치를 싸갖고 다녔는데 맨날 김칫국물이 흘렀거든.

가끔 라면 봉지에다 김을 싸갖고 오기도 했지만.


또 호섭이 걔는 점심시간마다 '각설이타령'을 불러 젖히며 모두를 웃겼어.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어제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스뎅 대접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밥이랑 반찬을 얻어먹었거든.


그리고 종남이는 말이야....


일수를 놓는 부자 엄마를 두었던 울 엄마는 모두가 힘들었다던 그 시절을 참 재수 없게 추억하는 재주가 있다.

그나저나 일인당 이십만 원이 훌쩍 넘는 오성급 호텔 뷔페와 엄마 마음에 드는 환갑 선물을 준비하려면 이제 뭘 더 얼마나 아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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