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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오 May 04. 2023

2년차 디자이너의 라우드 소싱 첫 도전

그것은 응애 디자이너의 작은 꼼지락이었다.


미리 전하는 경고장


브런치에 발을 내딛은 초장부터 말하자면, 필자의 글은 성공한 사람의 교훈과 지식이 넘치는 글이 아니다. 필자의 글은 어리숙한 2년차 삐약이 디자이너가 이것저것 해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잡음을 녹여낸 일종의 히스토리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에게 일종의 흑역사 일지일 수도 있는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 나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비록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도 나 스스로 프로젝트에 관련된 목적을 설정하는 과정과 그것을 시각화 하는 과정, 그리고 모든 것을 마무리한 후의 리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노출되는 글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다시 리마인드하며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복습이요 공부가 된다. 그렇기에 이 행위가 앞으로 성장에 큰  힘이 될거라 믿는다.

* 그렇다. 이것은 '믿음 메타'이다. (종교는 안믿는다.)


둘째, 본인처럼 스스로 성장하는 이들을 위함이다.

대학생 시절에 전교 꼴등인 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적이 있다. 그 고등학생을 가르치며 느꼈던 것은, 각자 단계에 맞는 가르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차방정식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등비수열을 접해도 그것은 바로 학습될 수 없다. 물론 전문적인 이들의 본받을 만한 일화, 혹은 인사이트를 깨워주는 지식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풍성한 지식과 교훈을 준다. 나는 그런 글 들이 아직은 멀게 느껴지거나, 조금은 밀접한 이야기가 필요하거나, 뭐 사람냄새가 그리운, 등등 여러 이들에게 나약한 삐약이 디자이너의 일대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도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날이었다. 아침 9시에 출근했고, 6시가 애매하게 넘어간 시간 쯤 퇴근한 하루였다. 당시약 2년차의 초입을 맞이하며 작은 회사의 익숙해진 업무 루틴 속에서 나는 매너리즘과 안분지족 마인드에 푹 젖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택한 것은 이사님에게 슬쩍 말씀드려 회삿돈으로 듣기 시작한 강의였다. 강의 플랫폼은 금액대비 많은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입문자를 위한 강의가 다양한 클래스 101이었다.


나도 남들이 아는 브랜딩 하고싶어!

필자는 브랜딩에 관련된 디자인 작업이 가장 주된 업무였는데, 회사 특성상 흔히들 아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는' 브랜딩이 아니라 일종의 로컬라이징 작업이 메인이었다. 수입한 제품의 브랜드를 해석하고 그것을 한국 시장에 맞추어 언어와 시각 요소를 가공하는 것, 그것이 본인의 주된 업무였다. 그런 업무 특성때문에 그놈의 '흔히 아는 브랜딩'이 하고싶었다. 없던 브랜드를 생성해나가는 것, 새로운 로고를 만드는 것, 그것에 맞는 시각 요소를 창조하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 강의는 무턱대고 로고만들기 강의를 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로고로 100만원 부업이라는 제목도 나를 혹하게 했다.

* 물론 100만원 부업은 아직 나에겐 허상이었다.


그냥 배우기만 하는건 싫어!

아무튼 이 강의를 듣는 과정에서 마냥 강의만 듣고싶진 않았다. 강의를 듣고 예제를 그려보는 것은 남이 한 것을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것은 강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강의를 듣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나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응용이요, 도전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뭐든지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뿜뿜 차올라 고민하던 중 공모전을 생각해냈고, 그런 과정으로 라우드 소싱에 첫 도전장을 건내게 되었다.




본격 첫 도전 이야기


라우드 소싱에 첫 도전을 하게 된 시점은 약 3월이었다. 본인이 들었던 강의가 로고 쪽 강의기도 했고, 현실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공모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콘테스트는 엄두도 못내고 로고 콘테스트를 찬찬히 물색해보았다. 그런 와중에 내 동공을 흔드는 단어가 있었다. 다름아닌 '국정원' 로고 콘테스트였다. 아니 세상에 국정원이라뇨!! 생각만 해도 멋지잖아요! 나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는 요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것은 '국립공원 정복 원정대'의 준말이었다.(!?) 아무튼 잠시의 헤프닝을 뒤로하고 이 위트있는 단체에 첫 출사표의 애정을 듬뿍 담아 작업을 진행했다.



TMI 듬뿍담은 작품 설명

이것은 제출작의 일부로, 메인로고와 티셔츠 목업이다. 국정원의 초성을 딴 ㄱ, ㅈ,ㅇ 의 형태를 깃발, 산, 해의 이미지로 표현한 로고이다. 또한 자수같은 의류에 활용될 로고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형태는 복잡하지 않게 컬러는 단색으로 진행했다. 빠르게 결말을 알려주자면 나는 탈락이었다. 다만 이 글의 요지가 어디까지나 수상 수기가 아닌 성장기의 히스토리 기록이기에 이제부터 삐약이의 관점을 보이고자 한다.




1.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 그것은 대단하다

나는 월에 일정한 급여를 받으며 회사에 디자인 노동을 하고있다. 하지만 라우드 소싱은 참여작 사이에 경쟁하여 '수상해야' 돈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콘테스트의 결과가 무척 궁금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콘테스트에 참여한 이후 수상하는 꿈을 꾸었고, 심사기간의 마지막 날까지도 거듭 라우드 소싱을 기웃거렸다. 아무래도 처음 도전하는 상황이어서 설레발과 김칫국이 정말 하늘을 뚫을 정도로 치솟았다. 물론 그 후에 맛본 탈락은 무척 쓴 맛이었다.


2. 뭐라도 했다는 자신감, 그것은 더 대단하다

무언가 힘이 다 빠지고 매너리즘과 안분지족에 쩔어있는 와중에 라우드 소싱을 통해 외부 세계의 작업을 접하게 된 것은 나의 고인 디자인 라이프를 리프레쉬 해주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줄 하나의 이벤트로 작용했다. 비록 혼자만의 칭찬이었지만 이것은 후에 본인에게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것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보람은 보람이고 금전은 금전이다. 나는 열정보단 돈이 좋은 금전 애호가다.

내 본심을 잔뜩 담은 업무용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3. 다른 이의 관점을 읽어볼 계기가 마련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작은 인하우스의 디자이너다. 그리고 본인 외의 디자이너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외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숙달 되었으나, 나의 시안과 대립하는 다른 시안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라우드 소싱 콘테스트의 경우 같은 콘테스트 안에서 나의 시안 외 수상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런 방식으로도 도출할 수 있구나'라는 배움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수상작 레퍼런스를 쭉 둘러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내가 한 콘테스트의 작업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민하던 것들을 대조해보며 그냥 레퍼런스 서치 하는 것과는 퀄리티가 다른 리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며 : 조금 더 남은 TMI


나의 작은 꼼지락을 브런치 세상에 던지기까지, 약 2개월여가 걸렸다. 중간에 이사라는 개인적인 큰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도 있지만 실은 이 글을 몇번이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앞길을 가야하는데 아직 모르겠는 이들에게 나의 수기가 하나의 응원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이고 혹여나 라우드 소싱에 도전했다 탈락하게 되어도 나의 뇌절 스토리를 보며 위로받길 바란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삐약이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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