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묻기 이전에 디자이너가 뭐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1년 전의 나는 생각치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명령어로 처리하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내 구미에 맞게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툴, 이 모든 것은 하루가 다르게 우리 세상에 나타나고 있고 이것은 이전과 격이 다른 편의를 제공한다.
다만 작업 편의와 함께 우려스러운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동반되곤 한다. 각종 AI를 활용한 이미지툴, 기능 등을 소개하는 영상에는 디자이너의 앞길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실은 내가 그들에게 보내고 싶은 말은 이렇다.
1) 가장 최악의 경우는 디자이너를 포토샵, 일러스트 노동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하는 이들에게 포토샵, 일러스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변호사가 MS워드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MS워드 사용자 = 변호사'라고 규정하진 않는다. 디자이너가 보편적으로 포토샵, 일러스트를 사용하긴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로 모두 디자이너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업계에서도 단순 툴노동을 주로 하는 롤을 두고 '디자이너'라 쓰고 '보조'라 읽는 느낌도 분명히 있다.
→ 요약 : 포토샵, 일러스트 노동량이 줄어드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편한 업무환경이 주어진 것이지, 디자이너의 롤이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다.
2) 덜 최악의 경우는 시각물 노동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음을 느끼는 순간이 더러 있더라도 아직 디자이너를 '예쁜거 만드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시선들이 잔존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디자이너의 에센스라 이야기하긴 어렵다. 디자이너에게 시각화 스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또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지 시각화만 충족하는 것이 디자인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비슷한 퀄리티를 뽑아내는 AI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 또한 궁극적으로 디자이너의 존폐에 크게 영향줄 요인은 아니라 판단된다.
→ 요약 : 시각화를 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의 자질 중 일부이므로, 이것 또한 디자이너가 부정당할 이유는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산출물을 만드는 것은 맞다. 위의 1), 2)에 해당하는 스킬도 갖춰야 하는 것도 맞다. 다만 현업에서 느낀 디자이너의 가장 본질은 '문제해결'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각적인 산출물을 만드는 사람들'인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거창할 것이 없다. 가장 단편적으로는 기한이 있고, 산출물에 투입될 수 있는 예산, 작업물과 관련된 각종 한계 사항등 외부의 사람들이 보기엔 '예쁘다, 구리다, xx같다, 어디서 본거같다' 등 단편적인 평으로 끝날지라도 그 안에는 항상 문제해결이 내재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작업을 요청한 측이 어떤 산출물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가장 부응하는 시각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사람들은 한 심상을 두고도 많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심플한 패키지를 제작해주세요' 라고 할 때 누군가는 모노톤으로 컬러의 단조로움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레이아웃의 단조로움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안에 들어가는 텍스트 등의 요소가 조밀하게 정돈된 상태를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는 그 모호한 형용사를 객관적으로 해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찰떡같이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의도로 이 작업물을 제작했는지 설명하고, 그것을 피력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제작하는 산출물은 한정적이지만 그것을 컨펌해나가는 결재라인, 그리고 최종적으로 접하는 고객 혹은 소비자들까지 결과론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옛 속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이들의 의견을 다 수렴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은 이도저도 아닌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물에 대한 설득력을 통해 나쁜 결말로 인도하지 않게, 그리고 본래의 목적에 가장 부합할 수 있게 지켜낼 수 있게 타인에게 메세지를 잘 전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자질이다.
* 그렇다고 입으로 싸우는 것이 메인이 되어선 안된다(!?)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1) 디자이너는 다른 누구보다 디자인 AI 프로그램을 잘 다룰 것이다.
AI 기능으로 더욱 간편해진 각종 프로그램들을 디자이너가 부정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섬섬옥수같은 손으로 한땀한땀 그려내는 핸드메이드 장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디자이너는 대체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각종 문서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포토샵, 일러스트, 프로크리에이트, 프리미어 등등... 아무튼 본인의 경우 산업디자인과 학부생 때 배운 각종 3D 툴까지 정말 사용해본 프로그램만 일생에 20가지는 족히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프로그램 친화적인 인간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AI 프로그램이 생겼다고 길바닥에서 엉엉 울 필요가 없다. 우리는 똑같이 디자인 AI 프로그램을 쓰더라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습득하고, 활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냥 빨리 적응해서 내 작업에 녹여내고, 작업 효율을 극대화 시키면 되는 것이다.
* 혹시나 엉엉 울 생각이었던 디자이너가 있다면 빨리 눈물 닦고 챗 GPT와 미드저니를 공부하도록 하자
2) AI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기회다
AI 프로그램들이 대중화 된다면 누구든 적은 비용으로 AI를 통해 각종 디자인 산출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옆집 철수가 AI 프로그램으로 만든 퀄리티의 로고를 맞은편 집 영희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 제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남들과 차별점이 도드라지지 않는 간판을 내걸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대중화된 AI 작업물에 더해진 전문성을 결국에는 찾게 될 것이라는거다. 만약에 굳이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지 않겠냐고?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지금도 이미 간편하게 로고를 제작할 수 있는 템플릿을 사용하거나 양산형 로고 디자인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 그러니까 그건 AI 세상이어서 생기는 케이스는 아닌 것이다.
많은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에겐 기회가 적어진 것으로 보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기회가 생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디자이너의 앞길을 부정하는 이들을 굳이 설득할 마음까진 없지만, 디자인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회의를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더 사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이것은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요한 툴이 변화된 것이라 보인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포토샵, 일러스트가 혁신이었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더욱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AI 프로그램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AI 덕에 포토샵, 일러스트를 예전만큼 열심히 배울 필요도 없다. 그 시간을 이제 새로운 AI 프로그램의 기능을 파악하고, 프롬프트를 어떻게 컨트롤할지 등에 할애하면 되는 것이다.
중꺾마를 외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