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이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파주 근교에 드라이브를 하러 나간다. 비가 조금 오지만 나름 드라이브를 하기엔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권나무 씨의 노래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틀고 찾아둔 카페로 향한다.
아빠는 어느 날 딸의 방으로 찾아와 대화를 신청했다. 처음 의도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요즘, 그렇게 되는 이유와 더불어 기성세대의 이야기와 요즘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며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요즘 환경 문제나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딸이 궁금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기록해두면 출판의 형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아빠의 생각이었다.
딸은 아빠의 이런 생각이 재밌게 다가온다. 아빠와 나름 대화가 잘 되면서도 또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간극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이어갈 대화가 딸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만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자고 한 게 시작이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흑임자 라테, 그리고 빵 두 개를 주문하고 비가 내리는 바깥을 같이 바라보며 앉아있다. 아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허리를 세운다. 갑작스러운 시작에 딸은 집중하려 고개를 든다. 비 소리를 뒤로 하고 둘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종교.
(아빠는 크리스천, 딸은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은 교회에 가지 않는다.)
아빠: 종교에 대해서 최근 편해졌어. 왜 인류는 그렇게 종교에 몰입되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존재에 대한 불안이었어.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니까. 지금은 나도 교회를 나가지 않지. 그럼에도 내가 편해질 수 있었던 건 교리로서 강제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아.
딸: 갑자기 생각난다. 예전에 아빠는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했지 않아? 어디 등산하다가 갑자기 이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회상되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아빠: 맞아. 그때 내 안의 신적인 존재를 만났었어.
딸: 오, 그 부분이 재밌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의 신적인 존재라고 표현하는 거. 마치 불교 같아. 부처도 수련을 통해 참 자아, 자신 안의 신성을 찾은 거잖아.
그런데 나는 종교에 대해 생각하면 불편함이 있어. 종교는 자꾸 편을 가르고 싸움을 만들어.
아빠: 그렇지. 그 수년간의 시간에 종교로 인한 전쟁이 참 많았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지금 일어나는 분쟁들도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아.
철학.
딸: 사실 기독교든 불교든 근원적인 시작은 오히려 깨끗(?)하달까. 다만 사람들이 집착하고 권력을 부리려고 할 때 종교화가 되는 것 같아. 사실은 철학, 그러니까 스스로 사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건데.
아빠: 교리화 되어서 옭아매지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드러나지. 책도 마찬가지로 신성시 여기면 종교화되는 것처럼.
딸: 맞아. 책도 그 작가의 의견이 다 맞다고 읽는 건 오류가 생기게 되더라고.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 시대성이 있었고, 책은 그저 그 시대성에 속 한 개인의 사유적 결과물인데, 그걸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려 하면 집착하게 돼. 현대와 안 맞는 부분도 있는데. 내가 직접 사유해야 해.
세대 간의 갈등.
아빠: 내 주변에 자식들과 부모 사이의 권력관계로 자식들을 부리다가,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이 많아. 내 친구 한 명도 자식이 미성년자 때 자신 뜻대로 하게 하려 하다가 지금은 아예 단절되었더라고.
딸: 뭐든 애쓰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물론 세대 간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걸 가르치려고 애쓸 때 문제가 생겨. 차라리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는 게 대화에 물꼬를 트는 것 같아.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난 예전에 아빠를 완벽하고 사업가적인 아빠로 생각하고, 또 난 인정 욕구가 많으니까 인정받으려고 엄청 노력했었지. 아빠가 지금은 사업 문제 때문에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저번에 그런 힘든 감정과 같이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었잖아. 그때 아빠와 확 가까워지는 걸 느꼈어.
감정.
아빠: 감정을 알아차리니까 마음이 편해져. 내면을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더라고. 지금 대리 기사로 투잡을 뛰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건 재밌으면서도 감사한 일이지만, 가끔은 정말 힘들 때가 있어. 그때 내가 힘들구나 하고 알아차리니까 그다음 감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돼. 그러면 마음이 다시 평안해지더라.
딸: 감정이 마치 힌트처럼. 수용해주어야 하는 것 같아.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 감정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알아주어야 부풀었던 감정이 사그라들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딸: 아빠. 이건 우리들의 이야기로 가져가자. 출판하려고 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또 의식해서 말도 잘 안 나올 테니까. 그냥 우리 둘의 관계를 위해서 하는 거지. 기록만 남겨두고. 이 기록을 10년 후에 보아도 그것만으로 재밌을 테고 또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거니까. 조급하지 않게.
아빠: 그게 내가 목표하던 바 같아. 그러면 둘 다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고. 더 좋다.
딸은 마치 아빠와의 대화라기보다는 80년대의 한 청년과 대화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삶에 대해 궁금하고 고민하는 책을 좋아하는 한 청년. 아빠는 청년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