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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05. 2022

아빠와 딸의 대화 ep.0

아빠와 딸이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파주 근교에 드라이브를 하러 나간다. 비가 조금 오지만 나름 드라이브를 하기엔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권나무 씨의 노래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틀고 찾아둔 카페로 향한다.


아빠는 어느 날 딸의 방으로 찾아와 대화를 신청했다. 처음 의도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요즘, 그렇게 되는 이유와 더불어 기성세대의 이야기와 요즘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며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요즘 환경 문제나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딸이 궁금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기록해두면 출판의 형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아빠의 생각이었다. 


딸은 아빠의 이런 생각이 재밌게 다가온다. 아빠와 나름 대화가 잘 되면서도 또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간극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이어갈 대화가 딸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만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자고 한 게 시작이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흑임자 라테, 그리고 빵 두 개를 주문하고 비가 내리는 바깥을 같이 바라보며 앉아있다. 아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허리를 세운다. 갑작스러운 시작에 딸은 집중하려 고개를 든다. 비 소리를 뒤로 하고 둘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종교.

(아빠는 크리스천, 딸은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은 교회에 가지 않는다.)


아빠: 종교에 대해서 최근 편해졌어. 왜 인류는 그렇게 종교에 몰입되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존재에 대한 불안이었어.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니까. 지금은 나도 교회를 나가지 않지. 그럼에도 내가 편해질 수 있었던 건 교리로서 강제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아.

: 갑자기 생각난다. 예전에 아빠는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했지 않아? 어디 등산하다가 갑자기 이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회상되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아빠: 맞아. 그때 내 안의 신적인 존재를 만났었어.


: 오, 그 부분이 재밌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의 신적인 존재라고 표현하는 거. 마치 불교 같아. 부처도 수련을 통해 참 자아, 자신 안의 신성을 찾은 거잖아. 


그런데 나는 종교에 대해 생각하면 불편함이 있어. 종교는 자꾸 편을 가르고 싸움을 만들어. 


아빠: 그렇지. 그 수년간의 시간에 종교로 인한 전쟁이 참 많았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지금 일어나는 분쟁들도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아. 




철학.

: 사실 기독교든 불교든 근원적인 시작은 오히려 깨끗(?)하달까. 다만 사람들이 집착하고 권력을 부리려고 할 때 종교화가 되는 것 같아. 사실은 철학, 그러니까 스스로 사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건데.


아빠: 교리화 되어서 옭아매지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드러나지. 책도 마찬가지로 신성시 여기면 종교화되는 것처럼.


: 맞아. 책도 그 작가의 의견이 다 맞다고 읽는 건 오류가 생기게 되더라고.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 시대성이 있었고, 책은 그저 그 시대성에 속 한 개인의 사유적 결과물인데, 그걸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려 하면 집착하게 돼. 현대와 안 맞는 부분도 있는데. 내가 직접 사유해야 해.



세대 간의 갈등.

아빠: 내 주변에 자식들과 부모 사이의 권력관계로 자식들을 부리다가,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이 많아. 내 친구 한 명도 자식이 미성년자 때 자신 뜻대로 하게 하려 하다가 지금은 아예 단절되었더라고.


: 뭐든 애쓰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물론 세대 간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걸 가르치려고 애쓸 때 문제가 생겨. 차라리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는 게 대화에 물꼬를 트는 것 같아.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난 예전에 아빠를 완벽하고 사업가적인 아빠로 생각하고, 또 난 인정 욕구가 많으니까 인정받으려고 엄청 노력했었지. 아빠가 지금은 사업 문제 때문에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저번에 그런 힘든 감정과 같이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었잖아. 그때 아빠와 확 가까워지는 걸 느꼈어. 



감정.

아빠: 감정을 알아차리니까 마음이 편해져. 내면을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더라고. 지금 대리 기사로 투잡을 뛰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건 재밌으면서도 감사한 일이지만, 가끔은 정말 힘들 때가 있어. 그때 내가 힘들구나 하고 알아차리니까 그다음 감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돼. 그러면 마음이 다시 평안해지더라.


: 감정이 마치 힌트처럼. 수용해주어야 하는 것 같아.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 감정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알아주어야 부풀었던 감정이 사그라들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 아빠. 이건 우리들의 이야기로 가져가자. 출판하려고 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또 의식해서 말도 잘 안 나올 테니까. 그냥 우리 둘의 관계를 위해서 하는 거지. 기록만 남겨두고. 이 기록을 10년 후에 보아도 그것만으로 재밌을 테고 또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거니까. 조급하지 않게.


아빠: 그게 내가 목표하던 바 같아. 그러면 둘 다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고. 더 좋다.





딸은 마치 아빠와의 대화라기보다는 80년대의 한 청년과 대화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삶에 대해 궁금하고 고민하는 책을 좋아하는 한 청년. 아빠는 청년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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