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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엄공 Dec 04. 2021

남편이 날 속이고 어린 여직원과 카풀을 한다.

부부간 신뢰의 근간을 훼손하는 경솔한 거짓말

수도권에서 비싼 것은 비단 집값만이 아니더라. 작년 남편의 수도권 발령으로 주말부부가 된 이후 몇 달 간은 남편 회사에서 주차비가 지원되어 남편이 무료로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초 회사의 정책 변경으로 직원들의 주차비 지원이 끊어져 남편은 앞으로 매월 13만 원의 주차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세상에, 직장인이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서 무슨 월 주차비까지 내야 하나. 널찍한 회사 마당에 10년째 무료 주차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애당초에 주차비가 유료인 회사가 있는지 조차 몰랐고 이해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월세며 교통비며 주말부부를 유지하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 매월 추가로 주차비까지 내야 한다면 어느 주부가 좋아하겠는가. 나는 신랑에게 '타지로 직원을 덜컥 발령은 내놓고서 각종 비용은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떠맡기는 남편 회사에 대한 불만'을 종종 토로하며 줄곧 애먼 신랑에게 틱틱거리고는 했다.




주차비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내게 어느 날 신랑이 물었다.


"매월 7만 원 정도면 같이 카풀할 직원이 있는데, 출퇴근 길에 카풀할까?

 그 직원은 매월 내던 교통비로 조금 더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고,

 나는 조금 돌아가긴 하는데, 그래도 매월 주차비의 절반 정도는 세이브할 수 있어"


남자야?


특별한 의심이나 경계심에서는 아니었고,

내가 본능적으로 던진 카풀 대상에 관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남편이 망설임 없이 남자라고 답하자,

이윽고 몇 가지 질문이 따라붙었다.


"코로나로 위험한 요즘 같은 때에 대중교통 타고 다닌대?

 남자인데 아직 차 없는 거 보니 미혼인 신입인가?

 그래도 카풀이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인데,

 같은 동네도 아니고 일부러 돌아가야 하는 거면 출퇴근길에 좀 불편하지 않겠어?"


남편은 '그 사람이 왜 차가 없는지'에 대해서 까지는 자기와 상관없으니 잘 모르겠고,

일단은 좀 불편해도 매월 7만 원의 비용절감을 할 수 있으니 내일부터 카풀을 하겠노라 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타인과 동승하는 것이 영 편치는 않으니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잘 쓰라고만 일러두었다.


'약간 돌아가서 7만 원 정도의 금전적 이득이 있다면

나한테 묻지 않고 알아서 그리하면 될 것을, 나한테 왜 굳이 묻는 걸까?'


조금 의아했던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나는 10년 전 스물다섯이 되던 해의 1월, 대중교통 이용이 다소 불편한 공단에 위치한 현 직장에 입사했다. 출근시간 자체도 워낙 이른 데다가 접근성도 떨어져 겨울이면 해도 뜨기 전 캄캄한 새벽부터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출근길에 나서야 했고, 한차례 환승 후 만원 버스에 몸을 실은 채 한 시간을 넘게 시달리고서야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입직원으로서 직장 상사와의 카풀은 어디 또 마음이 편하던가. 출근길에 고생하는 신입직원이 짠해서 내미는 도움의 손길들은 감사했지만, 때때로 내가 약속시간보다 늦어 주정차가 마땅치 않은 곳에서 상대를 기다리게 한 날이라던가, 저벅저벅 눈을 밟은 더러운 신발로 상대가 애지중지 아끼는 애마 차에 올라타야 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남편 말에 의하면 그 카풀 상대는 '아직 차가 없는 남직원'이라니, 내 추측상 그는 분명 '사회생활이 오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생활 초년기에 차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 절절히 느껴본 나로서는 괜스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 어린 직원에 대한 연민의 감정까지 들었더랬다. 남편이 내게 표명한 본인의 카풀 의도는 '매월 7만 원을 벌기 위함'이었지만, 나는 내 나름 연민의 대상인 어린 직원에게 내 남편이 '맘 편한 카풀의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따뜻한 직장 선배'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 후 나는 '남편이 한 직원과 카풀을 한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카풀 비 7만 원에 대해서는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실제로 카풀 비를 받는지 마는지에 대해서 조차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회사에 청구한 전 달 출장 경비 지급과 관련해 남편에게 정산일을 묻던 중 남편으로부터 뜻밖의 카톡 대화 화면 캡처를 받게 된다. 내가 애당초에 묻지도 않았고, 들어오는지 마는지 관심조차 없던 카풀 비에 대해 남편은 '자신이 늦은 게 아니라 상대의 카풀 비 지급이 늦었음'을 알려 주기 위해 굳이 상대방의 송금 SNS 알림 화면까지 캡처해서 보내 준 것.



음.. 나한테 거짓말했구나


남편이 보내 준 캡처 화면을 본 나의 첫마디였다. 남편은 이때까지도 자신이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그 캡처 화면 속 대화에서 '이번 달에도 잘 부탁드린다'는 그 카풀 상대는 절대로 남자 일 수가 없었다. SNS 프로필 사진에 한아름 꽃을 안은 채 자신의 싱그럽고 풋풋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고, 무조건 여자일 수밖에 없는 야리야리한 이름을 가진 20대의 어린 여자였다.




남편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즉흥적으로 남자라고 거짓 대답을 했다고 해명했다. 자기 딴에는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여보고픈 마음에, 여자라고 하면 내가 못하게 할까 봐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거짓말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당장 카풀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애초에 아내가 알아서 반대할 일이라면 남편은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전적 이득이 있어 그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마땅히 사실대로 아내에게 설명하고 아내의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에야 고백건대 사실 나는 당시 남편의 거짓말이 발각되었을 때, 그의 카풀 의도가 내게 해명한 그대로 순수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응큼한 의도나 떳떳지 못한 행동이 있었다면야 아무 생각 없이 여자인 카풀 상대와의 대화를 나에게 전송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천 원 단위까지 칼같이 잘라 계산하고 카풀 비를 정산받지도 않았을 테다. 그렇지만 의도야 어쨌건 아내를 속이는 남편의 거짓말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고 바로 잡아야만 했다. 또 '나를 속인 남편의 거짓말'은 카풀을 결의하던 그날 단 한 번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단지 한 번의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를 속인 남편의 거짓 행위'는 한 달 남짓한 카풀 기간 동안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매일 출퇴근 길마다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니까. '외도나 불순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거짓말로 인한 괘씸죄'의 죗값은 단단히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까운 게 어디 주차비뿐이야? 왜 월세도 아까운데 잠자리 필요한 룸메이트도 하나 구하면 되겠네."

"적당히 거짓말로 살살 속이면 그러려니 믿고 속아주니 편하고 좋았겠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스웠니?"


나는 잔뜩 비아냥 거리며 신랑을 코너로 몰아붙였고, 매사에 적당히 크고 작은 거짓말로 아내를 속이는 남편이라면 더 이상 믿고 함께 살 수 없노라 했다. 이번만큼은 매번 아들 편이던 시어머니도 당신의 아들이 무조건 잘못했노라, 다 사정이 있었을 테니 용서하고 좀 참으라 만류하시며 아들을 따끔히 혼내셨다. 결국에는 남편의 카풀 즉각 철회, 깊은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 굳센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 낸 후에야 적당히 마무리되었지만, 내가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며 길길이 날뛰는 통에 남편은 한동안 꽤나 마음 고생을 하며 애를 먹었다.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호 신뢰와 존중일 것이다. '상호 신뢰와 존중'은 서로 떨어져 있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 없는 주말부부 혹은 장거리 커플이라면 정말 수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가장 중요한 요소 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떨어져 사는 부부나 연인 사이라면 더욱 명심 또 명심하자.



부부(연인) 사이에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자.

그리고

외간남녀 사이에 거리두기는 확실하게 하자.




며칠간 10만 명이 넘는 분들이 이 글을 읽어 주셨습니다.

날 속인 남편의 카풀 사건으로 정말로 견딜 수 없이 내가 아프고 화났던 이유, 내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
수일 뒤 연이어 연재하기로 한 그 번외편은 아래에 링크 합니다 ;)


https://brunch.co.kr/@wonder-umgong/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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