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과 카풀한 남편의 거짓말보다 날 아프게 한 것
며칠간 약 11만 명이 읽어주신,
전 편 '남편이 날 속이고 어린 여직원과 카풀을 한다.'에 이어 연재합니다.
가슴이 먹먹했다. 퇴근 후 혼자 두 아이를 보는 것이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갓 다섯 살이 된 큰 아이의 잠자리 독서만큼은 내가 꽤 사활을 걸고 게을리하지 않는 일 중 하나였는데, 도저히 더 이상 책을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온몸 관절 마디마디가 답답해 자꾸만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싶은데, 아무리 팔다리를 쭉쭉 뻗어 보아도 개운치가 않았다. 엄동설한에 하루 종일 꽁꽁 닫아둔 방 안 공기가 너무 탁해서 일까, 답답한 방을 뛰쳐나와 차가운 밤공기가 들어오도록 큰 거실 창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힘껏 들이마셔도 신선한 공기는 내 코와 목을 통과해 온전히 내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내 몸 곳곳에 산소가 부족해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는 것처럼 온몸이 꽉 막힌 듯 숨은 가빠지고 후끈 열이 달아올랐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훌훌 벗어던져도 무언가가 내 몸을 꽁꽁 붙들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매번 '시원찮은 기지개' 증상으로 시작하여 점점 악화되는 일종의 공황장애와 같은 상태는 '남편의 카풀 거짓말 사건' 이후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사실 내 남편은 참 단순한 사람이다.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고, 정말로 문자 그대로 단순하다. 하나에 꽂히면 앞뒤나 좌우까지 살필 여력이 없고, 매사에 자신의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는 법도 잘 없다. 말이나 표정에서 본인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라 거짓말을 하거나 핑계를 대는 일에도 참 서툴다. 그의 거짓말은 대체로 엉성하고 자기 방어를 위한 핑계 또한 늘 근거가 부족하거나 앞뒤가 잘 맞지 않아 허술한 구석이 많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카풀을 생각하게 된 것은 분명 '늘어나는 지출에 커진 아내의 불만'에 꽂혀 제 딴에는 돈을 좀 아껴보고자 하는 심산이었을 테고,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순간 내뱉은 카풀 상대에 대한 거짓말 또한 치밀하거나 계산적이지 못해 이내 들켜버린 것을 미루어보아 그가 딱히 응큼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나를 속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경솔한 거짓말만큼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기에 나름 응징도 할 만큼 철저히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큰 응어리가 되어 계속해서 내 몸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나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거짓말 카풀 사건이 일어난 때는 둘째 아이 출산 직후 남편이 장거리로 발령받아 우리 부부가 주말부부가 된 지 약 10개월 즈음이었다. 40킬로대의 날씬하던 몸으로 결혼 한 나는 두 번의 임신 기간을 거치며 50, 60, 70킬로까지 급격히 몸이 불어났는데, 둘째 아이를 출산 한지 10개월이던 그때에도 늘어난 체중이 아직 다 줄어들지 않아 결혼 전 보다 10킬로는 훨씬 넘게 찐 상태였다. 아홉 달간 몸속에 고이 품었던 생명이 훅 빠져나오자 산만큼 불렀던 빵빵하던 배도 유선 발달로 한껏 부풀었던 가슴도 내 몸 여기저기에 하얗게 쩍쩍 갈라진 튼 살만을 남긴 채 느슨하게 묶여 오랜 시간이 지나 푸스스 자연스레 바람 빠진 풍선마냥 쪼그라들어버렸다. 임신 전 나는 퇴근 후에는 스피닝을 즐겼고 주말이면 에스테틱에 가서 피부관리를 받았다. 또한 요란한 색으로 염색을 하거나 잦은 펌을 하지는 않았지만, 건강한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헤어숍에 가서 두피 영양을 하거나 마사지받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거울 앞에서 잔뜩 올라온 트러블과 주근깨, 거무티티하고 푸석푸석해진 피부, 출산 후 무섭게 빠져 휑해진 머리카락, 부족한 수면에 늘 퀭한 눈과 다크서클, 제때 먹지도 씻지도 못해 줄곧 붓고 피가 나는 잇몸을 볼 때면 '몇 년 전의 내가 정녕 나였던가' 나 스스로도 무색할 정도로 불과 몇 년 만에 확연히 달라진 내 모습과 내 처지가 한없이 처량하고 그렇게 서글프더라. 달라진 건 비단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에는 '女人生孩子傻三年', 즉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3년간 멍청하다'는 뜻의 속담이 있는데, 정말로 그러했다. 도대체 말은 또 왜 그렇게 자주 헛 나오는지, 그나마 말로만 했으니 다행이지 빨랫감은 수십 번 냉장고에 들어가고, 음식은 수백 번 세탁기에 들어갔더랬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야무지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던 나였는데, 기억력도 총기도 한참이나 떨어지는 듯한 내 모습이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빨간 머리 앤을 참 좋아했다. 다양한 이유로 앤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가 앤을 좋아하는 단순한 이유는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노랫말처럼 분명 객관적으로 예쁘지는 않지만 늘 당당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앤을 동경하던 한 소녀는 '김태희? 에이~ 너무 진부하지 않아? 내가 훨씬 예쁘다 뭐.' 너스레를 떨 만큼 드높은 자존감과 자기애를 가진 여자로 자랐는데, 어느덧 두 딸아이의 엄마가 된 그 소녀의 모습은 자신의 눈에조차 더 이상 사랑스러운 구석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초라해진 것이다. 내가 매일 밤낮으로 고생스레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힘들게 출퇴근하는 동안, 남편은 영원히 내 자리여야 할 운전석 옆자리에 파릇파릇하고 싱그러운 어린 여자를 태웠다고 생각하니 부들부들 치가 떨려왔다. 매일 아침 단정하게 세팅한 긴 머리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달달한 향수 냄새를 풍겼을 어린 여자를 밤낮으로 옆자리에 태우고 다녔으니, 설령 꼭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라 대리만족이라도 내심 얼마나 설레고 좋았을까. 남편이 날 속였다는 배신감도 배신감이었지만, 드높은 자존감으로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여자에 대한 모종의 질투심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여 견딜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출산 후 바닥을 기던 내 자존감에 활활 기름을 부은냥 '사랑스럽고 자신감 넘치던 이전의 나'는 까맣게 타버려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엄마도 처녀 적에는~'으로 운을 떼며 엄마가 평생 시시콜콜 흘려하시던 엄마의 말들이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엄마의 모습은 채 150센티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늘 65킬로가 넘는 뚱뚱한 모습이었는데, 엄마는 내게 줄곧 24 사이즈의 청바지가 커서 아동복을 입었다는 둥, 결혼식 때도 너무 말라서 맞는 드레스가 없었다는 둥, 첫째인 언니를 임신했을 때는 6-7개월이 다 되도록 남들이 임신을 한 줄도 모를 만큼 날씬했더라는 둥의 이야기를 종종 하시곤 했다. 이전의 내가 단 한 번 귀담아듣지도, 의미 있는 대꾸를 해 준 적도 없었던 그 말들이 어느 날 자꾸만 메아리가 되어 내 귓가를 맴 돌기 시작했다. 소싯적 젊음과 아름다움을 애잔하게 회상하던 엄마의 모습이 묘하게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느끼자 왈칵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몰려와 눈물을 꿀꺽 삼켜야 했다.
그랬다. 빠듯한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느라 제 손으로 제대로 된 속옷 한 벌, 번듯한 화장품 하나 산 적 없이 억척스럽게 사셨지만, 유난히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우리 엄마도 한 때는 자신만의 고운 빛깔과 향긋한 꽃내음을 뽐내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한송이 꽃이었던 것이다. 한송이 꽃과 같은 젊은 날의 여자는 소중한 열매를 맺기 위해 기꺼이 사랑하여 마지않는 제 자신을 그렇게 떨군다. 그 때문에 엄마가 된 여자들은 주렁주렁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열매를 그토록 애가 닳도록 절절히 아끼고 사랑하나 보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누군가의 희생, 그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아름답게 피워 온 '나'라는 꽃이 '자식'이라는 또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해 서서히 나를 떨구어야 하는 것이, 나는 그토록 서럽고 아팠더랬다. 꽃을 떨궈야 새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 제 아무리 생명 탄생의 진리이고 이치라지만, 제 나이 서른넷의 꽃은 자신을 떨구는 것에 완전히 초연하지 못해 아직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서글픔을 마주하고는 한다.
다시금 쌀쌀해진 겨울이 찾아왔다. 퇴근길 아이들을 데리러 친정 집 앞에 도착해서 캄캄한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달 한번, 바닥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 한번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툭 치면 쓰러질 듯 가녀리던 내 어깨는 온 데 간 데 없고, 둥실둥실 푸근한 내 그림자가 엄마를 꼭 닮아가고 있다. 이다음에 나도 내 딸들에게 '얘들아, 엄마 아가씨 때에는~'이라는 넋두리를 주절주절 늘어놓게 될까,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난다.
내 극한 슬픔의 원인은 단지 남편의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출산과 육아로 달라진 내 모습에 대한 상실감과 박탈감에 의한 것이었는데,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고 다시금 힘을 내어 나를 사랑하도록 노력할 때 남편에 대한 원망 또한 조금씩 사그라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10킬로의 몸무게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요! 공교롭게도 오늘은 저희 부부의 5주년 결혼기념일이네요. 그동안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꺼내어 보기조차 싫던 결혼사진을 이제야 뒤적여 볼 용기도 생겼습니다. 혹 저처럼 출산과 육아로 이전과 같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오늘도 아주 값진 희생을 치르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들임을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저의 따스한 위로가 가닿길 바라며 사족을 남겨 봅니다 :) 나도 어엿한 꽃인데, 지는 게 서럽지 않을 수 있나요? 서러우면 서러운 대로 울어도 됩니다. 다만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고 기꺼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충분히 가치 있는 희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