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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엄공 Dec 17. 2021

굿바이, 애증의 인스타그램.

나를 찾는 여정의 출발, 그 시작은 유익한 이별로부터.

때는 뭇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따사로운 봄이 모락모락 아지랑이를 피우기 시작하는 2월, 겨우내 앙상하던 마른 가지에도 눈꽃송이처럼 새하얀 매화꽃이 내려앉을 무렵이었다. 두 딸아이를 낳은 것은 내 생애 가장 잘 한 일로, 내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마주해야 하는 수많은 어려움과 지독한 외로움에 '육아 스트레스' 혹은 '산후 우울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무수한 날들을 지내며 나는 점점 무색무취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만 같아 아프고도 서글픈 날들을 살고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출산과 육아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경단녀의 삶은 아니었다. 나는 두 번의 출산으로 단 6개월의 출산 휴가(사실 이마저 재택근무에 가까웠지만)를 가진 것 외에는 어엿한 10년 차 직장인으로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그나마 나의 '사회적 자아'는 안녕한 편이었다. 반면 나의 '개인적 자아'는 하루가 다르게 앙상한 가지처럼 메말라 가고 있었으니, 내향인인 나로서는 잠시도 '누구의 무엇'이 아닌 '오롯한 나 자신'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눈뜨면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것이 본디 워킹맘의 팍팍한 삶이라지만, 나는 심지어 주말부부로 아직 품이 많이 드는 어린아이 둘을 홀로 돌보아야 했으니 어찌 보면 고달픈 싱글맘의 삶 같기도 했다.




어쩌다 나에게 찾아오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캄캄한 밤 혹은 둘째 아이의 수유를 위해 비몽사몽 자다 깬 막간의 어스름한 새벽시간이었다. 나는 기절하듯 지쳐 쓰러져 잠들지 않고 버틸 힘이 1이라도 있는 날이면, 잠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이 밤의 끝을 부여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어떻게든 그 시간을 사수하고자 했다. 꼭 졸린 눈을 부릅뜨며 쏟아지는 잠과 싸워 기필코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어린아이 같았다. 달콤한 자유시간을 향한 나의 열망은 강했으나 약한 것은 체력이니, 잠자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힘을 내어 몸을 움직일 의지는 없었다. 파닥거릴 힘도 없이 그저 아가미만 뻐끔거리며 겨우 숨을 붙들고 있는 시장 가판대 위 생선처럼, 나는 잠든 아이들 옆에 덩그러니 누워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손가락을 휘저으며 스마트폰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을 열고 최근에 올라온 피드부터 쭉 살폈다. 굳이 시간 내어 연락하며 안부까지 물을 사이는 아니지만 오래간 알고 지낸 지인들의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 비슷한 시기에 임신, 출산하고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소소하게 소통하던 인친들의 일상, 나 혼자만 잘 아는 인플루언서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쓱- 훑고는 하트 한번 꾹 눌러주고, 센스 있는 댓글도 단다. 나도 뭔가 올릴만한 사진이 없나, 내 사진첩 속에서 자랑할만한 아이들의 모습이나 멋진 일상의 찰나가 담긴 사진도 괜스레 뒤적여 본다. 적당한 게 없으면 '이번 주말에는 어디를 좀 가볼까' 남들 다 가는 핫플도 찾아보고, 추천 피드에 올라온 재미난 글도 한참 골라 읽어 본다. '아묻따. 이건 저 믿고 꼭 사세요.' 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솔깃한 오늘의 공구 상품까지 쭉 살펴보고 '살까 말까' 고민 좀 하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은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직장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컴퓨터 앞에 있으니 인터넷을 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고요히 찾아든 황금 같은 나만의 시간이면 나는 으레 스마트폰만 붙든 채 네모세상 속에 빠져 허우적대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네모세상 속 사람들의 인생은 또 어찌나 그렇게 하나같이 여유롭고 윤택하며 행복해 보이던지. 나의 육아는 내 맘 같지 않고 내 직장생활은 팍팍했으며, 내 남편은 야속하기만 하고, 내 모습은 한 없이 못나 보이는데 그들의 육아는 성숙하고, 그들의 사업은 번창했으며, 그들 부부의 관계는 스윗했고 그러한 삶을 사는 그네들은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이 깰까 봐 한껏 웅크리고 누운 채 어두컴컴한 방에서 스마트폰을 붙들고 한참 놀다 잠든 다음 날이면 눈은 피로했고, 목과 어깨는 뻐근했으며, 마음은 씁쓸했고, 신세는 처량했다. 차라리 부족한 잠이라도 잤으면 체력이라도 비축했을 법한 그 시간을 나는 참으로 무의미하게 허비했다. 그때는 그것이 휴식인지 알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악순환을 반복하던 어느 날, 무심코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스크린 타임'을 본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하루 평균 무려 1시간 45분을 쓰고 있었다. 내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불행해하던 나였는데, 하루 24시간 중 1시간 45분이면 분명히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또 마침 그날은 서로 모르는 나의 세 지인이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남편에게 깜짝 선물로 받은 명품가방과 시계를 시전 하는 피드를 올려 준 날이기도 했다. 하루에 두 번이나 연이어 커다란 쇠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번쩍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것에 메여있어야 하는가.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발견했을 때의 깨달음이 이러했을까, 번뜩하는 깨달음과 허탈함, 후회가 한순간 몰려왔다. 나는 그날로 애증의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일개 소시민인 내가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하고 개인 SNS 활동을 중단했다고 해서 16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이효리의 인스타 계정 돌연 삭제와 같이 세간을 주목시키는 효과나 파급력 따위는 없었다.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춘 나에게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친한 지인 중 몇몇만 '요새 어떻게 지내'라는 개인적인 연락을 드문드문 취해올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인스타그램을 하는지 마는지에 딱히 관심이 없으며 인스타그램 속 그네들의 삶은 여전히 그렇게 지속될 뿐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삭제하자 나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몇 년간 습관적으로 불철주야로 들여다보던 SNS를 끊자 처음에는 다소 허전했지만, 적응하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므로 내가 잃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네모세상 속 사람들의 삶을 구태여 엿보지 않아도 나는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고, 그들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내 삶에 결여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알곡 같은 관계만 남게 되었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게 되었으며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삶에 화답하듯 내 삶을 화려하고 안정적으로 윤색할 필요가 없었다.


또 인스타그램 삭제 후 덤으로 얻게 된 나만의 진짜 자유시간은 온전히 휴식하며 '개인적 자아'를 돌보는 데에 사용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독서였다. 나 홀로 조용히 책을 읽으며 누구에게도 투정 부리고 싶지 않은 아픔과 외로움을 위로받았고, 내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졌다.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진정한 휴식을 누리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 진짜 나를 돌아보기 시작할 때, 바쁜 일상 속에 나를 잃고 허덕이며 뒤죽박죽이던 삶도 점차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바쁘고 고된 일상에 나를 잃고 슬퍼하는 이가 있다면, 이제는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 '개인적 자아'를 회복하는 첫출발이 독서였지만, 그것이 반드시 독서일 필요는 없다. 영화나 음악 감상, 운동, 요리, 미술, 악기 배우기 등 개인의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에게 온전한 쉼을 주고 내 삶과 마음을 충만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바빠 죽겠는데 내가 그럴 시간 어딨어'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하는 마음이 드는 이가 있는가. 나와 같이 SNS를 삭제하거나 삶의 불필요한 가지들을 찾아 조금씩 정리해 주는 유익한 이별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외롭고 쓸쓸히 긴긴 겨울을 지나온 마른 가지와 같던 당신의 삶 속에도 작은 희망의 눈꽃송이들이 소담히 피어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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