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자고
대한민국에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하는 일반 사무직이 몇이나 될까. 남편이 함께 있다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보고 각자 출근 준비를 하겠지만, 주말부부인지라 나는 매일 홀로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어린아이 둘을 친정에 맡기고 비정상적으로 이른 출근 시간을 가진 회사로 출근을 한다.
매일 새벽 5시 40분에 핸드폰 기상 알람이 울리면, 나는 빛의 속도로 알람을 끄고 재빨리 몸을 일으킨다. 미적거리다 잠귀 밝은 둘째가 깨어나면 한참은 잠이 덜 깬 아이를 안고 토닥토닥 달래주어야 하고, 아직 어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는 엄마가 양치하고 세수할 최소한의 시간조차 주지 않으니 나 홀로 출근 준비가 여의치 않아 늘 둘째가 깰까 봐 조마조마하다. 기상 후에는 도둑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아이들이 잠든 방을 빠져나와 조용히 방문을 닫고 시리얼이나 식빵 한 쪼가리 같은 것으로 간단히 배를 채운다. 간밤에 유난히 아이의 수유가 잦거나 이앓이로 잠들지 못하고 보채어 나 또한 밤새 시달리다 잔 둥 만 둥 ‘비몽사몽’ 겨우 일어난 날이면, 그마저도 생략되는 날이 다반사이지만. 간단한 요기 후 샤워는 군대급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무조건 10분 컷으로 끝낸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린스나 트리트먼트 따위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다 감은 젖은 머리는 훌훌 털어 둘둘 말아 올린 뒤 커다란 집게핀으로 콕 집어 고정한다. 나에게 스킨, 에센스, 수분크림, 자외선 차단제를 순서대로 우아하게 바르는 일 따위는 사치이다. 샤워 후 바르는 거라고는 얼굴에 로션 딱 하나, 몸에는 바디크림 딱 하나다. 코로나 덕분(?)에 워킹맘이 출근길에 화장도 생략할 수 있으니 내심 참 다행이다. 여기에 대충 손에 잡히는 적당한 옷만 하나 골라 입으면 내 출근 준비는 끝이다. (심지어 위아래 고를 것도 없는 원피스를 선호한다.)
내 출근 준비를 빠르게 마치면 이번에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그 어려운 일을 매일 아침 기꺼이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깊은 잠에 빠져 곤히 단잠을 자는 네 살 큰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것. 남편이 함께 있다면 굳이 아이를 깨우지 않아도 각자 아이 하나씩 안아 차에 태우겠지만, 애는 둘인데 어른은 나 하나라서 합이 30kg, 게다가 잠이 들어 몸이 축 늘어진 두 아이를 모두 안아 줄 수는 없다. 아직 걷지 못하는 둘째는 내가 안고, 첫째는 반드시 일어나 스스로 걸어야 한다. 아이들이란 자고로 잘 때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지 않던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게 깊이 잠든 아이를 좀 더 자라 토닥여주지는 못할망정,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 그것도 깨워 걸리기 위해 곤히 잠든 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엄마의 마음이란,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잘 자는 아이를 깨운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매일 아침 최대한 아이를 기분 좋게 깨우고자 갖은 노력을 한다. 우선은 여기저기에 뽀뽀를 해주며 평생 성미에 맞지 않던 오글거리는 말들을 귀에 대고 잔뜩 속삭여본다. “어, 여기 반짝거리는 게 뭐야? 어머! 엄마 딸이잖아?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기가 어디서 났어?” 갖은 아부와 과장을 한껏 떨어가며 마사지를 해주거나 간지럼을 태우는 등 스킨십을 한다. 그래도 도통 깨지 않으면 이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과자, 음료로 유혹해 본다. 사실 이 방법은 꽤나 잘 먹히는 효과가 있는 방법이지만, 아침밥을 먹기 전 간식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 매일같이 쓸만한 방법은 아니다. 그럼...... 그다음은? 일분일초가 바쁜 출근 시간에 더 이상의 인내는 없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 동생만 데려다주고 회사에 갈 테니 집에서 혼자 실컷 자!”, “얼른 할머니 집에 가자~~~ 더 안 일어나면 엄마 회사 늦어, 지각이야! 그럼 엄마 엄청 위험하게 운전해야 해!” 즉시 ‘협박&사정 모드’에 돌입한다. 잠결에 이런 말들로 강제 기상한 어린아이의 기분이란, 물론 좋을 리가 없다. 아이의 잠투정과 짜증을 받아 줄 힘이라도 있는 날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고 우리 딸~ 많이 졸리는구나! 엄마 출근 때문에 더 못 자고 일어나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를 이렇게 도와주어 정말 고마워!’하고 토닥거리며 달래어 주지만, 시간이 정말 촉박하거나 나 자신의 피로도 극에 달한 날에는 그 또한 얄짤없다. 칭얼대는 아이를 쌀쌀맞게 차에 태워 싣고 친정에다 훌쩍 맡기고는 회사로 쌩하고 떠나기 바쁘다. 아이와 투덕거리고 출근한 날이면 하루 종일 회사에서도 마음이 도통 편치 않다.
주중에 남편 없이 퇴근 후 오롯이 나 홀로 어린 두 아이를 보면서 내가 좀 못 자고, 못 먹고, 나를 예쁘게 단장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이따금씩 울컥이는 설움이 몰려오긴 했으나, 사실 평소엔 그런 감상에 젖을 만한 시간적, 육체적 여유도 없으리만큼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내가 힘든 것은 마땅히 스스로 감내해야 할 내 몫이었다. 그런데 아침마다 “엄마 나 더 자고 싶어, 나도 동생처럼 안아주면 좋겠어!”하고 엉엉 울어대는 네 살 딸아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한참 클 어린애 아침잠도 못 재우고 이러고 있는가, 진심으로 현타 오는 날들의 연속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원 시간이면 애가 거의 곯아떨어져서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커다란 돌덩이를 하나 얹은 듯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내 마음을 드나든다.
'어린 동생만 안아주는 엄마의 행동이 첫째에게 상처가 되면 어떡하지?'
'아빠가 함께 있어서 잠든 큰 아이도 깨우지 않고 번쩍 안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그만 1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말부부를 청산해야 할까?'
'내가 원더우먼처럼 두 아이를 거뜬히 안아 들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면 좋을 텐데.'
과연 정답이 뭘까. 내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행복한 우리 가정을 위해서 무엇이 가장 유익한 선택일까. 지금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미래에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신중한 선택이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유하는 깊고 고달픈 밤이 또 하루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