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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엄공 Nov 16. 2021

몸도 시간도,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니더라.

애 둘 맞벌이 주말부부, 남은 자의 독박육아 그 현실

"주중에 김서방도 없으니, 복직하면 평일 밤에 아기는 내가 데리고 잘 테니 큰 애만 집에 데리고 가."

출산휴가 3개월을 마치고 곧 복직을 앞둔 나에게,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엄마가 제안했다.


"안돼, 그럼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둘째는 언제 엄마랑 같이 있어.

 그리고 밤에는 엄마도 쉬어야지. 밤에까지 애 봐줘도 연장수당 못 줘~"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친정엄마의 거절을 거절했다.


내 비록 백일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할 수밖에 없는 워킹맘이지만, 아무리 주말부부가 되어 퇴근 후 오롯이 나 홀로 독박 육아를 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해서 두 딸 중 어느 한 아이를 떼어놓을 수는 없었다. 일언지하에 호기롭게 친정엄마의 제안을 거절하는 나를 보고, 집에 놀러 와 함께 있던 엄마의 고향 언니인 '영숙이 이모'는 나더러 '야도 참 욕심이 많다.'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욕심이 많다'가 아니라 '겁이 없다'라는 표현이 맞았다. 워킹맘이기에 늘 '아이와 함께인 시간'에 대한 결핍이 컸기도 했지만, 퇴근 후 혼자 어린애 둘을 보는 게 '정녕 얼마나 힘든지' 닥쳐보지 않고서는 몰랐더랬다.




우리 첫째는 생후 55일에 '9시간 통잠'을 선물해 준 효녀 중의 효녀였다. 돌 전 이앓이로 보채던 몇 날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밤에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한 적이 없었다. 늘 잘 잤고, 한번 잠이 들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잘 깨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는 첫째랑 또 다르더라. 둘째는 분유 120미리를 한 번에 다 마신적이 없을 정도로 뱃구레가 작았는데, 그 때문인지 돌이 되도록 세 시간마다 지속하는 밤 수유를 꾸준히 이어갔다. 워낙에 잠귀도 밝고 기질도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유난히 잘 깼다. 그랬던 둘째의 밤 수유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고, 주말을 제외하면 지난 일 년 여 간 나는 단 하루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연속으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아가 엉덩이에 토실토실 살이 오르기 시작할 즈음이면 엄마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잠이라면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잠순이인 나는 지난 일 년 간 정말로 '딱 하루만 푹 자보는 게' 소원이었다.


'수면의 양' 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도 현저히 떨어졌다. 쪽쪽이가 빠지면 울어대는 둘째 아이에게 신속히 쪽쪽이를 물려주기 위해 혹은 원활한 밤 수유를 위해 자연스레 둘째를 보고 옆으로 누워 자기 시작했더니, 어느 날 큰 아이가 묻더라. "엄마, 왜 그쪽만 보고 자? 그럼 나 동생이랑 자리 바꿀래." 혼자 일 때는 엄마랑 꼭 안고 자자고 그렇게 사정해도 뿌리치던 큰 딸도 당당히 '엄마 팔베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네 살 딸아이가 '차마 감지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부분까지 알아차리다니, 뜨끔한 마음에 나는 그날부터 의도적으로 큰 아이 쪽으로 몸을 돌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몇 달을 그랬더니, 늘 엄마 뒤통수만 보고 자던 둘째는 또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의 긴 머리카락에 강한 애착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얘도 엄마가 등 돌리고 자는 게 싫은 건가?' 하는 생각에 나중에는 결국 양팔 다 두 딸에게 내주게 되었다. 이건 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도 아닌 것이, 자면서 내 팔 하나 마음껏 쓰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일 신체의 자유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충분하고 편안한 잠' 따위를 바라는 것 자체가 과한 욕심 인지도 모르겠다.




제때 먹지 못하고 충분히 휴식하지 못하는 것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으나, 어린아이를 둔 주말부부였기에 더욱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조금도 내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아이가 아주 어려 누워 있을 때는 그나마 편했는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때부터는 당최 엄마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잠시라도 아이를 맡아주고 교대해 줄 사람이 없으니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릴 때는 물론이고, 양치를 하거나 세수를 할 때, 심지어는 생리대를 갈 때조차 한 손으로 어린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다. 문을 닫고 샤워를 하면 문 앞에서 울고불고하는 통에 돌 전까지는 퇴근 후 저녁이나 출근 전 아침 일찍 샤워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나는 아이들이 깊이 잠든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아이들이 깰세라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이불을 빠져나와 몰래 도둑 샤워를 해야 했다. 조용히 책을 읽고 마음이나 생각을 정리하는 평온한 시간까지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먹고, 자고, 싸고, 씻는 것 같은 최소한의 기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간절했다.


졸지에 주말부부가 되어 퇴근 후에도 나 홀로 어린아이 둘을 돌보는 '주말부부 맞벌이 애 둘 엄마'로 산다는 것, 그 실상에 대해 몰랐을 때나 용감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현실적인 어려움은 매일매일 지속되었고, 나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 30여 년을 살아오며 평생 당연하게 여겨왔던 내 몸도, 내 시간도- 그 어느 것 하나 정말로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아이들이 편히 먹고, 자고, 싸는 것을 돌보기 위해 마땅히 나의 그것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단정하게 내 몸을 씻고, 살뜰히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잠들기 전이면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다정히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럴 힘도 여유도 없어서 마음이 참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을 그나마 버틸  있었던 것은 '이미  아이를  년간 키워낸 짧은 엄마 경력'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고작 삼사 년뿐인 나의 짧은 육아 경험이 나를 육아 고수로 만들어 주어서 '그럭저럭 할만했다'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지난    첫째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의 세월은 야속하리만큼 빨리 지나가고, 아이는  깜짝할 새에 훌쩍 크더라.'라는 진리를 몸소 절절히 체감했고,  훗날 언젠가는 지금의 고된 시절마저 미화되어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힘든 하루하루도 소중히 여기며 견뎌   있었다.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캄캄한 터널을 혼자만 지나는  같아 외로움에 몸서리칠 때도 있지만, 어둠 속에서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누워 있던 아이가 자라 스스로 몸을 뒤집고, 서서히 기고, 딛고 서고, 그러다 걷고, 이윽고는  손을 놓고도 나보다 한참을 앞서 뛰어다니는 날이 마침내에는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 아이들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양분이 되어줄 것이고 어쩌면 몰라서  없던 초보 엄마를 진짜 용감한 배테랑 엄마로 만들어 주기도  테다.


글을 쓰기 위해 곤히 잠든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와 잠을 깨고자 세수를 하며 문득 거울을 보았다. 출산 후 왕창 빠졌던 내 머리카락들이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위를 향해 쭈뼛쭈뼛 잡초처럼 돋아나기를 시작 한 지 어언 18개월, 이제는 잔머리가 제법 길게 자라 축 늘어졌다. 나란히 잠든 아이들에게 힐끗 눈을 돌리니 '내가 나 이기를 포기한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키도 한 뼘, 두 뼘 쑥쑥 자라 있다. 잘도 큰다 내 딸들. 엄마 나이 5살, 오늘의 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고마워, 오늘도 엄마를 키워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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