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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엄공 Nov 10. 2021

엄마가 그리 좋으면, 엄마 집에 가서 사시든지.

임신한 여자를 절대 서운하게 하면 안 되는 이유

여자들이 임신 중 서운했던 감정은 평생 간다고, 누가 그랬던가.

친정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적에 평소에는 썩 즐겨먹지 않던 '아나고회'가 그렇게 먹고 싶더란다.

며칠째 생선회가 먹고 싶다던 만삭의 아내를 두고 일을 마친 뒤 혼자만 동료들과 회를 먹고 귀가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의 말을 내가 서른넷이 된 지금까지도 종종 하시는 걸로 미루어보아, 임신 중 서운했던 일이 평생 간다는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주말부부로 첫 아이를 임신했던 나에게도 4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여전히 앙금으로 남아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결혼 전 남편은 대학생활부터 군생활, 대학원 생활, 직장생활까지 총 13년 간 자취생활을 했다. 성인이 된 이후 줄곧 부모님과 떨어져 타지 생활을 하였으니 비록 결혼을 하여 또 다른 타 지역에 살림을 꾸리고 정착한들, 시어머니와 남편의 생활은 분명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 한 달 만에 아이가 생겨 내가 임신 7개월에 접어들 즈음부터 시어머니에게 걱정스러운 이상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루에도 수차례 아들 둘의 어릴 적 사진으로 SNS 프로필 사진을 바꿔가며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던 것. 처음에는 나도 '아이들 어릴 때 추억에 잠기셨나 보다'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도 하루, 이틀이 지속되고 계속해서 반복되니 '뭐지? 왜 저렇게 혼자 과거에 갇혀서 무슨 영정사진도 아니고 희미하게 빛바랜 아들들 어릴 때 사진을 자꾸 올리는 거지?' 슬슬 짜증이 났다. 그리고 조금 더 나중에는 '혹 어머니가 심각한 우울감이나 상실감에 사로잡혀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까지 이르렀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주중에 대구에서 지내던 남편에게 종종 (요구한 적 없는) 김치나 반찬을 가지러 오라는 이유로 순천에 들렀다 신혼집이 있는 부산으로 가라고 요구하고는 하셨다. 아니 세상에, 노랫말에도 있지 않던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아하.' 대구 다음은 부산이지, 대구에서 김치 가지러 순천을 찍고 부산을 오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매사에 '효율적인 이동 동선'에 집착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 불가한 요구였지만, 어디 정녕 김치 때문이겠는가. '십 수년을 떨어져 지내던 아들이 결혼을 하고 곧 아이가 생기려 하니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걸까?' 의아하긴 했으나 어쨌든 '아들이 겁나게 보고 싶으심'에는 틀림이 없었다.


행여나 오해는 마시길, 순천은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나도 순천 좋아한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함께 갈 수 없지만, 연월차 사용이 자유로운 남편만이라도 주중에 휴가를 좀 내어 본가에 가서 시어른들을 뵙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길 권유했다. 마침 연이어 어머니의 호출을 거절해 괜한 죄책감 비스무리한 감정에 시달리던 남편도 나의 제안을 반기며 수, 목, 금 주중 3일간의 휴가를 내어 부모님을 뵈러 갔다. 나는 '시어머니의 비효율적인 방문 요청'은 싫었지만 시어머니는 좋았다. '장가보낸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은 싫었지만 자식과의 '물리적인 분리'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분리'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시어머니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진심으로 며칠간 그리운 아들과 지내며 시어머니의 마음이 어느 정도 안온 해지길 바랐다.



'수요일에 갔으니 2박 3일이면 충분하겠지-?' 나는 토요일이 되기 전에는 남편이 내 곁으로 당연히 돌아올지 알았다. '수요일에 갔다가 토요일 전에 와'라고 남편에게 콕 집어 날짜를 정해주지는 않았지만, 우리 부부도 주말부부였기에 일주일에 함께 할 시간은 고작 주말 이틀뿐이었으니, 적당히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금요일 늦은 밤 혹은 토요일 새벽쯤에는 남편이 집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금요일 밤에도, 토요일 새벽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 오나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려도 남편이 오지 않자

토요일 오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뭐해. 언제 와?"

"응~ 어머니가 점심에 삼겹살 먹자고 하셔서, 점심에 삼겹살 구워 먹고 가려고~^^"

사태 파악 안 되는 남편은 삼겹살 먹을 생각에 들떠서 대답했다.

삼겹살을 다 구워 먹고 부산까지 오려면 족히 오후 3시는 되어야 했다.



주중에 남편도 곁에 없이 혼자 출근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씻을 힘도 없어 소파에 쓰러져 잠드는 임산부 아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남편과 '임신해서 직장 생활하느라 고생 많지?' 말로만 며느리를 걱정해주는 척할 뿐, '토요일인데 이제 얼른 돌아가서 아내 좀 돌봐줘'하고 아들을 돌려보낼 생각은커녕 오히려 또 점심 먹고 가라고 아들을 붙들어 두는 시어머니에게 너무도 화가 나고 실망스러웠다.


내 딴에는 어머님이 걱정스러워 남편에게 어머님을 뵙고 오라 좋은 마음으로 본가 방문을 제안 한 건데, 시어머니는 한창 신혼이고 임신 중인 아들네 부부가 주말부부로 떨어져 사는 형편은 왜 전혀 헤아리지 못하실까. 한참 꿀 떨어질 신혼에 주말부부로 살면, 아무리 엄마가 자꾸만 붙잡아도 남편은 마누라랑 뱃속 아가 보고 싶어서라도 얼른 와야 하는 게 아닌가.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고, 이윽고는 내가 괜히 절절한 모자 사이에 끼어들어서 둘의 만남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어차피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나는 남편이 필요 없으니, 엄마가 그리 좋으면 엄마 집에 가서 평생 엄마랑 살라고 쏘아붙였다. 그냥 하는 빈 말이 아니고, '임신 중 이혼 시 태아 친권, 양육권' 등을 꽤 열심을 내어 찾아볼 정도로 아주 단단히 화가 났었더랬다.




결론은-? 다행히 이혼은 안 했으니 아직까지 애 하나 더 낳고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매우 마음이 상하고 화가 많이 났던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만, 어떻게 해서 남편과 화해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기억은 정말로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 말인즉슨, 여차여차해서 적당히 넘어는 갔으나 그날 남편과 시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마음으로 온전히 용서하지는 못한 것. 심지어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도 서운한 마음이 먹구름처럼 몰려온다. 나는 이따금씩 친정엄마의 '아나고회 타령'을 들을 때마다, '임산부가 무슨 생선회야- 아빠도 다 생각해서 그랬겠지'하고 애써 엄마를 위로해보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34년 전으로 돌아가 둘째 딸을 임신 중이던 서른 살 엄마에게 '아나고회 한 대접'을 내어 밀지 않고는 결단코 해소되지 않을 케케묵은 서운함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남편들이여, 살면서 두고두고두고 귀에 가시가 박히도록 '임신 중 당신이 얼마나 무심한 남편이었다고!'라는 원망 듣기를 원치 않는다면, 임신한 여자를 절대로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직 한 평생을 다 살아보지 못해 임신 중 여자들이 겪은 서운함이 정말로 평생 동안 지속될는지는 속단하지 못하지만, 친정엄마의 경우를 보나, 나의 경우를 보나 적어도 반 평생 정도는 거뜬히 지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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