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여서 더욱 힘든 주말부부의 임신기간
결혼 당시 남편과 나의 직장은 1시간 30분 거리로 우리는 신혼부터 주말부부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당장 임신 계획이 없던 우리 부부에게 신혼 처음 두 달간의 주말부부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평일은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 후에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남편이 신혼집으로 오는 수요일과 주말에는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이어갔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정감은 갖되, 오래간 만들어온 각자의 일상 패턴과 독립된 공간은 지킬 수 있다니, 주말부부가 이래서 좋구나. 한 치 앞을 모르고 주말부부의 삶을 애찬 하던 때였다.
2017년의 입춘을 앞둔 금요일, 막 결혼 2개월 차의 신혼부부답게 주말에 있을 신혼집 집들이를 위해 퇴근 후 가까이 사시는 친정엄마와 함께 주말 손님맞이를 준비하던 날 밤이었다. 그런데 꼼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감기 몸살에 걸린 걸까? 분명 뜨끈뜨끈 난방을 켜 두었음에도 이가 덜덜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나의 증상을 살펴본 친정엄마의 권유로 나는 진통제를 복용하기 전 '정말 혹시 몰라' 임신 테스트를 해 보았다. 결과는... 선명한 두 줄.
이제야 자신 있게 '임신은 축복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아이를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언제고 임신을 안 할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창 '연애하는 듯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이 준비된 상태에서 '건강한 임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직 내 멘탈은 '기혼녀'로의 업그레이드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덜컥 임신이라니! 아무런 준비 없는 갑작스러운 임신은 결코 녹록지 않았는데, 주말부부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임신 후 난생처음 경험하는 생경한 입덧과 먹덧에 밤낮으로 시달렸지만 주말부부이기에 남편은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자다가 일어나 변기통을 부여잡고 꾸역 댈 때 곁에서 등을 두드려 주거나, 어쩌다 간혹 먹고 싶은 무언가가 생각나 군침이 돌 때도 밤이고 새벽이고 뛰쳐나가 먹을 것을 공수해 줄 남편은 곁에 없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쏟아지는 잠을 애써 참으며 버티고, 퇴근 후면 녹초가 되어 씻지도 못한 채 소파에 널브러져 잠드는 날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남들은 임신하면 느긋하고 우아하게 심신의 안정을 취하며 고상하게 태교 하는데, 나는 퇴근 후 투정 부릴 남편도 곁에 없이 낮이면 일하고 밤이면 혼자 쓰러져 잠드는 삶을 나날이 반복하자니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정말 너무도 서러웠다. 어디 그뿐인가. 임신 후기로 넘어갈수록 체내 혈류량이 증가하고 몸이 무거워져 온몸이 퉁퉁 부었다. 자다가 다리가 저려 자주 깼지만 산처럼 부른 배에 스스로 다리를 주무를 수 없었던 날들, 환도가 서서 앉기도 서기도 힘들었던 날들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다. 막달에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운동 중인 아파트 단지 내 다른 임산부처럼 곁에서 함께 운동해 줄 남편이 없는 것도 서럽더라.
임신 호르몬의 영향일까, 임신 중 여성의 몸의 변화도 큰 변화이지만 임신 중 여성의 예민한 감수성은 확실히 배의 배가 된다.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가도 자정이 지나면 이윽고 잠에서 깨어났다. 뱃속 아이를 위해 좋은 생각만 해야 할 때인걸 알지만, 콕 집어 무엇 때문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이유와 걱정들로 혼자 베갯잇을 적시며 새벽을 하얗게 지새웠다. 그 외롭고 고독했던 임신 기간 동안 곁을 지켜줄 남편이 간절했다. 곤히 잠든 남편을 굳이 깨우지 않더라도, 한 팔로 잠든 남편의 두툼한 옆구리를 비집고 꼭 끌어안을 수 있다면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임신 중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련의 변화들로 인한 어려움과 별개로 주말부부였던 내게 임신 중 가장 두려웠던 것은 바로 '갑자기, 홀로 긴급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었다. 초산인지라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인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다. 씩씩하게 주말부부로 지내며 출산 직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버텨 낸 나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 홀로 아이를 지킬 수 없는 긴급 상황에 처하게 되어도 남편이 내 곁에 없다는 두려움은 늘 나의 무의식을 휘젓고 다녔고, 나는 이따금씩 아이를 조산하는 악몽을 꾸었다. 그럴 때면 꿈속에서도 탯줄이 달린 채 핏덩이로 갑자기 나온 아이를 붙들고 울며 휴대전화를 꺼내 한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남편보다 119를 먼저 불렀다.
주말부부의 임신 기간, 몸도 마음도 남편과의 관계도 너덜너덜해져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보다 나를 강하게 옭아매었던 그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그 두려움은 '5분 대기조'의 남편이 곁에 상주하고 있지 않은 것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비록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임신이었을지언정,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끝까지 건강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엄마의 마음, 소명감 혹은 모성애에 기인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혹 임신 중 나와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불안해하고 있는 예비엄마나 주말부부가 있다면, '미지의 세계인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주말부부 이기에 나만 겪는 듯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내 무의식 속에 커져가는 모성애'를 자각하고, 불현듯 엄습해 오는 그 두려움은 곧 '내 속에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니,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며 기쁨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임신 기간을 감내하길 응원한다.
덧붙여, 혹 임신한 아내를 둔 주말부부 남편이 있다면, 이번 주말만큼은 임신 중 홀로 고단하고 서러웠을 아내의 몸과 마음을 달래어줄 시간제한 없는 안마사가 되어주시길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