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세기 21:20
나는 성경에서 가장 궁금한 인물이 이스마엘이다.
언젠가 천국에 가서 만나볼 수 있다거나, 혹은 꿈에서라도 예수님을 만나 물어볼 수 있다면 가장 묻고 싶은 것이 이스마엘의 삶이다. 위대한 업적의 선지자들보다 나는 이 인물이 더 궁금하다.
성경에 몇 마디 언급되지 않았기에 그 삶을 유추해 보기도 어려운 인물.
나는 가끔 이스마엘의 삶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는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심지어 아내를 동생이라 속여도 재물을 얻게 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부 아브라함의 첫아들이자 유일한 아들이었었다.
어머니는 비록 정부인이 아니었지만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그는 아마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교육받았을 것 같다. 아브라함은 아마 첫아들인 그에게도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을 것이다. 주인마님의 눈총을 받을지라도 나는 이 집안의 상속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장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백세 되던 해, 이스마엘은 아마 10대 청소년이었을 어느 날 주인마님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다. 온 집안이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기뻐하고 있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삭이 젖을 떼자 그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달랑 양식 조금만 손에 쥐고 집에서 쫓겨난다.
성경에 보면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라고 기록하며 마치 그 원인이 이스마엘의 행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이스마엘은 아직 어린 10대 청소년이었다. 한 부모에게서 동생을 보아도 첫째는 그 빼앗긴 사랑에 샘을 낸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기에 된 아이가 이삭을 샘낸 것이, 잘한 행동은 물론 아니지만 뭐 그리 용서받지 못할 죄인가?
그도 아브라함의 아들인 것만은 분명한데, '네 주인마님에게서 아드님이 태어나셨으니 저는 주제를 알고 종놈답게 행동하겠습니다' 해야 했다는 것인가?
아직 어려 샘 좀 냈기로서는... 세상에 맨몸으로 쫓아내다니...
만약 그 시대에 내가 살고 있었더라면, '세상에 아브라함과 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품 좋은 분들인 줄 알았더니 지들 생각만 하는 세상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들이었네' 하고 욕했을 것 같다.
이스마엘의 시선에서 보자면, 하나님은 내 아버지에게 나를 버리라고 명하신 분이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인 아버지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성취를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이용하며 나를 낳고 쓸모 없어지자 버린 자들이다. 누가 태어나게 해 달랬는가? 하갈이 아브라함을 먼저 유혹했던가? 하갈을 통해 자식을 보고자 했던 건 다름 아닌 아브라함과 사라였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시는 과정 중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실수로 인해 이용당하고 버려진 자. 그는 성경의 인물들 중 손꼽히는 상처받은 자가 아닐까
그래서 난 이스마엘의 삶이 궁금하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약속된 자녀인 이삭이 아니면 쉽게 버리시는 분 같던 하나님께서 죽게 된 하갈과 이스마엘 앞에 나타나 구하시더니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라는 인상적인 문장이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 계셨다고...?
함께 계셨다는 말의 히브리어 원문은 "하야"라는 단어인데, 나는 문득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와 같은 단어인지 궁금해졌다.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하실 때에도
이삭에게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실 때에도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기술할 때에도
나는 사실 히브리어는 잘 몰라서 어쩌면 이것은 그냥 영어의 be 동사처럼 별뜻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의 주요 인물들에게 함께하심을 언급하시는 장면들을 찾아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때,
아! 하나님은 예수님의 계보를 따라 선택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동일하게 존재하시는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스마엘에게는 그토록 야박한 삶을 허락하셨는가 생각해 보면, 사실 그 선택받은 이들의 삶도 그다지 녹록지는 않았다.
아브라함은 첫 자식 이스마엘을 버려야 했고, 약속 성취 독자 이삭을 죽일 결심을 했어야만 했다.
야곱은 자기 피붙이인 형을 피하여 도망가 친척인 삼촌 집에서 착취당했고, 사랑하는 여인 라헬은 일찍 세상을 떴으며, 그 후 가장 귀히 여기던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고통 속에 한동안을 살았다.
요셉은 두말할 필요 있던가? 형제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들을 삶을 배우는 것은, 그들이 이 모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동일하신 그 하나님을 차별하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우리의 선택이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스마엘의 삶이 궁금하다
이스마엘은... 알았을까?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린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선택한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만약 알았다면...
그는 과거에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뒤로 하고
지금 여기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깨닫고 또 동행하며 살았을까?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였을까?
혹은...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사는 날 동안 분노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고 살았을까?
몇천 년이 지난 일인데 나는 마음속으로 이스마엘의 삶을 응원한다.
그가 상처 가운데 눈을 들어 지금 그의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에게 허락하시는 삶의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