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자격

by 브니엘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 21~28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요셉에게 혹은 야곱에게 그렇게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집중하고 혹은 이입하는지가 참 신기했다.

나는 항상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브라함이 젊지 않은 나이에 얻은 귀한 첫아들이었지만 본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나자 자신의 어머니와 고작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지고 내쫓겨야 했던 이스마엘(그토록 재산이 많았건만 아브라함은 왜 그것만 쥐어주고 보냈을까? 그래도 아들인데 양이라도 몇마리, 하인이라도 몇명 붙여줄 것이지)

그저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지 못했던, 동생을 더 사랑한 어머니의 적극적 협조 때문에 장자권을 빼앗긴 에서

(성경에는 야곱을 향한 에서의 분노만 표현되어 있지만, 어쩌면 그는 야곱을 도운 어머니에게 더 상처받지 않았을까 )

그리고 예수님께 개취급을 받았던 수로보니게 혹은 가나안 여인

예수님의 계보로 이어지는 선택받은 이들보다 그저 몇 번 언급되고 사라진 주변인물들에게 더 관심이 간 것은 나의 처지가 그들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다 보니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발견할 수 없었다.

성경에 아브라함 집에서 쫓겨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스마엘과 하갈의 이야기에 이어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이 한 문장을 발견하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과도 함께 계셨구나... 그가 이삭처럼 아브라함의 기업을 잇는 자로 선택되지 못했다 해도 그를 버리신 것은 아니구나... 그에게는 그의 몫의 삶을 허락하셨구나 하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 감정이입을 했던 것이 바로 저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었다.

당대에 온갖 병자와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시며 사람 안 가리시는 것으로 유명했던 예수님께 정확하게 "개"라는 표현을 들으며 세상 하찮은 취급을 받은 여인.

저 말씀이 얼마나 비수처럼 가슴에 날아와 박히던지.

'예수님이 나한테 개... 개라고 했어....'

나는 그것이 꼭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나도 이방인이고 나도 여자니까.

나는 저 여인이 아니야. 저것은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일부러 하신 말씀이야. 하면서

앞뒤에 있는 다른 말씀들과 함께 적당히 버무려 어떻게 넘겨보려 애써도 저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는 마치 밥알에 섞여 들어온 모래알처럼 입안에서 까끌거리며 영 넘겨지지가 않았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큰 믿음, 끈질긴 기도 등등 아름답게 표현된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마음 한 구석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은 나뿐일까...?


그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 맞지. 그런데 그렇다고 말이야. 구원하겠다고 오신 분께서 그걸 그렇게 꼭 집어서 대놓고 찌르셔야 했을까? 자비를 베풀기 전 '너 니 처지가 어떤지 알지? 내가 얼마나 자비로운지 알겠지?' 하셨어야 했을까? 절박한 여인인 줄 뻔히 아셨을 텐데 굳이 재차 구하게 하셨어야 했을까?

기꺼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인의 상처를 헤집어 놓으신 예수님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긴, 더 대단한 것은 이 여인이긴 했다. 개라고 하거나 말거나 천대하거나 말거나 은혜를 구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여인은 결국 원하던 것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 큰 믿음이라는 칭찬도 받았다.

이 정도 자존심은 없이 굴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인가...?

뭐가 큰 믿음이라는 거야? 구질구질하고 절박하면 큰 믿음이야?

그럭저럭 주워섬기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이 여인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성경의 지점에서는 속도가 빨라지곤 했다. 곱씹지 말고 그냥 빨리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지 싶어서.



조금은 전보다 더 벅찬 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몇 번이나 대충 주워섬겼던 저 구절에 나도 모르게 눈이 머물러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주 친절한 예수님을 발견했다. 그래. 그것은 아주 친절한 이야기였다.

행함으로 보여주시던 것을 친히 말로 한번 더 설명해 주신.

자비로운 예수님께서 도무지 할 것 같지 않은 말씀을 하시고 오해받는 것(?)을 감수하시면서까지 남겨주신 아주 친절한 이야기


예수님이 나에게 개라고 했어...라고 느껴지던 그날처럼 내가 그 여인이 되어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저 성경구절이 마치 화살처럼 내 가슴이 훅 찌르고 들어온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 스스로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니까.

내 마음 깊은 곳의 열등감, 거절감, 패배감이

어쩌면 나 스스로도 마주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내 깊은 곳의 소리가

그 날 그 "개"라는 말에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맞아! 난 하찮아! 내게 무슨 소망이 있겠어?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들이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나는 헤집어진 상처때문에 아팠고 분노했고 원망했고 좌절했다.

난 너덜너덜해진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예수님 앞에 섰다.

'그래도요....나도 하나님 자녀라고 하셨잖아요.....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하찮은 이방인 여인이 되어 서있는 나에게 예수님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래. 앞으로도 오늘처럼 하면 돼.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순간에도 너 자신조차 네가 참담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너는 내 앞에 나아오기를 멈추지 말렴

앞으로 사는 날동안, 조금만 방심하면 누군가 네 귀에 대고 속삭일 거야

너에게 과연 사랑받을 자격이 있겠느냐고 네가 스스로 무슨 자격을 갖추어야만 내 앞에 올 수 있는 것처럼

이방인인데, 여인인데, 저주받은 자인데, 가난한데 , 실패자인데, 죄 많은 자인데, 난 별 쓸모가 없는 자인데, 난 이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데... 등등 온갖 이유들이 때로는 꽤 합당하게 느껴질 거야

수많은 이유들을 대며 네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겠냐고 참소하겠지

내가 오늘 그들 흉내를 한 번 내보았지. 너는 개 같은 이방인인데 은혜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말이야

때로 그 소리가 내 목소리처럼 느껴져도 속지 말렴.

나인 척 가장하는 소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란다.

그 모든 소리에 너는 귀 기울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너의 자격은 그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니까.

너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참소하는 수많은 소리들은 그냥 모두 무시해.

딱히 들을 가치가 없단다. 네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너도 모르게 헷갈리기 시작할 거야.

그러니 그런 소리가 들리거든 귀를 닫고 오히려 내게로 뛰어오렴

잊지 말아라. 진리는 이거야. 너의 사랑받을 자격은 나에게서 오는 거야.

너의 자격은 너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분의 속성에서 오는 거란다. 아버지는 변함이 없으시지.

너는 그냥 그분의 속성에 의지해서 사랑을 받으면 돼.

그러니 넌 그 모든 순간에 그 소리를 뚫고 오늘처럼 내 앞에 나와야 해

살다 보면 어느 날 환경의 소리에 묻혀 이 진리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 거야

세상이, 환경이, 사람들이, 눈앞에 문제들이 시끄럽게 떠들수록 넌 나에게 집중해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해 내도록 해.

그렇게 내 앞에 나와서 나와 마주 봐야 해.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렴.

그것이 내가 피값주고 산 나의 신부 너에게 원하는 단 한 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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