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엔지니어로 살아가기
Life in the UK as a engineer
영국으로의 진출
처음부터 영국을 목표를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자동차 엔지니어로써 영국에서 일할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막연히 해외에서 일하게 되면 미국이나 독일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자동차 하면 처음 대량 생산을 한 포드나 독일의 폭스바겐이나 BMW가 떠오르지 않은가. 그들이 자동차를 어떻게 개발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8년 차 직장인의 사춘기는 가족의 반대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불안을 넘어 영국에서 온 오퍼를 받아들이게 했다.
2010년 초반 당시에 영국을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는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기술이었다. 지금은 도로에서 어렵지 않게 하이브리드나 전기 자동차를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프리우스를 제외한 국내 하이브리드 모델이 막 출시될 참이라 길에서 간혹 보이는 정도였다. 유럽 자동차 업계에서는 디젤 개발에 치중하고 있던 차라 하이브리드 개발은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었다. 개인적으론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어떤 길을 갈지 고민을 하던 차였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자로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시스템인 전기차 개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배터리로 진로를 생각했고, 마침 한국 배터리 업체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 기회까지 생겼다. 많은 기대를 갖고 열심히 준비해서 면접을 보았는데 아쉽게도 최종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인생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지 않나. 떨어지고 홧김에 지원한 영국 회사에서 몇 달 후에 연락이 와서 화상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았으니 말이다.
합격 후에 3 개월의 준비 시간이 있었는데,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해야 했다. 8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그렇지만, 외국 회사에 바로 입사해서 이민 가는 시나리오는 가족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달의 설득 과정을 거치다 보니, 회사에 통보하고 비자와 이사 준비 등을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3월 27일에 회사를 퇴사하고, 나머지 정리는 남아 있는 와이프에게 부탁하고 30일 혼자 영국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국에서의 첫 교훈은 4월에 영국에 봄은 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첫날은 늦은 밤에 숙소에 도착하고 비가 조금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함은 계속되었고 타지에서의 외로움은 추위를 더해 주었다. 더 큰 문제는 봄 날씨를 예상하고 단벌 재킷만 외투로 가지고 오고 나머지는 선박 운송을 맡겨버린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런 문제는 앞으로 닥칠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축에 드는 것이었다.
영국 회사 생활의 시작
9년 만에 신입 사원의 초심으로 돌아가, 4월 1일 드디어 첫 출근이었다. 한국 대기업처럼 몇 주씩 계속되는 신입 사원 교육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반나절 동안 인사팀 소개와 팀과 프로젝트 소개로 끝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경력이라지만, 반나절 인수인계 후에 바로 실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은 당황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회사의 특성을 이해하고 면접자 입장에서 채용을 해 보는 과정을 거친 결과, 다음과 같은 이유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해외 업체는 경력자에 경우 포지션을 명확히 해서 채용 공고를 하고 인터뷰에서도 그와 관련해서 질문을 주로 한다. 따라서 인터뷰 후에 입사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담당 업무에 대해서 이해를 갖고 오게 된다. 다른 이유는 업계의 특성이다. 다니던 회사가 자동차 엔지니어링 컨설팅 업체여서 고객으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정해진 기간 안에 결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엔지니어가 일에 착수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주일 전만 해도 한국 대기업 조직에서 근무하던 것에서 해외 중소 업체에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