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 아이디어톤 회고 : 작은 점들이 모여 최우수팀이 되기까지
인하대 IVC와 숭실대 synergy에서 공동 주최한 CONNECT 아이디어톤에 참여했다.
먼저 김태훈, 박종한, 신가인 대표님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해적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종한 님은 이 첫 마디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사무실에 걸어두었던 졸리 로저 이미지를 화면에 띄웠다.
학생 창업자로 시작한 대표님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내가 처음 창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 때의 설렘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멋지게 살기.
그래, 나도 이 한마디 때문에 창업가를 꿈꿨지.
“Why join the navy if you can be a pirate?”
근데 창업 프로그램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창업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철저히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고객을 만족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 같은 마음으로 어른처럼 일할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내가 팀장이 되었고, 비록 딱 하루이지만 멋진 팀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팀원들 모두가 부담 없이 의견을 제시하고 피드백할 수 있어야 빠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와 학번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우습지만 서로 영어 이름도 정해주었다.
나는 베르베르, 규리 님은 레이첼, 수민 님은 슈, 준희 님은 마이클. (ㅋㅋㅋ)
아이디어톤 주제는 ‘식품’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내기로 했다.
‘타겟’, ‘문제’, ‘아이템’ 항목을 만들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죽죽 써 내려갔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재밌는 아이디어가 여럿 나왔는데, 아래가 그 일부다.
1. 3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든든한, 식사를 빠르게 냄새 배는 걱정 없이 해결하고 싶은 극강의 효율왕 워커홀릭을 위한 가성비 만능 부리또 (이거 진짜 누가 만들어 주면 안 됨?)
2. 대학생 밥약 잡는 앱. 밥약계의 당근마켓이 되어보자!!
3. 개발자를 위한 제로 슈거 타우린 쿠키
4.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를 위한 저포드맵 도시락 정기 배송 서비스
5. 못난이 채소와 곤충으로 만든 반려동물 사료
지나가는 운영진분들에게 아이디어들을 간단히 소개했고, 특히 4, 5번의 반응이 좋았다.
4번 아이디어는 우리 팀원이 고3 때 실제로 겪은 문제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라 p-t-s가 명확했고,
5번 아이템은 ‘오~ 여기는 식품을 동물 식품으로 했네요! 신박하다~’라는 반응이었다.
5번의 반응이 더 마음에 들었다.
반려동물 사료로 아이템을 정했고, p-t-s를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린캔버스를 쓰는데, 우리가 문제를 억지로 찾아내는 느낌이었다.
곤충으로 만든 사료가 왜 경쟁력이 있는지, 왜 일반 사료가 탄소 배출을 더 야기하는지 등
팀원들과 말 없이 웹서핑을 하는 시간이 10분, 15분… 점점 길어졌다.
토스 이승건 대표님의 말이 떠올랐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인용한 이 문장은 스타트업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회의적인 접근, 빠르고 린한 고객 검증과 피봇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미한다.
“오~ 신박한데요?”
우린 이 반응에 취해 문제와 고객을 억지로 찾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다행히도 너무 늦지 않게 문제 인식이 명확한 5번 아이디어로 피봇을 결정했다.
린캔버스가 쭉쭉 채워졌다.
실리콘밸리 KIC에 방문했을 때 센터장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 사업계획서를 들고 경쟁사를 찾아가라. 진심을 다해 피드백 해줄 것이다.”
남을 밟고 올라가야 경쟁에서 승리하는 한국과 달리, 상호 발전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의 마인드를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마침 이번 아이디어톤에 다른 팀들과 서로의 비즈니스 모델을 피드백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들의 발표를 진심으로 들으려 노력했다. 어떤 부분이 make sense 하지 않은지, 어떤 부분이 개선되면 좋을지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상대 팀들도 진심을 다해 피드백 해주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식단보다는 스트레스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직장인들 타겟도 좋은데, ‘수능 도시락’ 키워드를 활용해서 수험생들에게 적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깨나 했는데, 진짜로 나오면 좋을 것 같네요!”
덕분에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도 보다 촘촘해졌다.
밤새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하고 발표 준비를 하며 ‘우리 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
내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발표 내용을 정리해서 클라우드에 올리면, 수민 님은 이를 바로 PPT로 제작했고, 발표에 필요한 근거 자료를 규리 님과 준희 님은 빠르게 찾아 정리해 주었다. 피드백 시간에 받았던 질문들을 토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했고, 예상 질문까지 리스트업해 미리 답변을 정리해 주었다.
누구 하나 무임승차 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 각자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다. 덕분에 팀장인 나는 팀원을 믿고 전권을 넘길 수 있었다.
유능한 팀원들 덕에 의사결정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문제, 타겟, 솔루션이 명확하니 따로 발표 대본을 준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었다.
작년과 올해 여러 창업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쌓았던 역량들 덕에 좋은 팀장이 될 수 있었고, 좋은 팀원들을 만나며 최고의 성과를 만들었다.
점처럼 모인 작은 노력들이 선이 되어 멋진 모양을 만든 순간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스티브 잡스의 인용구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Why join the navy if you can be a pirate?”
작은 성공들이 쌓여 점차 확신이 생기고 있다.
어쩌면 나 진짜 해적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