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컬튼 상영작] 연극 <그날이 오면> 리뷰
영웅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날 때부터 초능력을 갖거나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는 영웅 서사는 슈퍼히어로 영화에나 존재한다. 현실 속 영웅 대부분은 특정 시기와 환경 하에서 어느 순간 각성하고 영웅이 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들을 각성시키는 건, 특별할 것 없는 그들 주위의 다른 누군가다.
연극 <그날이 오면>은 잘 알려지지 않은 안양 지역의 애국지사들을 조명하며 평범한 소시민이 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04년 안양, 시흥 지역에서 2차 농민 봉기를 일으킨 하영홍, 1905년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시도한 원태우, 1919년 독립 만세 운동에 앞장선 한흥리와 이영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재천-이재현 형제까지. 각자 누군가의 남편, 자식, 형제였던 이들은 바로 그 가족들 덕분에 용기를 내고 위로받으며 애국지사로 우뚝 선다.
연극은 현재의 안양을 무대로, 한 청년과 중년 광복회 지회장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중년의 한국인은 청년의 한국인에게 일제강점기 안양의 독립 열사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차례로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입체 낭독극 형태로 제작된 공연에서 배우들은 하나같이 검은 옷을 입고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각자 애국지사들을 연기한다. 화려한 무대 연출에 의존하지 않고, 제한된 액션과 소품으로 주어진 캐릭터를 그야말로 꼭꼭 씹어 소화되는 대사와 표정들은 그래서 도리어 몰입도가 높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나라에 헌신하려는 주인공의 가족사를 버무린 에피소드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다른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공감적 요소가 크다. 강제 노역을 견디다 못해 봉기에 앞장선 철도건설 노동자 하영홍과 그를 걱정하면서도 믿음으로 곁을 지킨 어머니.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테러 실패 후 옥살이를 한 원태호와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된 그를 품어준 아내. 학생 독립운동가 한흥리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나서고, 한흥리의 든든한 응원군이 된 짚신장수 이영래. 아버지를 따라 상해에 온 뒤 따로 또 같이 독립운동을 실행한 재천 재현 형제까지. 가족과 이웃, 세대를 넘나드는 조력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그려진다.
안양시 애국지사 7인을 기리기 위해 기획된 <그날이 오면>은 지역 창작자들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잊혀 가는 애국지사들의 숭고함을 소환하는 걸 넘어, 각자 살아가는 지역과 공간에 얽힌 서사를 발굴해 내는 일은 다른 어떤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 외에도 어디에나 존재했을 부모의 부모, 이웃의 이웃 이야기들. 이런 작품들이 지역 곳곳의 공연장에서 상연된다면, 우리의 '로컬 라이프'도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연극 <그날이 오면> 실황 영상
작/연출: 이목련
출연배우: 김경연, 김솔민, 김윤재, 남승주, 박다은, 유창명, 이성우, 최선희, 함수아
제작: 극단 미스터리
공연 일시: 2020년 11월 20일
공연장소: 안양아트센터 수리홀
*연극 <그날이 오면> 실황 영상은 '레드컬튼프리뷰X플앱'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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