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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앱 Apr 29. 2021

한국전쟁 한복판에서 남북한 10대 소년-소녀가 만나면

[레드컬튼 상영작]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리뷰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스틸컷 (사진=극단 배우들)


모든 전쟁에는 명분이 있다. 국가의 이념이나 국민의 안전, 자유 따위를 수호한다는 식의 명분 말이다. 400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한국전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셀 수 없는 군인과 민간인이 전쟁통에 숨졌다. 국가와 이념을 떠나 목숨을 바치거나 혹은 빼앗긴 이들이다. '순국선열' '호국영령' 같은 수식어로 국가는 그들을 추모하지만, 분명하게 기억되어야 하는 건 따로 있다. 대규모 살상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전쟁 그 자체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크나큰 재앙이자 불행이란 사실 말이다.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은 바로 이런 전쟁의 참상을 극명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열다섯에서 열여덟 정도에 불과한 어린 학생들이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고, 이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며 위협한다. 이 와중에 남한과 북한은 옳고 그름, 선과 악, 정의와 불의처럼 상반되는 이데올로기 진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저 이 작품은 국가에 의해 사지로 떠밀려 온 소년, 소녀들을 위태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스틸컷 (사진=극단 배우들)


이야기는 1950년 8월 31을 영흥도에서 시작된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남한은 학도병들을 'X-RAY' 작전에 투입하고,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4명의 소년은 역시 또래 여성 4명으로 구성된 북한 학도병들과 맞닥뜨린다. 나란히 진지를 구축한 남한과 북한 학도병들은 가운데 선을 긋고 서로 넘어오지 않는 조건으로 평화를 유지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부의 긴장과 외부의 위협이 더해지며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해군첩보부대 '켈로부대'의 활약을 모티브로 한 <그 해, 영흥도 11-13>에서 역사는 배경으로만 기능할 뿐, 극 중 인물과 사건들은 오롯이 작가의 상상을 통해 구현된다. 남한의 학도병과 더불어 북한의 소녀 병사들이 영흥도에 있었다는 설정은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약자이자 청춘으로서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데 주효하다. 10대 아이들이 막대기와 노끈으로 선을 긋고, 서로를 감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휴전선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축소판이다.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출연 배우들 (사진=극단 배우들)


소나기가 내리고 모래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살아서 섬을 나가자"는 약속만큼은 남북한 소년 소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생필품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이들은 전쟁통 속 일상화된 '가난'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전우와 적군을 초월한 공동 운명체가 된다. 가족과 친구들 떠올리거나 처연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년, 소녀들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지금의 여느 10대 청소년과 다르지 않은 주인공들의 면면은 전쟁이란 비극적 상황과 대조되면서 유독 가슴을 울린다. 맛있는 음식을 숨겨뒀다 몰래 먹는 아이, 첫 생리를 하곤 "나 죽는 거 아니야?"라며 걱정하는 아이, 장난스럽게 상대를 놀리거나 감성에 젖어 시를 쓰고 노래하는 아이들까지. 이 모든 천진함은 공연 말미 갑작스러운 사건들과 함께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어느새 극을 떠나 현실로 돌아온 배우들은 남녀 둘씩 짝지어 손잡고 객석을 향해 인사한다. 어쩌면 <그 해, 영흥도 11-13>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바로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포스터 (사진=극단 배우들)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실황 영상

작/연출: 박수아
출연배우: 박성원, 김희중, 전용범, 전성열, 박마리솔, 정새롬, 김다인, 김소윤
제작: 극단 배우들
공연 일시: 2020년 7월 30일
공연장소: 민송아트홀 2관


*연극 <그 해, 영흥도 11-13> 실황 영상은 '레드컬튼프리뷰X플앱'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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