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컬튼 개관작] 연극 '처음 만난 사이'
‘연애’에는 끝이 있어도 ‘사랑’은 영원하다. 우린 각자 누군가를 사귀고 헤어지길 반복하지만, 이 와중에도 마음 속의 사랑은 계속 간직된다. 이별의 상처를 준 ‘썅X’ 때문에 다신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한 ‘사랑’은 늘 우리 내면에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뿐.
연극 ‘처음 만난 사이’는 이런 연애관계와 사랑 사이 간극을 절묘하게 그린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20대 청춘들의 모습을 통해서다. 어떤 이는 잇따른 연애 실패로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고, 또 어떤 이는 거절당할까봐 오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한다.
제목대로 ‘처음 만난 사이’의 설렘을 여는 주인공은 직장 여성 다솜이다. 남동생 다솔과 단둘이 살고, 오랜 친구 정아와도 가족처럼 지낸다. 다솜은 우연히 회사에서 마주친 남자 직원에게 반한 에피소드를 두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다솔과 정아는 다솜의 카운셀러 역할을 맡게 되고, 드디어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시작된다.
극 중 다솜은 빈틈이 많아 사랑스럽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인데다 ‘자만추’(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는) 타입의 그는 사춘기 감성을 간직한 사랑의 화신(?)이다. 혼자 치킨 한 마리를 뚝딱 할 정도의 먹성을 가졌고 가끔은 머리도 못 감은 채 허둥지둥 출근한다. 뭔가 부탁할 때 나오는 엄청난 애교 필살기(?)는 워낙 천연덕스러워 결코 거절할 수 없다.
연극은 이런 다솜의 과거사를 들춰내면서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이어간다. 고등학생 시절 만난 첫 남자친구는 “이제 학업에 충실하고 싶다”며 돌연 이별을 고했고, 두 번째 남자친구는 군대 갔다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놓고는 정작 본인이 군화를 거꾸로 신었다. 마마보이였던 세 번째 남자친구는 “궁합이 안 좋다”는 무당의 말에 도망치듯 다솜을 떠났다. 실로 오랜만의 연애감정 앞에서도 다솜이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다솜의 불안은 ‘미신’으로 대변된다. 그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좋아하면 결국 차인다’라거나 ‘연인이 경복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 ‘첫눈을 같이 맞아야 결혼할 수 있다’는 등의 강박이 있다. 이별이란 결과는 우연이 맞물려 발생했을 뿐이지만, 지금의 다솜은 이런 미신에라도 의지하지 않고선 도저히 자신이 없다. 말하자면 연애 관계에 그가 느끼는 불안은 궁극적으로 ‘불확실성’에서 오고, 그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 미신인 셈이다.
‘처음 만난 사이’는 ‘로맨스 연극’을 표방하는 그저그런 작품들처럼 달달한 미소를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극 중반 이후 드러나는 반전은 두 남녀의 ‘썸’ 이면의 비밀들을 통해 다솜 주변 인물들의 감정을 아릿하게 끌어낸다. ‘썸남’을 향한 다솜의 화살표는 다솔과 정아, 그리고 ‘그 남자’ 사이에 얼기설킨 연결고리로 확산된다. 이런 감정의 화살표들이 맞닿는 지점에는 다름아닌 ‘용기’가 있다. 사랑을 고백할 용기이자,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 말이다.
연극 <처음 만난 사이>
출연배우: 서명훈, 신하은, 안은샘, 황병문
제작: 컴퍼니 눈
작/연출: 서명훈
스태프: 모고은
공연일시: 2020년 11월 4일
공연장소: R&J 씨어터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연극 '다시 만난 사이'는 레드컬튼 개관작입니다. 서비스 론칭 이후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