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이란 무엇일까요? 비거니즘은 주로 먹거리의 측면에서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먹는 거 빼고 비건을 얘기해보고 싶어요. 채식 말고도 비건을 실천할 수 있냐고요? 그럼요! 비건을 지향하는 많은 이들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비거니즘을 고민하고 있어요. 비인간동물과 식물을 비롯해 더 많은 존재들이 착취되지 않고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말이죠.
그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 중에는 채식 레시피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도 있어요. 텃밭을 가꾸고 토종 씨앗을 모으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에코페미니스트로서 돌봄을 외치는 사람도 있죠.
이엪지는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는 모든 비건지향인을 응원해요. 하지만 먹거리에서 나아가 삶의 전반에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것은 쉽지 않죠. 저는 이럴 때일수록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약하기에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마음이요. 그런 점에서 오늘은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4호 : <돌봄의 정의>와 함께, 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 해요.
올리브 : 예전에 독자님 중 한 분이 <바람과 물> 3호를 추천해주셔서 읽어봤는데, 너무 좋아서 브랜디한테 공유했었잖아. 그런데 최근에 4호가 나왔대서 헐레벌떡 산 거 있지. 4호의 주제는 <돌봄의 정의>인데, 읽으면서 어땠어?
브랜디 : <바람과 물>이라는 잡지를 이번에 처음 봤는데 이전에 발행된 것들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너무 좋았어. 특히 이번 4호는 요새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 ‘돌봄’을 주제로 한 글들이 많았잖아. 사실 돌봄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기후정의나 비거니즘과 엮어서 생각할 수 있게끔 한 점이 인상적이야.
올리브 : 맞지 맞지. 나는 너무 좋아서 읽다가 울기도 했고 기립박수 칠 뻔했어. 미소보다는 냉소 짓기 쉬운 세상이잖아. 무엇보다 나처럼 예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로 심신이 많이 지쳤을 거라 생각하거든. 그 어느 때보다 돌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치유받는다고 느꼈어.
그도 그런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돌봄을 실천하고 있거든. 노년층이 기후비상행동 단체를 만들어서 선언문을 낸 이야기도 있고,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녹색 가치를 알리기 위해 달려온 녹색당의 이야기도 있어. 안전과 연대, 신뢰를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니 가슴이 벅차더라고. 여기 담긴 이야기들 자체가 돌봄이었던 거지 나한테는.
올리브 : 나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연필로 밑줄을 쫙 긋는데, 이 책은 밑줄 투성이야. 브랜디는 인상 깊었던 글이 뭐였어?
브랜디 : 난 박승옥 님의 <사람과 세상 사이에 이웃이 있다>라는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 이 글을 통해 ‘60+ 기후행동’이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됐거든. ‘60+ 기후행동’은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60대 이상의 시민 700여 명이 함께하는 단체야.
“가장 강력한 체제전환의 행동은 세계관을 바꾼 이웃 공동체의 행동이다.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은 국가돌봄이 아니라 서로돌봄의 공동체 돌봄이다. 기후위기 시대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 p.44, 박승옥, ⟪돌봄의 정의⟫ 중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게 된 지 3년 정도 되었지만 아직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 내 주변에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후위기와 관련된 모임이나 세미나를 나가보면 내 또래인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커. 그런 점에서 ‘60+ 기후행동’과 같은 단체는 존재 자체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내가 하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구나.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싶기도 하고. 올리브의 밑줄은 뭐였어?
올리브 : 나는 김다은 님의 <다른 속도와 온도를 견디는 방법>이라는 글이 인상 깊었어. 사연자의 고민이 너무 공감 됐거든(위 사진 참조). 우리 모두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저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기 마련이잖아. 어떤 사람이 당장 내일 뭘 먹어야 할지를 고민한다면, 어떤 사람은 내일의 출근을 걱정할 수도 있지. 근데 그 다름을 인정하기가 마냥 쉽지는 않더라고.
나도 사연자 분처럼 모부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서로 우선순위가 충돌할 때가 많아. 그러다 보니 '왜 나만 심각하게 느끼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그런데 막상 그들의 일상을 관찰해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실천하시는 경우도 있더라고. 특히 분리배출은 모부님한테서 정말 많이 배웠어. 또 어느 날은 엄마 핸드폰을 보는데 검색 기록에 채수 레시피가 있더라고! 감동인 거 있지.
“비록 세대와 성별에 따라 혹은 학력, 소득수준, 거주 지역에 따라 저마다의 속도와 온도로 다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결국 비난과 분노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발걸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보다 실천을 덜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진전성을 의심하기 보단 그들에게 변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친밀한 이웃으로서 우리가 더 다정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 저는 이런 친절한 사람들의 ‘지면서 이기는 법'을 언제나 존경합니다.” - p.84, 김다은, ⟪돌봄의 정의⟫ 중
올리브 : 나는 비건 지향을 시작하고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어.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나 내가 쓰는 물건을 돌보기 시작했거든. 옷장이나 신발장, 책상과 침실.. 이곳저곳을 세세하게 관찰하면서 쓸모없는 물건과는 작별하고, 빈 공간을 늘려서 숨 쉴 틈새를 만들고 있어. 논비건이었을 때는 안 입는 옷들로 꽉 찬 옷장에 자꾸만 새로운 옷들을 채우려고 했었거든. 동물 해방을 위해 비건 지향을 시작해서 그런가? 나도 같이 해방되고 있는 거 같아. 브랜디는 비건 지향을 시작하고 나서 채식 말고 하게 된 게 있어?
브랜디 :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환경과 기후에 관심을 갖게 됐어. 처음에는 쓰레기에 고통받는 비인간동물들을 보고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러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게 들어온 ‘지구온난화’가 동물들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
비건 지향인들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채식뿐만 아니라 이타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 삶에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야. 내가 지금 관심 있는 의제가 많은 건 어쩌면 이 길의 시작이 비거니즘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지금 사회에서 가장 아래에 있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기에 더 빠르게 확장해나갈 수 있었던 거 같아.
왜 우리 이엪지도 처음에는 ‘에코티’라는 이름으로 환경과 동물권 정도만 다루다가 ‘이엪지’로 바꾸면서 주제의 범위를 좀 더 확장시켰잖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곳곳에 가득하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난 아직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문제를 알아가고 싶어.
올리브 : 완전 공감! 그런 점에서 나는 요새 인별그램에서 '소식줍기'를 하고 있어.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여성과 관련된 콘텐츠를 스토리에 공유했고,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소식을,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 소식을 공유했어. 지음과 이엪지는 작년에 인터뷰를 통해서 연을 맺기도 했지.
이렇게 적고 보니까 문득, 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이란 뭘까 이런 생각도 드네. 채식을 하거나 생활용품을 비건 제품으로 바꿔서 사용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나한테 비거니즘적 삶은 '원헬스'에 가까워서 삶의 방식이나 실천이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고 보거든. 162쪽 <씨앗과 흙, 순환과 돌봄>에서 말하는 것처럼, 흙을 가까이하고, 토종씨앗으로 작물을 기르는 할머니의 행동이야말로 우리가 저 멀리 서구에서 가져온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 문화일 수 있다는 거야. 브랜디는 어떻게 생각해?
브랜디 : 음 나는 나와 다른 존재와 연대하고 공감하려는 자세도 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에 속하는 것 같아. 위에서도 말했지만 비건지향인들은 비건 지향을 시작했던 그 마음을 다른 존재를 위해서도 기꺼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잖아. 하지만 그 마음이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는 못할 때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
올리브 : 맞아. 그래서 나는 비거니즘에 돌봄이 필요하다고 느껴. 나한테도, 사회 전체에도 말이야. 시사IN의 ⟪2022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해결에 관심이 있지만 그만큼 실천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질문에 20대 여성이 모든 그룹 중 가장 높게 ‘그렇다'(65.8%)고 답했대.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집단이 가장 큰 죄책감을 마음에 담고 있다는 거지.
비건지향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은 완전 비건을 실천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칠 때도 있을 거고. 대체육 제품을 만드는 생산자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비거니즘을 조롱하는 걸 볼 때는 충격이 클 거야.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누군가는 비건 지향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근데 나는 같은 방향을 바라봤던, 혹은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한테 ‘왜 더 하질 않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진 않더라고. 포기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도 전부 동료라고 생각하고, 그런 서로의 마음을 돌봐주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브랜디 : 공감해. 요즘 ‘비건 번아웃’이라는 말도 있더라고. 아직 논비건이 기본인 세상이다 보니 홀로 비건 생활을 하다가 지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말인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비건지향인들에게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상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채식인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최대한 많이 참석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
채식과 관련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최근 들어 너무 좋은 기회로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 그 일 자체가 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공격과 비난을 받는 일이 꽤 많더라고. 게다가 활동 조건도 열악한 곳이 많아. 최저 시급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일주일 내내 근무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사회 문제에 직접 당면한 당사자들을 위한 돌봄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활동가들을 위한 돌봄도 정말 필요한 것 같아.
올리브 : 내가 요새 친구랑 돌봄을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고 있거든. 그중에 이런 문장이 있어.
"이런 물음을 던지다 보면 글을 쓰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일이 참으로 막막하고 면목 없어지곤 합니다. 제 글은 누군가의 갑갑한 ‘상식’도, 박탈당한 권리도 바꿔내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이 편지를 쓰면서, 취약성에 관심이 있다는 올리브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저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이 차갑고 무능하고 서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고요. 그 연결에 글이 할 수 있는 일을 믿는다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놀랍게도 제가 스스로에게 느꼈던 부끄러움과 의심이 사그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난 이걸 읽고 내가 서로를 돌보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어. 뻔하게 들리겠지만 ‘이야기’하는 거야. 실패했던 이야기, 좌절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했던 이야기, 그러다 포기했던 이야기들 말이야. 뱉은 말을 지키고 때로 번복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실패를 자주 이야기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약한 존재라는 걸 서로 인정해주고, 여력이 된다면 알아차려주기도 해야겠지. 나는 요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거기서는 ‘추앙'이라는 단어를 쓰더라고. 그것도 일종의 돌봄 중 하나인 거 같아. 대화, 소통, 헌신, 이해, 지지, 희망, 사랑과 우정, 이런 것들처럼.
브랜디 : 올리브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난 그보다 좀 더 넓은 이야기를 해볼게. 코로나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금, 올여름은 ‘보복 여행’ 시즌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모 여행사의 600만 원대 패키지 상품은 방송 70분 만에 주문 1600건이 몰렸다고 하더라고.
‘거리두기로 인한 억압’이라는 문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을 선택하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고 씁쓸한 마음이 들어. 나에게 있어 코로나는 어떤 신호 같은 거였거든. 이렇게 많이 생산하고 많이 버리고 많이 죽이면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지구와 비인간동물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어. 팬데믹 이후 우리가 이 위기를 얼마나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지가 정말 중요할 것 같은데, 글쎄.. 사회가 문제의식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알아차리기’와 ‘듣기’를 좀 더 강조해보고 싶어. 물론 누군가의 취약함을 알아차리고 이를 기꺼이 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문제를 발견하고도 외면한다거나 애써 모른 척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비거니즘에 돌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직 이 관점이 ‘주류’가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아. 내가 과하게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로 주변에 비건 지향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많이 봤거든. 불편하고 어렵겠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주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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