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비건, 그 두 번째 이야기
<당당한 비건> : 시즌 1의 메인 키워드이자 주제는 ‘당당한 비건’입니다. 친구이자 소비자, 시민 등 다양한 주체로 살아가는 비건 지향인들이 삶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가져야 할 ‘당당함'을 고민합니다.
저는 대학생 때 비건지향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 휴학 중이어서 시작할 당시에는 고민이 없었는데, 복학을 하려니 문득 걱정이 들더라고요. ‘동기들은 채식주의자를 처음 볼 텐데.. 낯설어 하지 않을까? 내가 이상한 사상에 빠졌다고 생각하면서 멀리하면 어떡하지?’ 얼마 전에 본 ‘주변인에게 상처되는 말을 들었다’는 SNS의 글도 생각났죠. 제가 워낙 눈치를 많이 보고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성격이라 더 걱정이 됐던 것 같아요.
결국 저는 채식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불편하고 답답해서 친한 동기 몇 명에게만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머뭇거리며 오픈하긴 했지만요. “수업 끝나고 치맥하러 가자.” “오늘 고기 먹으러 갈 건데 너도 와라.”라는 말에 매번 거절하기도 애매해서, 일단은 같이 가서 갑자기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고, ‘다음부턴 그냥 한약 먹는다고 해야지.’하면서 머릿속으로 상황극을 해보기도 했죠.
이게 저만의 특별한 경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제 지인 중에는 동료들에게 채식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직장 생활을 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누군가는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실 거고, 또 누군가는 불편을 불편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이대로도 살만한 거 같은데.. 우리는 왜 당당해져야 할까요?
얼핏 보면 비건 제품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죠. 대표적으로 버거킹 플랜트 와퍼(달걀 함유), 투썸 비욘드미트더블머쉬룸파니니(논비건 마요네즈 함유), 서브웨이 머쉬룸썹(교차오염), 알티스트 식물성 핫도그(동물 유래 L-시스틴 함유) 등이 있는데요.
작년 출시됐던 풀무원의 두부텐더 역시 많이들 비건이라고 생각하며 소비하고 홍보했지만, 알고 보니 패각칼슘(조개 껍데기 등에서 얻은 칼슘)이 함유되어 있어 논비건 제품임이 밝혀졌어요. 이후 많은 비건들의 리뉴얼 요청이 있었고, 몇 달 전 비건 재고를 따로 선보였으나 정식 출시는 하지 않았었죠. 그랬던 두부텐더가 얼마 전 드디어 ‘식물성지구식단 LIKE 텐더’라는 이름의 비건 제품으로 재탄생되었다는 기쁜 소식!
사진 : ⓒ 채식한끼 인스타그램
채식한끼에서 운영하는 소모임 커뮤니티 '미어캐츠'에서는 다양한 채식 모임이 운영되고 있는데요, 그중 '비키소'(비건식당을 키우는 소모임)라는 모임에 대한 소개를 잠깐 해볼게요.
채식한끼 어플을 이용하면 채식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죠. 하지만 아직 어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곳도 꽤 많습니다. 비키소는 이렇게 어플에 등록되어 있지 않고, 많이들 채식 식당으로 분류하지 않는 가게들을 직접 방문해, 채식이 가능한 메뉴들을 찾아 어플에 등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5군데나 찾았다고 하더군요.
위 사례들은 모두 나의 권리를 ‘당당하게’ 표현한 비건들이 이뤄낸 결과예요. 눈치 보고 숨기만 했다면 과연 비건 제품인 척하는 제품이 논비건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게, 논비건 제품이 비건 제품으로 리뉴얼되는 게, 비건 식당 발굴이, 가능했을까요?
우리 모두가 이런 대단한 결과를 내야 하기에 당당해져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당당함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해요. 위에서 소개해 드린 사례들도 사실 '내가 편해지기 위해 낸 목소리'가 좋은 변화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죠.
나 자신을 위해 당당해져야 한다는 걸 알아도,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지금의 저는 대학생 때와 달리 어딜 가도 비건이라는 사실을 밝히곤 해요. 하지만 나의 권리를 친절하고 명확하게 표현한다면 생각보다 불편한 상황은 많지 않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제가 ‘저 사람은 비건에 대한 편견이 있을 거야.’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악의를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잘 몰라서,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고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도 찾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내가 운이 좋았던 건 아닐까? 사실 나도 아직 두려움을 다 극복한 건 아닌데…’ 그러다 비건 커뮤니티 ‘비건클럽’에서 제 고민을 명쾌 상쾌 통쾌하게 해결해주는 글을 발견했어요! (발췌를 허락해주신 원작자 ‘민지’님, 감사합니다!) 민지님의 팁에 제 생각을 얹어 당당한 비건 되는 귤팁 7가지 공유하면서 글 마쳐볼게요! 비건들아 기죽지 마라 당당하게 외쳐라~(흥얼)
1.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세요.
계속 비건으로 지내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페스코로 바뀌거나 채식을 포기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요. 민지님도 저도 사회생활을 이유로 비건 ‘지향’에 머물기보다는 비건임을 동네방네 소문내는 편이 사회생활을 수월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같이 먹을 게 많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사람들에게 ‘얘는 이 정도는 괜찮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거든요. ‘저 사람은 동물성 음식은 절대 안 먹으니 그렇게 준비해야겠다.’라고 인지하기 시작하면 김밥 안의 햄이나 비빔밥 위의 달걀, 빵에 든 우유 등을 마주할 일이 적어진답니다.
2. 다른 사람이 내 눈치 좀 봐도 괜찮습니다.
원래 남의 눈치 보고 사는 게 사회생활 아니겠어요? 비건들도 충분히 눈치 보며 살고 있으니 너무 크게 신경쓰지 말자구요.
3. 대신 표현과 수위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해요.
상대를 ‘잠재적 비건’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건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참고로 민지님이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는 “지금 제가 뭘 들은 거죠?”라고 합니다. 모든 차별 상황을 걸고 넘어질 순 없지만 심하다 싶을 때 사용하면 효과가 좋은 말이라고 해요.
4. 홍보에도 열을 올리세요.
어떤 비건 제품과 비건 식당이 있는지 논비건들은 잘 모릅니다. 민지님의 열띤 홍보 덕에 민지님이 일하시는 팀에서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라면은 정면, 아이스크림은 스크류바, 과자도 비건 과자로 준비해 주신다고 해요. 계속 알려주고 요구해야 합니다. 비건이 샐러드만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알리는 주체는 바로 우리라는 거!
5.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는 쿨하게 인정하세요.
민지님은 ‘비거니즘이 모든 개별적 경우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요. 나를 무는 모기를 잡았다고 해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고통 속에 살다 고통 속에 죽는 돼지의 존재까지 긍정해야 하는 건 아니죠. “그 문제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 우리가 맛있다는 이유로 삼겹살을 먹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주눅 들 필요 없어요.
6. 우리는 이런 존중을 마땅히 받아야 할 존재임을 기억해요.
스스로가 먼저 당연히 여기지 않으면 타인에게 존중을 바라기도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비거니즘으로 얼마나 많이 동물을 구하고 환경을 보호하는지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갖자구요!
7. 오늘의 나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바꿉니다. 스스로의 영향력을 믿어보세요. Wow!!
민지 : 이 글을 쓰는 저는 직장에서 막내라인입니다. 아버지뻘인 선배님들과 한 팀에서 일해요. 꼭 특정 위치가 되어야, 어느 때가 되어야만 관계 안에서의 비거니즘 실천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부서 특성상 팀원 변경도 잦은 편인데 저를 거쳐가는 이들에게 좋은 비건의 경험이 되려 노력합니다. 당당해질수록 사회생활은 수월해진다는 것, 꼭 공유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