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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ka Jan 12. 2024

올리브나무 사이로

[그리스 일상] 올리브나무 '멍'상 



 그리스를 떠올리면 바닥까지 보이는 맑고 투명한 푸른 바다와 함께 들판에 무성한 올리브 나무가 자동적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만 그런가?) 그리스에서 올리브 나무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하고 있으며 평화와 번영, 부활과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 거창하게 인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동부 지중해 연안에 처음 야생 올리브 나무가 생겨 났고 이를 최초로 경작하기 시작한 게 그리스인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에서는 선사 시대부터 올리브 나무가 체계적으로 경작되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그들의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왔다. 올리브 나무는 그리스 고대 문명에서도 신성시되어 왔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의 상징으로도 등장한다. 지금도 그리스 전역에 걸쳐 올리브 나무가 번성하고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야생 지대에는 어김없이 올리브 나무들이 정글을 이루며 풍성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고, 인간에 의해 경작되는 올리브 그로브도 즐비하다. 


 그리스에서 가장 널리 경작되는 올리브 종은  Κορωνέικη (Koroneiki ; 코로네이키 )로 그리스 전체 올리브 나무의 50~60%를 차지한다고 한다. 올리브 열매는 조그맣지만 폴리페놀과 항산화 성분의 함량이 높은 고퀄의 오일을 짜낼 수 있다. 열매가 크고 다크 브라운 색상의 Καλαμάτα (Kalamata; 칼라마타) 올리브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품종이 유래한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칼라마타 지역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올리브도 칼라마타라고 부르는데 PDO(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로 그 명칭 사용이 보호되어 있다. 고로, 칼라마타 지역에서 자란 칼라마타 올리브 품종만이 'Kalamata Olive'라는 상표를 달고 판매될 수 있다. ( 타 지역에서 경작된 칼라마타 품종의 올리브는 'Kalamon olive'라는 상표를 달게 된다). 


    



Lianolia 올리브나무

그 외에도 너무도 다양한 올리브 품종들이 번식하고 번창하고 있는데, 코르푸 섬에서는 지역 특산 품종으로 λιανολιά (Lianolia ; 랴놀랴)가 있다. '랴놀랴'는 코르푸 섬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코르푸 섬에만 서식하는 토착종으로 섬 이름을 따서 λιανολιά Κέρκυρας (Corfiot Lianolia; 코르푸 랴놀랴)라고도 부른다. 16세기 베네치아 공국 시기에 심어 400년 넘게 건재하는 랴놀랴 올리브 나무들도 아직까지 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올리브 나무는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지만 랴놀랴는 다른 그리스 섬보다 강수량이 많아 상대적으로 습한 코르푸의 기후에도 잘 적응하며 수많은 세월을 거쳐 뿌리를 내리며 번창하여 오고 있다.


랴놀랴 올리브 열매는 타원형 꼴로 아담하고 작지만 오일 함량이 높아서 올리브 절임보다는 주로 오일로 생산된다. 랴놀랴로 짜내는 올리브 오일은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 성분이 타 품종 대비 높기로 유명하며 알싸한 쓴 맛과 스파이시 함이 일품이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랴놀랴 EVOO(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직접 테이스팅을 해 본 결과, 입에 머금고 있으면 다양한 허브, 신선한 풀 맛이 느껴지다가 곧바로 혀와 목을 툭 차버리는 페퍼 맛의 킥이 강렬하다. 특유의 싱그럽고 쨍한 맛은 샐러드는 물론 육류, 수프, 파스타, 해산물 및 아이스크림에도 잘 어울린다. 


한 해동안 흡수한 뜨거운 여름 햇살과 겨울의 서늘한 대기 그리고 풍부한 빗물의 다채로운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천혜의 코르푸 섬 올리브 오일(왠지 광고 문구 같다). 올리브 오일은 특히나 마케팅 표현으로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실제로 어디서 광고하는 걸 봤다)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랴놀랴 올리브 오일은 특별히 신이 코르푸에 내린 선물이라고 하고 싶다.




마당에 오래된 올리브나무

시부모 댁 집 마당에는 150여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대손손 늘 함께 해온 존재들이다. 마당 어디서나 잠시 멈추면 올리브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고, 가끔씩은 엉덩이가 닿는 아무 곳에나 앉아 넋을 잃고 쳐다보며 '올리브나무멍'을 즐기곤 한다. 그럴 때면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올리브 나무 기둥과 그 사이사이에 깃든 오래된 나무의 정령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은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올리브 나뭇잎은 매끈한 녹색이 아니라 회색 빛이 감도는 듯한 매트한 회녹빛 색감으로 가지마다 빽빽하게 흔들리며 햇볕이 쨍한 날에도, 비가 촉촉이 내려앉은 날에도 싱그러움과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울퉁불퉁하거나 거친 질감에 꽈배기처럼 꼬여 요동치는 묵직한 나무 기둥과 사방으로 뻗은 가지에서 잘잘하게 흔들리는 올리브 나무 잎들은 무척이나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코르푸 시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섭취한 올리브 오일도 모두 이 나무들이 선사한 선물이다. 시부모댁은 겨울에 마당의 올리브 열매를 수확하여 짠 올리브유를 거대한 드럼통에 저장해 놓고 일 년 내내 밥상에 올린다. 우리나라 농가에서 깨 농사를 지으면 방앗간에 가서 들기름, 참기름을 짜서 먹듯이 여기서도 수확한 올리브를 동네 방앗간에 가져가 압착하여 짜온다. 올리브유는 어느 음식이든 맛있게 살려주는 마법의 오일 같다. 짝꿍이 자기는 어렸을 때 엄마가 늘 감자튀김을 올리브유에 튀겨줬다고 했는데 난 그 비싼 올리브유를 튀김에 부어 쓰다니 입맛을 쩝 다시며 부러워했었다. 실제로 그리스에 있어 보니 지천에 깔린 올리브 나무처럼 올리브유도 흔하디 흔했다. 샐러드, 볶음, 구이, 수프 등 거의 모든 요리에 올리브유가 들어간다. 덕분에 한국에서 처럼 아까워서 찔끔찔끔 쓰지 않고 어디든 넉넉하고 후하게 뿌려주는 사치를 누려본다.




오늘도 마당의 올리브 나무 사이를 서성인다. 저 나무 밑에는 집 고양이 '카이사르 (Caesar)'도 서성이고 있다. 다른 쪽 나무 그늘에는 늘어져 있는 그의 짓궂은 엄마 고양이 '클레오파트라(Cleopatra)'가 보인다. 전에는 다 똑같아 보이던 올리브 나무들을 이제는 랴놀랴 종과 코로네이키 종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Θιακή(Thiaki; 띠아키) 종도 있고, 중간중간 어디선가 씨가 날아들어 자리 잡은 야생 올리브 나무도 보인다. 시아버지가 랴놀랴 나무에 띠아키 가지를 접목시키거나 각 다른 품종을 접목시켜 탄생시킨 정체불명의 하이브리도 종들도 있다. 시부모 노부부 두 분이 감당하기엔 버거워 그렇다 할 만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무들은 늘 스스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으며 생명의 기운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노후를 함께 하고 다음 세대를 거쳐 우리의 후세들이 자라는 세상에도 같이 있어 줄 것이다.


마당의 올리브나무와 카이사르


2023.08 ,Cor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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