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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짓는 뚱여사 Oct 23. 2021

절임배추를 위한 전주곡

고객님들께 쓰는 농부 일기 2020.10.

태풍이 온다고 하니,

밖에서 하는 일은 못하겠다 싶어서 비닐하우스에서 배추 파종을 하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뒈~ 그 런 뒈~

찌는듯한 이 더위....

비닐하우스 안은 숨이 막히게 갑갑했고요.

농부들은 땀구멍에서 다시 장마가 시작되어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땀을 흘렸더랬어요.


비가 때려도 태풍이 불어도 더위가  몸을 녹이더라도

씨앗을 뿌려놓아야 하는 것이 농부의 숙명입니.

파종시기에 맞춰 파종을 해놓아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해마다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마음가짐과 결과물은 같지가 않은 것 또한 삶이 주는 긴장감인가 봅니다.

어떤 해에는 배추농사가 너무 잘되어서 드디어 우리에게도 희망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농사가 우리만 잘 되는 것이 아니니까 배추 가격이 폭락해서 폐기처분을 하게 되고, 날씨나 기후 때문에 배추농사를 파농 했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안 좋은 겉잎을 벗기고 알배기배추로 비싼 가격으로 배추를 팔기도 하는 일들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파종을 할 때의 기대감과 걱정은 마음속에서 계속 함께 하고 있습니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의 생각이 납니다.

배추 파종을 한다고 손가락으로 씨앗을 하나씩 잡고 포트 구멍 하나에 한 개의 씨앗만 떨어뜨리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면서 작업을 했었죠.

손에 쥐가 나고 밤새 손 저림에 시달리곤 했었는데,

파종기라는 걸 나중에서야 접하고 문화충격을 받았더랬어요.

씨앗파종기가 있는 줄도 모르고 부들부들 손가락에 힘주어 만개가 넘는 씨앗을 파종하느라고 애쓰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갑자기 억울하게 느껴 저서 분함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사람이란 동물이 참 간사한 것이,

 씨앗을 손으로 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는 이렇게 농부들이 모두 힘들여서 농사를 짓는구나!

그렇게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고객님들이 알아주셔야 할 텐데... 그런 마음이었다가 ,

다른 농부들은 파종기로 편하게 씨앗을 뿌린 것을 알고 나니, 갑자기 내가 세상 멍청한 농부가 된 것 같고 내 시간과 내 노동력을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억울함으로 이불 킥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제 한마디로 이 편한 세상을 맞이하고 난 뒤,

이틀 만에 4만 포기가 넘는 배추를 모두 파종했습니다.

뭐... 좀 서둘러서 작업을 했다면 하루 만에도 뚝딱 해치웠을 거예요.

배추는 파종 후 이틀에서 삼일이면 새싹이 방긋방긋

올라옵니다.

새싹은 너무 여리고 약해서 날씨에 따라 너무 더우면 쉽게 시들 어죽 거나 고온다습하면 잎이 녹아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종을 키울 때 농부는  신경을 날씨와 모종에게 심어 놓아야 합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웃자라서 연약한 모종이 되고,

꼼꼼히 주지 않으면 물을 먹지 못해서 시드는 아이들도 생기고.... 하루에 몇 번씩 모종에게 문안인사를 드려하 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모종은 커가고,

밭으로 옮겨 심어야 할 때가 되어가는데.....

올해처럼 날씨가 지랄 맞을까요?

도대체 농사를 지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자연에 기대어 사는 농부라는 직업이 억울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비는 비대로 쏟아지더니,

이제는 태풍까지 연속 출연하시네요....

땅이 말라야 퇴비와 비료도 하고 흙을 갈아엎어서

고슬고슬한 밭에 모종을 심을 수가 있는데,

날씨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고슬고슬한 걸 기다리다가는

배추 심는 시기도 놓쳐버리고 모종은 늙어서 죽어버릴 것 같아서 참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열 곳이  넘는 밭 중에 그래도 이 좀 말랐다 싶은 밭 두 곳에 배추를 심어보기로 했습니다.

트랙터로 뿌리면 금세 뿌릴 거름과 퇴비일 테지만,

무거운 트랙터가 돌아다니면

땅이 더 단단해지고 힘이 들까 봐 농부가 등에 지고 그 많은 거름들을 뿌려주었습니다.

트랙터 없이 예전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었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힘든 작업이습니다. 

마른듯한 겉흙만 트랙터로 살살 흙을 곱게 쳐주고

바로 비닐피복에 들어갔습니다.

고운 흙처럼 보이지만,

비닐을 덮는 농부들의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오는 그런 질퍽한 흙입니다.


아이고 ~ 곡소리 내며 일하다 보니 두 곳만 비닐을 씌우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란, 참 신비한 동물입니다~ㅎㅎㅎ



두 번째 태풍이 오기 전날!

대망의 배추심기를 시작했습니다.

밭이 좀 질퍽하면 어떻습니까?

심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작은 밭 두 곳에 배추를 심고 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아....

다음 배추들은 언제쯤 심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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