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한 절임배추를 만들 수 있을까?

19년 차 절임배추를 하는 농부의 고민

by 농사짓는 뚱여사

올해도 절임배추를 만드는 계절이 찾아왔다.

주문을 정리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9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절임배추를 만들던 그해,

나는 이제 막 농부가 된 초보였다.


언제 거름을 줘야 하는지,

벌레는 어느 시기에 약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 해의 배추는 작고 연약했고,

잎사귀엔 벌레가 먹은 구멍들이 배춧잎이 커지면서 구멍크기도 함께 커지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때의 나는 속상함과 걱정으로 가득했고

그 마음을 싸이월드라는 작은 인터넷 공간에 적어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일기를 본 사람들이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 배추, 제가 살게요. 택배로 보내주세요.”




문제는… 배추가 너무 커서

배추값보다 택배비가 비쌌다는 것.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는 배추를 절이기로 했다.

부피도 줄고, 김장을 하는 사람들도 더 편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결정이,

19년의 시간을 열었다.


해마다 우리는 조금씩 달라졌다.

동네에서 빌려온 붉은 고무 대야들과 할머니들의 손을 모두 모은 투박하고 부족한 시작이었지만,

작업대가 생기고, 절임통이 늘고, 설비가 갖춰지고,

절임을 위한 환경도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늘 있었다.


택배 사고가 나는 해도 있었고,

배추가 병에 걸려 택배는 멀쩡히 도착했는데

김장하려고 꺼내면 붉게 변해 물러지던 해도 있었다.


그때마다 잠을 설치며

원인과 해답을 찾아 헤맸던 시간들이 쌓였다.


그래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매년 우리 절임배추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번엔 더 잘해보고 싶다”는 완벽한 절임배추의 대한 열망의 마음이 컸다.


올해는 유난히 힘든 해였다.

폭염이 계속되는 가을, 갑작스러운 폭우, 생리장애, 잘 안 여무는 배추.

절임배추 주문은 이미 받아놓았으니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작업 첫날,

나는 속상함을 숨기지 못했다.

작고, 모양도 들쭉날쭉하고, 속도 제대로 차지 않은 배추들...

마음속으로 추구하던 완벽한 절임배추는 물 건너 간 상황에 실망과 허탈함이 내 속에 가득 차 버렸다.


내 표정은 굳어 있었고,

작업장은 조용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말하지 못한 긴장과 눈치가 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고객들의 후기 메시지가 도착했다.


“배추가 고소해요.”

“절임이 적당해서 김치 담그기 좋네요.”

“올해도 수고하셨어요. 고맙습니다.”


그 짧은 문장들이

얼음처럼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은 녹여 주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남편과 아들이 작업해 온 배추는

어제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더 예뻐 보였다.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배추는 왜 이렇게 예쁘게 왔대? 고생했네.”


남편이 웃었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작업장에는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싸이의 예술이야로 시작해서

빅뱅의 뱅뱅뱅까지 이어지던 노동요 속에서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다시 웃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웃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 문득 나에게 물었다.


‘완벽한 절임배추란 무엇일까?’


모양이 예쁜 배추?

속이 꽉 찬 배추?

좋은 소금을 써서 절임이 알맞고 사고 없이 도착하는 배추?


그게 전부일까?


배추 씨앗을 파종하면서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던 우리 가족들의 두근거리던 심장소리,

남편이 물을 주며 꽃처럼 피어오르던 배추를 보며 짓던 행복한 웃음,

절임작업을 하며 뻐근해진 어깨를 들썩거리며 골고루 절여질 배추를 향한 기대,

작업장에 울려 퍼지던 음악에 맞춰 깨끗하게 씻는 흥겨운 손짓,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미소까지.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어야

비로소 완벽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올해 보내는 절임배추에는

조금의 불완전함과

아주 많은 마음을 함께 담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되는 것 같다.


완벽한 절임배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까지 함께 완성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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