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살롱: 창고사롱xpopopo] 이방인의 시선으로 프로듀싱하다
창고살롱 시즌 4 <스페셜살롱>에서는 이번 시즌 주제인 '낯섦, 내가 확장되는 시간'과 잘 어울리는 외부 인사를 의미있는 레퍼런서로 초대했어요. 그 두번째 스피커는 살롱지기 혜영과 10여년 만에 '여성과 일' 주제로 다시 만난 20년차 SBS 예능 PD 조문주 님이에요.
시즌 4 스페셜살롱은 여러 시즌 레퍼런서 멤버로 참여 중인 정유미 편집장이 만든 포포포 매거진과 함께 준비했어요. 시즌 4가 시작된 9월에 발행된 포포포 매거진 7호에서 조문주 PD님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먼저 소개했고요. 창고살롱 시즌 4 스페셜살롱 2에서 더 자세하고 생생한 문주님의 일과 삶의 특별한 이야기를 온라인 줌 미팅에서 직접 들어보고 이야기 나누며 시간가는줄 몰랐어요.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2003년 여름. 나는 세상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나는 정말 그 해 여름의 주인공이 었다. 그토록 원하던 예능 피디가 되었다. 빛나는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 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벅차게 즐거웠고 신나는 하루하루였다. 자신만만한 그 마음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내 아이가 주인공인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더 주목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교만하고 가난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느리구나...' 생각했다. 나는 모든 현실을 부정 했고 회피했다. 그것만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모든 경험에는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결혼 전 20대 후반에 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의 피디였다. 그 당시 전문가로 만난 오은영 선생님을 30대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철없고 자신만만하던 20대 피디의 모습은 사라지고 느린 아이 앞에 한없이 불안에 떠는 엄마로서 말이다.
처음에는 발달지연이라고 했고 다음엔 자폐 스펙트럼을 판정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내 얼굴 위에 ‘대충격’이라는 고딕 자막이 박히는 순간이었다. 예능 피디로 즐겁게 그저 웃기게 살고 싶었던 내 인생이 갑자기 진지한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몹시 분노했고 그다음에는 정확히 현실을 부정했다. 타협과 수용 단계까지 많은 눈물의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이 심리상태가 끝나지 않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돌고 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 확실히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장애를 대하는 태도이다. 예전에는 ‘장애’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 만으로는 쉽게 알아채기가 힘들다. 우리 아이는 지하철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지하철 노선도 보기를사랑하고 늘 가고싶어하는 특정 역 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탄다. 자폐스펙트럼 특성 중 하나인 동어반복(지하철 방송을 따라 할 때가 많다)이나 상동 행동(무언가를 반복하는 행동)을 할때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아이에게 쏠렸다. 한번은 오지랖이 태평양 같은 어르신들이 노골적으로 “애가 이상하네”라고 할때는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 역에서나 내려 버렸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거듭될수록 이렇게 피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바라던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신촌역 1번 출구로 나가기로 한 날 또 다른 오지랖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노골적으로 아이를 쳐다보며 마음 상한 말을 건네는 순간 “아이에게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어요”라고 처음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처음이라 목소리는 좀 기어들어갔다. 그 이후 두 번 세 번, 경험이 쌓일수록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용기'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만큼 “우리아이는 자폐스펙트럼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입에서만 맴돌고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순간에 ‘장애를 말할 용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 무렵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연수를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야겠노라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장애는 너무도 달랐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노골적으로 보거나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누구도 아이의 다름 앞에서 무례하지 않았다.
아이는 반짝거리는 물건을 좋아한다. 하루는 엄청 반짝이는 목걸이를 한 백인 할머니에게 돌진해 그 목걸이를마구 만졌다. 나는 너무 놀라 “제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 있어요”라며 거듭 사과를 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그러니? 내 조카도 자폐가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스몰 토크를 이어갔다. 심지어 아이가 자기 목걸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고 있다며 칭찬하는 여유까지. '아.... 미국과 한국의 장애 인식 수준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구나! 괜히 선진국 선진국 하는 게 아니구나'를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꿈꾸는 아이의 미래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장애인식이 계속 형편없다면 아무리 사회의 일원이 된들 무의미한 게 아닌가.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을 높이려면 그건 장애아를 둔 부모의 몫이구나. 장애가 어떤 것이고 얼마나 불편한지를 공유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가장 먼저 실천한 방법은 내 아이의 장애를 누구에게나 알리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 학기 아이에대한 보고서 ‘서포트북’을 작성해 학교와 센터에 모두 공유한다. 여기에는 아이의 자폐스펙트럼 진단에서부터 지금 현재 좋아하고 싫어하는 소소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문제행동이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 지금의 내 고민까지 같이 써놓는다. 상황을 미화하지 않고 정신승리하지 않고 아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솔직하게 쓴다. 소위 팩트 폭행을 서포트북에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장애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 불편함을 이야기할 용기 등 작고 수많은 용기들이 A4 용지처럼 차곡차곡 쌓여 두껍고 튼튼한 한 묶음의 묵직한 용기가 된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얼마 전 아이와같이 지하철을 탔는데 또 상동행동이 나오길래 “아이에게 자폐스펙트럼이 있어요” 하니, 오히려 귀엽게 봐주시는 모습들에 놀랐다. 20년 동안 피디로 일하며 수많은 스타를 프로듀스했다. 아이의 장애를 마주하면서 부터는 내 아이를 프로듀스 하기로 했다. 또래 친구들이 자폐스펙트럼을 잘 이해하도록 아이 소개 영상을 만들고 자격증을따서 직접 장애인식 교육을 지도한다. 매일아침 막막한 마음에 괴롭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편집하고 사랑과 응원을 가득 채워 프로듀스한다.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며 “나는 용기 있는 엄마 피디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위 글은 POPOPO 매거진 7호 104페이지에 실린 <내 아이를 프로듀스(Being a Producer for My child)> 조문주 PD 님의 글과 창고살롱에서 진행한 스페셜살롱 후기 이미지가 함께 편집되었습니다.
창고살롱 스페셜살롱은 보통 발표자의 이야기 45분, 참여한 레퍼런서 멤버분들과의 대화가 45분 정도로 90분간 진행 되어요. 그런데 이번 조문주 PD님의 세션은 역대급이었어요. 발표시간 90분, 대화 시간 90분으로 자정을 훌쩍 넘겨서까지 줌 화면을 떠나지 않고 모두 대화를 이어갔어요. 각자의 솔직한 경험담과 문주님 이야기가 울림이 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전하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고 감사했답니다.
힐링캠프 PD로 우수 프로그램 수상 경험도 있는 문주님은 스페셜살롱을 마치고 이렇게 소감을 전했어요.
"힐링캠프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왜 프로그램 녹화 후 한 명도 그냥 집에가지 않고 맥주 한 잔을 권했는지. 왜 이야기하지 않을거라고 마음먹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녹화 때 꺼내놓고 후련해 했는지! 힐링캠프 연출자때는 몰랐던 그 마음들을 오늘 스페셜살롱에서 제대로 공감한 것 같습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페셜 살롱 더 자세한 후기는 창고살롱 인스타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글/편집 정리 : 창고살롱지기 혜영
포포포 매거진 인스타그램 : @popopo_magazine
조문주 PD 인스타 그램 : @moonjoo.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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