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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버드 Nov 10. 2023

뚜렷하지 않은 선일지라도

빈센트를 생각하는 밤

그의 작품은 선을 좇지 않는다. 뚜렷한 형태선이 없는데 더욱 생생하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별빛은 밤하늘을 유영하는 듯하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물론 텅 빈 방에도 화가의 시선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그의 형체 불분명한 그림엔 감정과 생동감이 뚝뚝 묻어난다.


선을 잊은 화가, 평생 작품을 단 하나밖에 팔지 못한 '거장'. 살아생전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에 버림받았지만, 사후인 현대에 고흐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다. 그의 대체 불가한 화풍은 세상 문법과는 동떨어져 있었으나 누구나의 심금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 했던가.


그의 창의는 고통에서 나왔다. 빈센트는 평생을 조롱과 멸시 속에 살았다. 그의 비사교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은 사회적 고립의 빌미가 됐다. 이웃들과 부모님, 형제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불렀고 미술계는 그를 이단아 취급했다. 이런 사회적인, 그리고 그림을 팔지 못해 오는 경제적인 고통은 그의 정신을 더욱 갉아먹었다. 현대까지 문제 되는 고립 유형과도 비슷하다. 예측 가능한 악순환이었다.


다만 그는 굵은 심지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그와의 연결선을 끊으려 했지만, 그는 자신을 버린 세상과 사람과 사랑을 결코 놓지 않았다. 실한 노동자와 농부의 삶을 신성하게 여겼으며, 에밀 졸라나 셰익스피어 등의 고전문학을 탐독해 인간을 깊이 알고자 노력했다. 세상에 대한 여전한 애정은 생전에 쓴 편지들에서도 드러났다.


빈센트 발 편지의 수신자, 유일한 지지자였던 네 살 터울 동생 테오. 이 단 하나의 연결선이 그의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빈센트는,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꿈꾸는 그림을 보고 위로받는다면 자신의 영혼까지 줄 수 있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그림 재료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고 빈센트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준 테오가 없었다면 빈센트가 선사하는 감동은 세상에 없었을 수 있다. 단 하나의 연결선이 영혼의 심지를 굵게 지탱했다.


빈센트는 그림 속의 붓질 하나하나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에 디디는 발걸음 하나하나는 붓 자국처럼 분명 흔적을 남기게 된다고. 불분명해도 괜찮다며, 그 유화 물감의 흔적들은 자유롭고 두꺼운 임파스토 기법으로 삶이란 캔버스를 채워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겐 단 한 명의 테오라도 필요함을 일깨운다. 그것이 분절된 선을 작품으로 완성해 내는 핵심이다. 선이 뚜렷하지 않아도 그림, 삶이다. 이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연결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세상을 등진 빈센트가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영감은 사랑이고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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