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에서 처음으로 예술작품을 구매하다
남편이 다른 주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1박으로 여행을 갔다. 자유부인이 된 날,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오전에 일을 좀 하고 나니 진짜 찐 아메리카노가 너무 마시고 싶은 거다. 그래서 내가 애정하는 타코피자 모양이 그려진 에코백에 내 태블릿이랑 책을 넣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한 5분만 걸어가면 굉장히 조용하면서 작은 상점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있는데,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그 거리에는 골동품 상점도 있고 카펫 상점도 있고, 갤러리들도 모여있다. 한 갤러리가 간판이 반짝반짝 빛나는 돌멩이(미네랄?)들로 다닥다닥 장식되어 있는데, 어제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유난히 시선이 갔다. 그런데 큰 창 아래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 예전과는 좀 달랐다. 되게 컬러풀한 추상적인 형체들이 어우러져있는 그런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그 아래에는 크게 ‘for sale’이라고 적혀있었다. 갤러리 문은 활짝 열려있었는데, 그 문 앞에 글씨가 쓰인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Everything must go. I’m giving an incredible discount for all my artwork.’ (제 미술작품들을 큰 할인으로 판매합니다)
오늘 미술작품을 살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도대체 무슨 미술작품을 파는 건지 너무 궁금해서 그냥 이끌려 들어갔다. 진짜 무슨 주술처럼. ㅋㅋ
들어갔더니 어떤 조그마한 할머니가 자기 몸집만 한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거를 보고 다가오시더니, 원래 여기가 자기가 운영하던 갤러리였고, 원래 다른 사람들 작품들을 쇼케이스하는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자기 그림만 전시하고 모든 걸 다 팔고 있다. 이 그림들은 피츠버그 시청 갤러리나 뉴욕에 있는 박물관에도 소개된 적이 있고, 저 그림은 왕과 나 뮤지컬에서도 소개되었었다 하시면서 자기 그림 이야기를 하셨다. 피츠버그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지역예술인인 듯했는데, 나는 예술에 대해서는 1도 모르니까 그냥 끄덕거리면서 들었다. 한번 잘 둘러보고 질문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둘러보고 있는데 좀 작은 사이즈의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들이 다 비슷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End of Day 10’ ‘End of Day 24’ 이런 식으로 숫자만 다르고 다 ‘나날의 마지막’이라는 공통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거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물어봤다. 이 그림들 제목이 다 비슷한데, 이 제목 뒤에 영감 같은 게 있냐고.
할머니는 ‘오홍' 좀 놀라시면서 나한테 조곤조곤 말씀해 주셨다. 자기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끝내고 나면 물감이 많이 남는단다. 이 남는 물감들의 색깔을 보면서 뭔가 그림이 나올 것 같으면 일단 시도를 해보고, 나오는 모습이 괜찮으면 이렇게 작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정말 아주 다양한 색깔도 나오고, 형체도 나오고, 이런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면 어쩔 때는 자기도 놀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End of Day, ‘나날의 마지막’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셨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눈물이 날 뻔했다. 쓰다 만 물감들도 소중할 수 있구나. 학생생활이 조금 오래가면서 돈도 잘 못 버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은 요즘, 이런 남은 물감도 그렇게 예술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보니까 조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이 우리 집에 걸려있다면, 아무리 하찮은 하루였더라도 그 하루를 겪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질문을 한 동양인 여자애가 도대체 무슨 사람인지 궁금했던 할머니는 나한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학생이라고 하면서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지 얘기했다.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배경, 문맥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너~무 신기해하셨다. 자기는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처음 봤다 그랬다. 요즘엔 공학도만 많고 인문학도는 찾기 힘들죠 농담하면서 대화를 했다.
아무튼, 이 작품을 소유하고 싶었다. 아니, 이 작품의 이야기를 소유하고 싶었다. 여태껏 나의 소비는 정말 철저한 실용성을 기반으로 행해지는 행동이였다.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가장 큰 이유) 아니면 책상이나 속옷처럼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그게 나의 소비활동의 끝이었는데, 처음으로 이야기를 소장하기 위해 하고 싶은 소비는 처음이었다. 미술작품에 돈을 쓰는 아빠를 이해 못 하는 엄마처럼, 내가 쓸 수 없는 실용성이 없는 물건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미 읽은 소설책을 사는 것과 좀 비슷한 느낌인 걸까? 그 소설책이 너무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어서 그 이야기를 소장하고 싶어서 사는 것처럼. ㅋㅋ
그래서 가격을 물어보니, 원래는 350달러였는데 200달러에 판매한다고 했다. ‘힝, 큰 할인 한다면서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주변 그림들을 보니 다 4000달러, 5000달러 가격에 상당했다. 이러니까 예술은 부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나 보다. 그런데 쉽게 포기하기 힘들었다. 사실 피츠버그에서 3개월 동안 살고 이제 다시 오하이오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의미 있는 기념품을 구매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었다. 하지만 쉽게 산 것들은 쉽게 잊힐 것 같았다. 5년, 10년이 지나도 나의 인생에서 이렇게 피츠버그에서 사는 기간이 있었다는 걸 항상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에, 내 이야기가 담긴 의미 있는 물건이 있었으면 했다. 피츠버그 야구팀의 모자나 풋볼팀의 저지를 사볼까 고민을 했지만 사실 그건 피츠버그 도시 자체에 대한 거지, 피츠버그에 있는 나의 경험을 담아내고 있진 않아 좀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그림이야말로 내가 피츠버그에서 겪었던 존재위기, 현재와 미래에 대한 사색,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 등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희한하게도 200달러가 그렇게 아깝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할머니가 여기는 카드기가 없어서 신용카드는 안되고 현금밖에 안 될 듯하다고 미안하게 말씀하셨고, 나는 그럼 주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꺼내오겠다고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현금 인출기까지 한 8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그 걷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니 학생 주제에 200달러 그림을 사는 게 말이 되나. 그 돈이면 애플펜슬 2.5개를 살 수 있는데!!! 그 돈이면 치킨 10번을 먹을 수 있는데!! 이런 고민이 들면서도, 내가 고작 생각했던 물건이 애플펜슬이랑 치킨이라는 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물론 애플펜슬은 굉장히 실용적이고 다양한 일을 할 때 도움을 주고, 치킨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음식이지만,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면 논문에 밑줄 칠 수 있는 애플펜슬을 가지지 못해서, 이미 몇백 번은 먹은 치킨을 한번 더 못 먹어서, 슬플까? 그런데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노동으로 번 돈으로 이 예술작품의 이야기의 가치를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그냥 이 이야기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것처럼 무시해 버린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200달러를 인출해서 당당하게 걸어갔다.
할머니는 내가 갤러리에 들어오니 좀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다면서 그림을 갈색 종이로 포장하기 시작하셨다. 돈을 드리면서 여쭤봤다.
“혹시 왜 이 많은 작품을 갑자기 다 판매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때 할머니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내가 사실 암 환자예요. 얼마 전까지 항암치료를 했는데, 도저히 그 뒤에 이어지는 9시간의 수술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치료를 그만뒀어요.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내가 84살인데,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남은 시간 동안 그림 그리면서 남편하고 시간 보내는 게 더 소중한데, 내가 갔을 때 내 남편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지금 작품들 크게 할인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우리 할머니도 아닌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오늘 처음 만난 동네 할머니인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었다. 할머니가 포장하시면서 놀라셔서 나한테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어제는 친구들과 와인 한잔 하면서 저녁밥도 같이 먹었다며 자기는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고 했다. 인생 살면서 많이 바쁘기도 했지만 창의성이 넘쳐나는 예술인들과 지내면서 삶이 되게 알찼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여생에 대해 굳이 부여잡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냥 지금 여유롭게 그림 그리고 남편과 지내면서 마무리하는 게 참 좋다고 했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태도가 참 부러웠다. 이 할머니는 정말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 하루를 정말 뿌듯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다음 주에 있는 이사, 그다음 달에 시작하는 가을학기, 이런 것들을 걱정하면서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꼬수운 호야 발냄새, 저기 팬티바람으로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 2명, 내가 오늘 만든 겁나 맛있는 김치가락국수, 버스정류장에서 헤드폰을 끼고 혼자 제이지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르는 사람. 결국 하루의 마지막에 남는 건 그 하루에 일어난 모든 생각, 모든 느낌, 모든 사물,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감히 좋고 나쁨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로 나뉠 수 없는, ‘그러하였던 하루'로 남는 것. 쓰다 만 물감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하나의 그림.
할머니는 자신의 그림이 자기 자식 같은 존재고, 이 자식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껴줄 수 있는 주인에게 가는 것 같아 참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자식을 200달러에 파시는 데 나는 그 200달러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게 조금 죄송스러웠다. 할머니는 이미 잘 알고 계실 테지만, 난 할머니에게 할머니의 모든 순간이 즐길 수 있는 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이 참 즐거웠어요. 그것만큼은 확실해요.”
그 어떤 때보다도 벅차오르는 기분으로 갈색 종이로 포장된 그림을 안고 집에 걸어갔다. 그러하였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