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ul 24. 2023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 아메리칸들

아메리카노 애착자로서 후 적응안됨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해서 시댁으로 차를 몰고가는 도중 들른 곳은 맥도날드였다. 시차가 달라 너무 피곤했기에 커피가 아주 시급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8월 더운 날 차 안에 강아지가 있다보니,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차 안에 있어야 했다. 나는 나름 한국에서 영어도 가르쳤고, 미국인 남편에게 청소하라고 잔소리도 영어로 할 수 있는 영어능력자다. 훗. 그래서 미국에 처음 왔으니 주문하는 건 쉽지. 나의 영어독립성의 날개를 펼쳐보자. 라는 내적 모노로그를 내뱉으며 남편에게 내가 맥도날드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와 햄버거를 사오겠다고 했다. 

미국의 편의점=맥도날드

맥도날드에 들어갔을 때 키오스크가 있었지만 영어능력자인 나는 키오스크 따위 필요없지. 이미 주문할 것들을 알고 있던 나는 당당하게 점원 앞으로 나아갔다. 


"헬로. 치킨버거 세트 위드 아이스 아메리카노 플리즈."


점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걸 보고 점원 위에 메뉴를 쳐다봤더니 미국은 세트라고 안하고 밀 (meal)이라고 한다. 치킨버거라고 안하고 치킨 샌드위치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내 치킨샌드위치 밀에 콜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 때 점원은 아주 크으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uhm, uh가 많이 들렸다. 커피라면 어떤 커피를 말하는 건지. 얼음 들어간 커피를 말하는 건지. 아메리카노라면 어떤 크림이나 슈거를 원하는 건지. 분명 한국 맥도날드에서는 아메리카노와 드립커피가 메뉴에 있고 자주 시켜먹었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점원에게 영어로 아메리카노의 정의를 설명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 그냥 블랙 커피에 물 타고 얼음 넣은거라고 얘기해줬다. 그제서야 끄덕이며 포스기를 두들기는 점원. 근데 여기 맥도날드에서는 단 한명도 탄산음료를 커피로 대체한 사람이 없나본지, 띠띠띠띠 기계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매니저까지 찾아와서 나의 진상같은 주문을 처리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미국에서의 첫 영어독립성의 날개는 피지도 못한채 꺾여져버렸다. 그리고 이건 나의 커피 주문 고난기의 시작일 뿐이였다.


그 다음날 우리 시어머니가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좀 사오겠다고 하시길래,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가져오신건 내 팔뚝만한 아이스 컵에 담긴 연갈색 라떼였다. 그것도 엄청 달달한...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짜 아메리칸이 먹는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란 걸. 그들의 디폴트 커피는 커피+우유+크리머 다. 

맥도날드 메뉴에 있는 커피종류

대학교 근처에는 유명한 커피집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스타벅스, 하나는 동키스 커피. 동키스 커피는 대학가 독립 커피숍답게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커피콩만 파는 곳이였고, 들어갈 때면 커피콩 볶는 냄새가 너무나도 향기로워 기분이 너무 좋았던, 그런 곳이였다. 역시 커피전문점답게 메뉴에 아메리카노가 있었고, 나는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이, 바리스타가 주문받을 때마다 항상 체크했다. 크림 올 슈가? 저스트 블랙? 항상 물어봤다. 저스트 블랙? 아니 아메리카노가 그럼 검은색이지 하얀색이겠나? 한 5번 질문 받고 나서 바리스타랑 조금 안면이 트였나본지, 내가 질문을 했다. 


"여기 사람들은 아메리카노 잘 안마셔?"

"응. 거의 대부분 소이밀크나 아몬드 밀크, 홀 밀크 같은 우유를 넣은 커피가 제일 잘 나가지. 미국인들은 커피=라떼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차이티라떼나 녹차라떼도 잘 나가. 아메리카노는 거의 안나가는데, 거의 아시안계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는 것 같아."

동키스커피에서의 아메리카노. 짱맛존맛.

진짜 개충격. 아니, 아메리카노 이름 자체에 미국이 들어가있는데 미국인들은 아메리카노를 안마신다니. 


그리고 미국 모든 스타벅스가 그런건 절대 아닌데, 백인이 많은 여기 스타벅스는 커피 냄새도 안난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나는 증기는 찾아볼 수 도 없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여기는 드립으로 아침에 내린 커피에 다양한 우유와 크림을 타서 손님들에게 주고 있었다. 


나는 영어는 미국인보다 못해도, 커피는 미국인보다는 잘 마시네. 요상한 우월감으로 아메리카노를 1년 여 시간동안 주문하고, 마셨다. 아니 도대체 커피에 왜 우유를 타야하지? 너무 배부르지 않나? 아메리카노는 칼로리가 10 밖에 안되는게 매력인데. 그리고 왜 커피가 달아야하지? 아메리카노의 쓴 맛이 진정한 커피의 맛이 아닌가? 훗, 미국인들 참 커피 맛 모르네. 


그리고 이번 여름동안 남편 일 때문에 잠깐 피츠버그에서 살게 되었다. 피츠버그에는 이탈리안계 미국인들이 많이 살아서 authenticity (고유성)을 잘 살리는 이탈리안 식당이 되게 많다. 시칠리아 음식 전문 식당, 나폴리 음식 전문 식당, 등등. 그런데 얼마 전에 동네 커피숍을 갔는데, 내 앞에 있는 남자 3명이 에스프레소만을 주문하는 걸 목격했다. 오마갓. 어떻게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너무 쓰지 않나? 어우, 물을 좀 타야 마실만 하지. 그리고 이렇게 더운 날에 저 뜨거운 걸 어떻게 마셔, 물도 좀 타야지.


그 때 깨달았다. 나의 편협성. 나란 사람은 내가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다른 형태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커피에 우유타는 미국인들을 고유성으로 부정하면서 커피에 물타는 한국인은 괜찮은 이런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미국인들을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에 우유를 타던, 물을 타던, 무슨 상관인가. 그냥 사람 잠만 깨우면 되는거지. 

피츠버그에서도 계속되는 나의 아메리카노 사랑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서 어떤 영상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인을 못참아한다는 이야기를 봤다. 한국인들이 이탈리아 여행가서 자꾸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니 에스프레소의 고유한 커피맛을 일부러 망치는 게 너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라는 거다. ㅋㅋ. 그놈의 고유성이 뭔데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지. 김밥에 참기름 대신 시럽 바르는 거랑 비슷한건가? ㅋㅋ 


내가 아는 것을 '맞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내가 모르는 것들을 다 차단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도 이런 류의 생각회로를 거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나라, 다른 지방, 다른 동네, 다른 아파트, 다른 동, 다른 호 등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내가 살았던 삶과는 정말 다를텐데, 내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옳다'고 단정짓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른 삶은 '그름'이 된다. 


김밥에 핫소스 발라먹는 나의 미국인 친구 Sam, 댓츠 오케이. 유알 오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