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교사 시점의 교권과 정치 이야기
이번에 젊은 선생님께서 학교 업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셨고, 이번 주 내내 이 이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담론을 펼쳤다. 뉴스에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심지어 전국 선생님들이 모여서 시위까지 하셨다. 학부모 상담하랴 학생 상담하랴 너무 바빠 모여서 한번 회의하기도 너무 힘든 선생님들이 이렇게 전국에서 모이다니, 학부모와 학교로부터의 서운함과 분노가 이렇게 크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많은 미디어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막고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현직 교사로서 이 문제를 바라봤을 때, 이 일로 교사를 보호하는 법안의 모양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리 효과적이진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관점을 아주 조심스럽게 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정치에서는 진보가 되었건, 보수가 되었건, 절대, 무조건 절대, 학부모가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불신은 꺼뜨리기에는 너무 효과적인 정치전략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는 교육과 관련된 담론과 함께 하고자 한다.
이번에 미국에서 엄마들의 모임 (Moms for Liberty)이 플로리다의 경선을 몰았다고 평가가 되고 있다. 엄마들을 모은 건 당연히 학교에서 하는 일의 불신이었다. 학교에서 자기 아이들이 읽는 문학책들과 교과서가 (백인) 아이들의 기를 꺾는다며, 이러한 문제 있는 교사들과 교육과정을 신고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내러티브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드산티스라는 남자는 엄마들이 건네준 깃발을 펄럭이며 주지사에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되었던 문학책들과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쉽고 접근성 높은 이야기로 비판적 사고력과 다양성, 포용력 등을 고무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관들에서 훌륭하다고 검증된 책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엄마들은 이러한 관점을 들을 수도 없는 것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뼛속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눈과 귀는 자신이 믿는 것에만 열려있는 거다.
그런데 웃긴 건,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이 현상이 다른 주로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오하이오 등 다양한 정치인들이 이 깃발을 들면서 엄마들을 모았고 결국 버지니아에는 교사신고 핫라인이 생겼다. 교사가 규범적으로 마땅하지 않은 교육활동을 한다면 학부모는 이 핫라인으로 전화해서 신고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엄마의 힘은 대단하다. 아주 다른 방식으로 대단하다. 육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믿지 않는 타인을 자식 사랑이라는 화력으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쉽게 레이더에 들어오는 사람은 당연히 교사다. 자기 자식에게 자신만큼이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교직원회의에서 교권보호 연수를 받았던 때가 기억난다. 교권보호 교육은 아이들보다 선생님들에게 더 많이 한다. ㅋㅋㅋ 선생님에게는 교권침해사안이 생기면 선생님이 어떻게 처신해야 나중에 민원이 없는지를 교육하신다. 그런데 나에게 굉장히 인상 깊었던 점이, 아주 베테랑이신 20년 차 교사분이 교권보호위원회 관련 규정에 학생에 대한 새로운 처분사항이 추가되었다고 말씀해 주실 때였다.
"원래는 사회봉사가 가장 높은 처분사항이었는데, 이번에는 학급교체와 강제전학이 추가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이렇게 가긴 힘들 거예요. 바로 아동학대 신고 들어올 수 있는 사안이라."
그렇다. 규정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없었다. 학교가 그렇게 결론을 내려도 어차피 학부모에게 더 불을 지필 수 있는 장작을 주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아동학대 신고 들어와서 선생님들 모두 조사받느니 차라리 애한테 사회봉사 주고 끝내는 게 쉬운 방법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여태껏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교권침해 사례만 봐도 진짜 정말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 내 주변에서는 학생이 교사한테 욕을 해서 교권보호위원회로 올라가는 걸 본 적은 있어도, 학부모가 교사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서 교권보호위원회로 올라간 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좀 순한 애들이 있는 학교에 있었어서 그런가. 중등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나는 애들한테 ㅅㅂ, ㅈㄴ라는 소리 들어본 적 수도 없이 많지만 내 권리를 아이들에게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지질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교권침해 신고하기보다는 그냥 애들하고 툭 터놓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 애들은 대체적으로 죄송하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깡으로 버티는 애들도 나한테 대놓고 사과하라고 얘기하면 사과한다. ㅋ 나는 교권이라는 게 침해당한다고 생각할 때는 아직 미성숙하고 어린애가 나한테 욕했을 때가 아니었다.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어른이 아이를 위해 나름대로의 최선의 결정을 한 나를 혼내고, 나의 능력을 무시하고, 나의 결정을 뒤흔들고, 내 위의 관리자에게 가서 이르고. 이럴 때가 정말 교사로서의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태초 때부터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이었고, 언제나 미성숙하게 행동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존재하는 거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아이들이 사회 안에서의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교사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태껏 그래왔듯이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도 할 거고, 보람으로 마음 가득 채우게 할 거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변한 건 어른들의 문제해결방식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게 핸드폰 하나로 해결되는 너무 편한 세상임과 동시에 우리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공격하는 게 너무 많은 바깥세상. 하지만 자식은 이 어두운 바깥세상에 나가야 또래와 존재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보내긴 하지만, 만일 내 자식을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불태워서라도 내 자식은 보호해야 한다. 이런 예민함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에 정치권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하나의 깃발로 이용하기에 너무 쉽다. 투표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학부모 민원은 학부모 개인의 문제로 꼬집기에는 너무 커다란 흐름이다. 룸서비스를 주문하는 것 같이 선생님에게 아이에 대한 특별대우 요구 및 컴플레인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자식으로 인해 마음 아픈 학부모가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교사에게 분출하는 경우도 너무 많아졌다. 학부모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학교 민원의 근본적인 대책은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신뢰이지만, 이미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눈과 귀가 막혀버린, 아주 많은 학부모들에게는 너무 늦은 듯하다. 이미 이들에게는 교사라는 사람은 학폭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오는 악역 담임선생님이라는 프레임이 씌여져 있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학부모들은 사람을 모아야 하는 유튜버, 유권자를 모아야 하는 정치인, 그리고 시청자를 모아야 하는 언론에게 필수불가결인 존재다. 사랑을 전제로 하는 강력한 분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교사에 대한 불신과 교육활동에 대한 통제는 절대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간교육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될 수 없다. 날개가 꺾인 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감시의 눈에서는 교사의 전문성이 절대 살아날 수 없다. 전문성이라는 건 다양한 시도 및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다르게 행동하면 내리 꺾는 학부모와 학부모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관리자 아래에서 경험이라는 게 가능은 할까? 그냥 원래 하던 대로만 하면 다행인 거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믿지 못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 만족스럽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해지거나, 도피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교사집단은 전문성이 점점 떨어질 거고, 여기 미국처럼 교사 인력 수급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교사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될 수도 있다. 진짜 그렇게 되면 학부모가 돈의 힘으로 나름 주문할 수 있는 사립학교가 강세해질 거고, 공립학교는 자본 없는 자들의 자식들의 추락의 길을 걷게 될 거다. 모든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권을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해결방안 말고, 난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미국의 참담한 공교육 현실에 대해 TED 강연에서 나온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교사가 너무 많이 그만두는 걸 보면서 교사 월급을 높이는 제도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당연히 맞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교사들에게 일을 그만둔 이유를 물어보면 가장 흔하게 이야기하는 건 '월급 부족'보다는 '존중의 부족'이라고 한다. 결국엔 자본이라는 양적 해결방법을 넘어서 질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만 요즘은 어른들에게 더 부족한 존중과 신뢰. 우리나라의 상황에 빗대자면, 교사를 보호하는 법안 (학부모를 무력화시키는 불가능한 법안)을 넘어서서, 교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주체의 질적논의가 필요하지 않을지. 아주 솔직하게 나의 바람은, 학부모님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교사도 우리 아이와 같이 쉽게 부러질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닫고, 이렇게 쉽게 부러질 수 있는 인간들 (내 아이, 내 아이 친구들, 내 아이가 싫어하는 친구들, 내 아이 교사, 그리고 학부모 나 자신)이 어떻게 다 같이 굳세게 자라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적어보니 이것도 실현불가능할 것 같아서 좀 속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