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교사, 너무 비슷하지만 너무 달랐던. 나의 솔직한 이야기.
학부모와 교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글을 쓰는 시점의 전 날,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교직 2년 차에 아주 젊은 나이의 교사이다 보니 초등교사인 내 동생과 동일시되어서 그런 건지, 나도 예전에 자해를 하고 싶을 정도로 학교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있어서인지, 뉴스를 접한 이래로 계속 마음이 먹먹하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좀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인에 대해 아주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추측을 한다는 거다. 물론 죽음이라는 사고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지 논리적인 인과관계로 이해를 하려는 인간의 본능일 수 있겠으나, 이번 경우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은 참 이걸 어떻게 교사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알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사실이건 말건 내러티브가 굉장히 탄탄했다. 일단 초임교사가 2년 차에 학폭 업무를 맡았고, 강남지역의 교사라 학부모 민원이 많았고, 작년보다 너무 힘들다고 동료교사에게 많이 호소를 했다는 거다. 그런데 교사 6년 차인 나로서 솔직히 말하면, 아주 익숙한 레퍼토리다.
매년 새로운 학년도가 들어서면 관리자는 머리가 지끈지끈하다고 한다. 이 학폭업무를 어떤 선생님에게 줄까. 왜냐하면 아주 예외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선생님도 학폭 업무를 맡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명 높은 이유는 바로 학생들과의 마찰과 학부모에게서의 민원이 아주 높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업무를 맡으면 명이 10년 줄게 된다는 말도 있었다. 학교폭력위원회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제일 힘든 아이들, 그 뒤에 존재하는 제일 힘든 학부모, 그리고 민원방지를 하고 싶은 관리자의 등쌀 사이에서 고생하는 선생님들이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초임교사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들리면 사실이건 말건 그 선생님이 학폭 담당을 하고 있었다는 추측은 억측이 아닌, 논리적으로 아주 타당한 결론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런 추측이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아무리 그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 사람들에게 ‘그 선생님 학폭 담당 아니었어요~’라고 말해도, 이미 너무 탄탄한 내러티브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 귀에 잘 들리지도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내러티브가 탄탄해졌을까 한번 고민을 하게 된다. 내 생각엔 그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내러티브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교사들이 한 번쯤, 아니, 수십 번쯤 거쳤던 실제 경험이기 때문에.
사실 고인이 학부모 민원을 많이 받았건, 적게 받았건, 내가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사실 나도 학부모 민원으로 너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학부모한테서 핸드폰으로 전화만 와도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핑 도는, 그런 상황이었다.
내가 처음에 발령받았던 학교는 경기도 북부에 위치하는 신도시였는데, 그때만 해도 아직 아파트들이 지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학생수가 매우 적었고 그나마 있던 아이들은 이미 그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불안도가 낮았던 해였던 것 같은 게,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어서라기보다는 ‘학부모가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해여서 그랬던 듯하다. 정말로 아이들과 체육대회 준비한다고 학교 끝나고 남겨서 단체줄넘기도 연습하게 했었고 공포영화도 같이 보고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 학원 가야 하는데 내가 그것을 막은 거니, 학부모한테 허락도 공식적으로 안 받았으니, 당연히 민원대상이다. 그런데 그때는 학부모 상담주간을 하면 학부모님들은 나에게 바라는 게 많이 없으셨다. 정말 ‘우리 애 잘 지내죠?’ 물어보시고 나는 아이가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끝이었다.
그런데 그 해 12월, 정말 6달 만에 올린 아파트들이 입주를 시작했고, 전국 각지의 아이들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 해가 정말 힘들었던 게, 아이들이 3월에 모두 같이 학교를 시작했으면 조금 나았을 수 도 있는데, 정말 한 명은 5월 한 명은 7월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전학을 왔다. 아이들은 정말 카멜레온 같아서 주변에 어떤 친구들이 있느냐에 따라서 행동하는 방식이 정말 달라지는데, 이렇게 친구들이 계속 전학을 오니 무슨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 돌리는 것처럼 내가 파악하고 있었던 아이들의 성향이 확확 바뀌는 게 보이니 대응하기 참 힘들었다. 물론, 아이들끼리의 갈등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x100 많았다. 새로 전학 온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아주 조그마한 행동들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예민한 마음상태였고, 원래 있었던 아이들은 새로 전학 온 아이들의 다른 배경, 실력, 능력 등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새로 온 아이들에게 선을 긋는 행동을 보였다. 그런데 웃긴 건, 두 달 후에 또 어떤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면 전학생이었던 아이는 새로 온 전학생에게 선을 그으며 원래 있는 학생들과 굉장히 친한 친구가 된다는 거다. 하…
정말 무슨 동물의 왕국에서 숯사자들이 무리의 왕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더 많은 친구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에 힘을 가지기 위해, 내 기준에서 정말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많이 했다. 일부러 기물파손을 하고 다른 아이에게 뒤집어씌운다던가, 실연당한 친구를 보호해 준답시고 실연의 책임자인 애에게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로 가득한 저주를 한다던가, 욕하거나 때릴 용기는 없었는지 복도에서 지나칠 때마다 눈으로 째려보며 긴장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던가.
나도 인간이다 보니, 학폭 신고 들으면서 제일 피곤한 게 ‘쟤가 나 째려봤어요'다. 물론 선생님 교과서에는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라고 하지만 저 째려본 행동으로 인해서 수없는 사이버폭력, 수없는 언어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정말 공감을 해주고 싶어도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아이들이니까, 아직 성숙하지 않은, 크고 있는 아이들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피곤해도 공감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더 피곤한 건 이런 아이들의 싸움에 너무나도 예민해지는 학부모를 상대하는 거였다.
절대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힘센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 왕따 시키고 폭력 휘둘렀던 모습을 (내가 맞기 싫어서) 주변에서 방관하면서 그때 무차별한 폭력에 대응할 수 없었던 내 또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이제 내가 교사인 이상 이런 일은 해결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책임감이 든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아주 많이 다른 것이, 아주 많은 경우로 학생들의 갈등이 학부모들의 갈등으로 번지고 이는 엄청난 화력을 가져오곤 한다.
아주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학생과 원래 그룹과의 갈등이었다. 전학생 아이는 서울 강남의 좋은 학군에서 온 아주 성실하고 밝은 아이였다. 부모님은 아이에게 높은 기대를 가지고 계셨고, 아이를 다소 엄격하게 훈육하시는 분이셨다. 정말 아이는 오자마자 국어 수업에서 조별 수행평가 과제를 해야 했고, 나름 국어선생님이 배려해 주셔서 전학생 아이를 조금 챙겨주던 아이가 있는 조에 편성이 되었다.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서 방과 후에 따로 만나야 되는 상황이어서 아이들이 자기네 학원스케줄을 고려해서 저녁 7시에 만나자고 했나 보다.
그 다음 날 나는 그 학부모님에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전학 온 지 3일 만에. 안건이 매우 많으셨다.
“일단 저녁 7시에 중2 아이들이 따로 만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 이렇게 어둑어둑해지는데, 아이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학교 밖에서 따로 조별과제를 해야 한다는데, 강남에서는 이런 과제 없어요, 선생님. 수행평가는 학교 안에서, 수업에서 끝내야죠. 국어수업 과제라는데, 그 국어 선생님이 똑똑히 아셔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듣고 보니 7시에 만나지 못해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고, 7시에 만나자고 한 아이들에게 화가났던 학부모님은 조장 아이에게 전화를 해 꾸중을 하신 모양이였다.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조장 아이는 자기 부모님께 말했고, 그 부모님은 상대 학부모를 학폭신고하고 싶다고 나한테 그 다음날 또 전화가 왔다. ㅋㅋ 이건 애들 싸움이니까,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눈 녹듯 아이들의 관계가 풀어졌다. 내가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냥 다시 일찍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끝났다. 아이들은 감정이 풀렸지만 부모님의 감정은 안풀렸나본지, 서로 학폭 신고하겠다고 하는 걸 '아이들이 학교에서 요즘 손 잡고 다닙니다' 이야기해드리면서 겨우 잠재웠다.
잘 해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저 민원전화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학부모의 말이 나에게 되게 상처였나보다. 그냥 걱정스러운 학부모라 생각하고 그냥 넘기면 되는 건데, 아직 나도 나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한 자라고 있는 20대 청소년 2년 차 초임교사였다. (그 학부모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잘못한 부분이 아닌 것에 대해 학부모에게 혼나고 있다는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이 억울함을 어떻게 풀지도 몰랐고, 이 억울한 기분이 드는 나 자신도 많이 한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학부모도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를 전학시키는 이 상황이 참 혼란스러웠을 거고,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아이를 둔다는 게 굉장히 불안했을 거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네, 네, 어머님'하는 젊은 여교사이지 않았을까? 마치 집값 떨어지는 게 너무 불안해서 구청에 젊은 민원인에게 소리를 지르는 악성민원인인 것처럼. 물론 이 학부모의 불안은 교우관계, 수업, 평가 등 계속 이어졌고, 나에 대한 명령도 계속 이어졌고, 나의 모든 교육적 결정에 대한 자신감도 서서히 잃어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교육적 결정은 개별적인 아이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닌, 학부모 민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때.
이 학부모님 덕분인지 두 번째 학교에서 적응하는 건 아주 쉬웠다. 나름 순한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고, 학부모의 민원을 철벽방어하는 제일 공정하고 제일 칼 같은 담임업무 처리, 평가, 수업을 했다. 학교 끝나고 학원에 잘 갈 수 있게 방과 후 수업은 철저한 사전동의를 구하고 나서 해야 했기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 했고, 나의 수행평가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문법평가였다. 영상 만들라고 했다가 민원 들어오면 어쩔라. 영상을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하겠는가? 협업을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하겠는가? 학부모님들이 나의 칼같음을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공격 같은 민원은 들어오진 않았다.
그렇게 순한 맛 담임 해가 지나가고, 그다음 해 또 담임을 하며 나는 화장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학부모와 한 시간 정도 통화하고, 교무실에 와서 펑펑 울고, 부은 눈으로 학부모의 아이와 상담하고, 상담으로 인해서 학부모랑 또 통화하는 악몽 같은 사이클을 보내게 된다. 이 중심에 있던 아이를 A라고 일컫겠다. A는 불안도와 예민도가 높아 교우관계에서 다소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조금 싫어하는 친구의 험담을 하거나, 자신이 조금 좋아하는 친구에게 과도하게 다가가거나. 그렇다 보니 자신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 아이였고, 좋은 교우관계를 너무 가지고 싶어 하지만 가지기 너무 힘든, 영어실력 같은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하지만 A는 나를 아주 잘 따랐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니, 친구에게서 받을 수 없는 그런 결핍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많이 해소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A가 정말 아주 많은 학폭 사건에 연루가 되게 되는 게, 불안도가 높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아주 사소하게 말로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들과 대면하는 대신 학교폭력 신고를 하기 때문이었다. 학교폭력 신고를 한다고 해서 모든 사안이 학교폭력위원회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담임 선에서 해결을 하면 담임종결로 처리가 된다. A가 신고했던 모든 사안은 담임종결로 처리가 되었었고, 그렇게 처리한 담임은 바로 나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A의 비위를 상하게 했던 같은 반, 다른 반, 다른 학년 아이들을 모아 그 아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이야기했고, 그 다른 반 아이들에게서도 A가 자기네들에게 어떻게 적대적으로 했는지 아주 디테일한 하소연을 들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다른 아이들은 내가 A를 편애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아이만 예뻐하시면 안 된다고.
수업도 제대로 준비 못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니까. A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걸 도와준다고 생각하면서 했다. 그런데 정말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건 A의 학부모였다. 정말 모든 사건의 중심은 A가 아니라 A의 학부모였다. A의 학부모는 A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A보다 훨씬 분노하셨고, 이 상황을 정의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법의 판단, 학교폭력위원회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한 번은 A가 가족 심부름을 해야 해서 조별과제 연습을 같이 못한다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니, 원래 A와 좋지 않은 관계에 있던 친구들은 ‘왜 너는 항상 조별과제 모임에 빠져? 그럼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고? 가족 심부름이 뭔데 도대체?’라고 얘기했고, 당황했던 A는 ‘그래서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몇 번 물어봤잖아! 나보고 어쩌라고?’라고 대응하며 사납게 말이 오갔나 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A에게 학교폭력 신고 보다는 이 친구들하고 한번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서로 사정을 한번 이해해보자고 제의했다. 학교폭력 신고를 하면 체감적으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서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나름 A도 상황의 사소함을 인지하고 나의 방식에 동의를 했는데, 이를 전해들은 A의 학부모는 득달같이 나에게 전화하셔서 말씀하셨다.
“친구 4명이서 그렇게 a를 몰아붙이면 당연히 A가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이걸 학교폭력으로 보지 않는 선생님이 다시 고려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친구 4명은 항상 A를 싫어했어요. 얼마 전에 마트에서 비라는 애를 만났는데 애가 저를 대놓고 째려보더라고요? 아니, 어른을 그렇게 째려보는 애가 어딨어요, 선생님. 이번에 학교폭력 가서 그 아이들한테 이러한 사소한 언어폭력도 명백한 폭력이라는 걸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부터 그 아이들 상담하시고 저에게 그 애들이 뭐라 그랬는지 다 알려주세요. 그게 선생님의 책임이에요.”
이것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정말 나에게 충격이었나 보다. 째려보는 행동이 낳았던 수많은 언어폭력과 사이버폭력 신고를 경험했던 나는 참으로, 아주 참으로 째려보는 행동이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이런 째려보는, 어떻게 가늠하기도 힘든, 행동이 어른에게 학폭신고를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너무 신기하면서도 기가 턱 막혔다. 이러한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거의 한 달에 한 번 격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꼭 사건은 금요일에 터졌기 때문에 주말은 그 학부모의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아야 했다. 아이의 정신건강의 안전이 담보된 사건이니, 담임교사가 전화를 안 받으면 그 학부모는 나까지 학폭위에 보낼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민원에 대한 철벽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학부모의 민원을 방지하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애들을 괴롭힌 것도 아닌데, 계속 이런 사건이 터지면 세상에서 최악의 교사로서 대응한 것처럼 이렇게 민원공격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아마 12월 중순 즈음, 월요일 아침 출근하러 차에 시동을 걸기 직전에, 평소에 부모님에게 힘들다고 내색을 안 하던 나는 엄마한테 갑작스레 전화했다.
“엄마, 나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 낼 것 같아. 다른 차한테 치이고 싶어. 나 이렇게 못살겠어.”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나를 진정시켰고 (정년과 안정된 보수 등 직장의 장점을 말하며), 그날 나는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출근을 한 게 정말 내 정신건강에 신의 한 수였던 게, 학교에 와서 여전히 밝고 예의 바른 태도로 나를 따르는 A를 보면서 나의 충동적인 상상이 정말 비현실적인 거였구나 깨달았다. 나의 정신건강에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하며 어떻게 해서 내가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졌고, 그날 나는 심리상담을 받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눈물로 젖은 티슈로 가득한 10회기의 심리상담 끝에, 난 내가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가지고 있던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 인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완벽주의적 태도가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민원을 차단시키려고 했던 것도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뒤에 있었다. 학부모가 나를 혼낼 때 마치 선생님이 나를 혼내는 것만 같이 싫었던 것도 선생님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깔려있었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건, 이렇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태도가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동력의 원천이 되었고고, 아마도 임용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된 것도 이런 태도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선생님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 바로 나를 선생님으로 만들었던 거. ㅋㅋ.
그러면서 굉장히 심오한 결론을 내게 된다. 나에게 그렇게 공격민원을 넣었던 학부모님들은 참으로 불안한 사람들이었구나. 우리 엄마아빠와 같이. 우리 엄마아빠는 당신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내가 당신의 기준으로 성공했으면 좋겠지만, 이러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상황을 통제를 하려고 하셨다. 내 학원, 내 수능과목, 내 수면시간, 내 학교 등등. 그 와중에 자신의 뜻대로 내가 되지 않을 때 굉장히 좌절하셨고, 화도 내셨다. 아마 그 화 뒤에는 내가 잘못되면 어쩌지 라는 우려와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아빠를 비추어보니, 그냥 학부모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요즘 악성민원인처럼 악성학부모라는 말도 떠도는 것 같다. 그런데 부모는 악마화하기에는 너무 애달프고 훌륭한 존재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게 부모고, 나의 부모도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악성 학부모가 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단지 불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학부모에게 요즘에는 민원이라는 창구가 생겨 자신의 걱정과 분노를 제3자에게 분출시킬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데 학부모 교육기관이 아닌 아이들 교육기관인 학교 입장에서는 다소 걱정스러운 것이, 이 불안한 학부모들은 학폭, 민원 등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이 불안한 아이들은 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으로 행동하며 자기 부모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이 사이에서 교사는 불안한 학부모와 학생의 변덕에 갈대처럼 휘날리는 존재가 된 것 같다. 교사는 이러한 불안으로부터 전염되거나 무뎌지면서 내가 어떤 교육적 결정을 해도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으로 이어지곤 한다. 나의 경우가 딱 그런 케이스다.
민원 방지라는 공공기관의 깃발 아래 자신이 존경했던 선생님에게서 배웠던, 학생과 소통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부모가 서운하지 않게 교육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학생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교육이 굉장히 붕 뜬 개념이라 나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오지만, 정말 확실한 건 이제부터 아이들을 바라볼 때 학부모귀신이 보였는데, 그걸 떨쳐내기 위해서는 아이들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들을 보고 만들어진 결정이라면 그런 나의 결정에 자신감이 세워질 것 같다. 학부모의 불신을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그런 심각한 불안함에 떨고 있는 학부모를 우리 엄마아빠를 바라보듯이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의 눈을 바탕으로 한 내 교육적 결정을 자신감 있게 밀어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