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나만의' 이유.
난 사실 휴직을 하면서 '도비는 자유예요'라는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진짜 믿기지 않겠지만, 아, 1년 더 하고 휴직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전 해에 연구부장을 맡고 생각보다 큰 규모 사업을 진행하면서 담임하면서 몰랐던 기획의 재미를 깨달아서 그랬던 걸까. 그럼 그전까지는 그렇게 지옥 같은 교직생활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진짜 힘들 때도 많았지만, 사실 아이들이랑 함께 지내면서 나도 같이 컸던 것 같다. 20대 후반의 내 미성숙함이 힘든 학부모, 힘든 동료교사와 만나서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나도 아이들과 함께 같이 성장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교편 잡는 것이 되게 소중해지고 기다려져야 하는데, 또 그렇지만은 않다. 가난한 학생 생활을 하면서 제발 돈 나오는 일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왜 내 마음은 교직으로 돌아가는 게 망설여질까? 고민을 많이 해보니, 교사라는 직업이 버거웠던 나만의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조금 긁적여보려고 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행정업무의 양, 힘든 민원인(학부모), 시대착오적인 생활지도(두발), 공무원 특유의 폭탄 돌리기 식의 업무분담 등 구조적인 이유가 있지만, 이런 요인들이 물론 교직생활을 쉽게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의 극단적이진 않았다. 사실 나는 아이들과 지내는 게 너무 좋았고, 아이들의 인생에 대해서 너무 궁금한 게 많았던 어마어마한 오지라퍼였기 때문에 학부모와도 엄청 심하게 트러블이 없었고 (있어도 마지막에 잘 풀게 되고), 업무 관련해서는 너무 좋은 관리자 분들, 부장님들 만나왔기 때문에 일은 많았지만 많이 배웠고 그랬다.
그럼 나만의, 교사가 버거웠던 이유. 다른 사람은 괜찮을 수 있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
나는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술 좋아하니 칵테일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모형 건축물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기 실력은 없어서 만화 그리기 등의 작업은 잘 못하지만, 글 쓰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내가 인생에서 하는 이런저런 것들(맛집 탐방, 여행, 친구들과 만남 등)을 영상으로 만드는 것도 너무 재미있게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살아요!! 나 이거 했어요!!'라고 표현하는 게 너무 좋은 '나대는' 사람인 거다. 그저 취미라고 생각해 왔는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런 창의적이고 표현적인 행동이 나에게는 나 자신이라는 인간을 만들어나가는 정말 중요한 행동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운동일 수도 있겠고, 나에게는 만들기인 거다. 그게 글이 되었든 영상이 되었든.
어떤 사람들은 자랑하려고 하는 거 아닌지 싶지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지, 생각은 들지만) 사람들이 좋아요 누른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자랑이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썼던 글, 내가 만들었던 영상은 그때 들었던 기분을 정말 생생하게 되살려주는 것 같아 너무 좋다. 그리고 내가 한 작업들이 나 혼자만 아껴놓고 보기엔 너무 아깝고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다. 나의 스토리들과 타인의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반응은 그런 생생한 기분을 더 상쾌하게 만드는 거다.
교직생활하면서 바빠서 많이 못했던 것도 있지만, '이거 한번 공유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 항상 나는 나 자신을 자주 막아왔다. 절대로 교사로서 지탄받을만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는 관념이 깊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모범적인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학부모나 학생에게서 비판받을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행동해야 한다라고 생각을 많이 해왔다. 우리 교장교감선생님들은 항상 방학 전에 저렇게 잔소리하시곤 했다. (아마 그분들은 음주운전 같은 불법적인 행동을 염두에 두셨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존재로서의 나에 대해 진지한 고민 없이, 선생님이라는 역할에 올바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많이 애썼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만나서 재밌게 영상 만든 건 올리지도 못하고, 남편이랑 결혼하기 전에 여행 갔던 것도 절~대 못 올리고...ㅋ 어휴, 내 남편이 미국인이다 보니까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 남편 사진은 커녕 존재도 숨겼다. 학부모한테서 민원 들어올까 봐, 동료교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등등. 사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상황인데 중요한 건 교사라는 직업은 절대로 내가 신경 쓰지 않는 게 안된다. 모범적인 (과연 모범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민원이 들어오고, 이 민원을 기반으로 관리자가 직원에게 조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에 유튜브 영상에서 학부모가 교사 인스타 팔로우 리스트를 보다가 건전하지 않은 계정들을 발견하고는 교사에게 팔로우를 취소해라, 아이들이 선생님계정으로 타고 들어가서 보면 어쩌냐라고 민원 넣었다고 한다. 당연히 관리자는 교사에게 그렇게 하라 지시했고, 교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ㅠㅠ
그래서 난 휴직하고 나서 미국에 들어오면서부터 브이로그, 브런치 등 본격적으로 솔직하게 공적인 공간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애들이 못 찾게 하려고 일부러 영어로 유튜브 올리는데 이놈의 아그들이 얼마나 빠른지 한 달 만에 나를 찾아서 댓글달기 시작했다. 교직에 있었으면 바로 동영상 내리고, 다른 계정 파고 위스키 마시는 나 자신을 숨겼을 텐데 (애들이 물어보면 오리발 내밀고 ㅋㅋ 그거 나 아닌데? 이러면서 ㅋ ), 이번엔 그러지 않고 그냥 애들 댓글에 좋아요만 눌러줬다. 뭐 나는 그들의 담임도 아니고 교과교사도 아니다 보니, 내가 유튜브로 돈을 벌지 않는 이상 나는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말도 못 할 평온함이 몰려왔다. 내 똘끼, 내 이상함, 나 그대로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굳이 선생님으로서 모범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정말 부모님 집에서 나왔을 때보다 더 큰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학교라는 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곳 아닌가?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 스스로를 탐색해 나가는데,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한 어른들인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지내는 게 그들에게 더 의미 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사들이 정치유튜브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약자인, 학생들을 지도하며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내 기준으로는 '애들을 나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진짜 위험한 것 같고, 교사도 인간으로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관점들을 보여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라고 운을 띄워보고 싶다. 나 자신과 다른 것을 보아야 나 자신이 태도를 발달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다시 교편을 잡게 된다면 학부모한테서 민원 들어올까 봐 다시 나 자신을 검열하며 살아야 할 거고, 글쓰기도, 영상 제작도, 나 자신에게 덜 솔직하게 표현하게 될 것 같다. 적정한 선이 어딜까, 계속 고민하며 복직을 준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