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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May 13. 2023

미국에서 또 이사하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벅찬.

미국에서 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남편이 여름에 인턴쉽에 참가하게 되면서 펜실베이니아라는 옆에 주로 여름동안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지 8개월밖에 안되었는데 지금 지내고 있는 아파트먼트에서 또 이사를 하게 되는 지경.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사실 그렇게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미국 거주지를 정해놓고 와야 했기에 직접 보지도 못한 채 계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본 가구 (소파, 침대 등)이 갖추어져 있는 한국말로 하면 풀옵션인 곳으로 와서 가구를 구해도 되지 않아 몸은 편했지만, 여기에 사는 내내 아마존 택배상자도 갑자기 없어지고, 차 안에 물건도 한번 도난당하고, 세탁실에 항상 맴도는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등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들이 있었기에 마음은 항상 불편했다. 


남편의 인턴쉽 덕분에 이 집에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너무 설렜지만, 어제 이런저런 짐을 정리하고 오늘 또 정리할 짐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또 한 번 깨닫는다. 이사라는 것은 정말 인생의 모든 부분이 마비가 되는 그런 큰 행사라는 걸. 한국에서 이사 올 때에 가구를 들고 올 수 없었기에 부모님 댁에 가구와 짐들을 옮기는 이사와 미국에 들고 갈 짐을 공항으로 가져가는 이사, 2번을 거쳤다. 그리고 8개월 만에 여기 미국 집에서 또 이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3개월 후 다시 이 동네로 돌아와야 한다 (새로운 집을 계약했다). 전생에 노매드였던가. 우리는 30대 디지털 노매드가 아닌 그냥 노매드다.

한국에서 옮겼던 짐....

어제는 남편의 형이 와서 여기 집에 있는 가구를 친구집에 옮기고, 필요 없는 가구는 옆 동에 사는 친구 집에 가져다 놓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소파랑 매트리스쯤 내가 옮길 수 있다고 남편한테 떵떵거렸는데, 아무래도 내 체구가 믿을 수 없었나 본지, 그렇게 친하지 않은 형한테 연락해서 와달라고 했다. 어제 옆에서 남편과 형이 일하는 걸 보면서 생각이 든 게, 큰 가구를 옮기는 게 굉장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거다. "왼쪽으로" "내 왼쪽? 너 왼쪽?" "내 왼쪽!" 등 ㅋㅋ 큰 가구 하나 옮기고 집에 들어와서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하나 마시면서 둘이서 다음 작업으로 무엇을 할까 의논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감동스러웠다. 


남편의 형과 남편은 사실 굉장히 다른 두 사람이다. 남편의 형은 감정표현이 매우 풍부한 반면, 남편은 상대적으로 되게 절제된 사람이다. 남편의 형과 남편은 자라면서 취미도 달랐고, 친구들도 달랐다. 서로 같이 존재할 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했을 때고, 둘만 있을 때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부모님이라는 학교를 10년 전에 졸업한 어색한 동창생 둘이 처음 만나 스몰토크하는 것 같다. 물론 남편이 한국으로 떠난 게 도움이 되진 않았겠지만, 둘은 '친구'라는 개념보다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더 지배하는, 그런 관계. 


그런데 이사라는 것 자체가 이사 전의 인생의 모양을 돌아보게 되고 이사 후의 미래를 그리게 되는 행동 아닌가. 남편과 형이 가구를 옮기면서 이 가구를 어떻게 썼었는지, 다음엔 어떻게 쓸 건지에 대해 저절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인생에 대해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하는 게 엿보였다. 아 이 가구 비슷한 거 부모님 집에도 있는데, 남편이 한국에 있을 때 아버지가 많이 좋아했었는데 버리게 되었다, 등. 엄청난 육체적 노동이었지만, 남편 형과 남편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가구 정리가 끝난 후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고, 우리는 남편 형과 중국 음식을 먹고 헤어졌다. 

짐 빼고 있는 현재 미국 집-저 쇼파랑 테이블 다 옮겼다 ㅠㅡㅠ

한국에서 이사했을 때에도, 결혼 후에 조금 소원해졌던 엄마아빠와 큰 딸인 나의 관계도 조금 돈독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서른 살 먹은 딸이 엄마아빠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게 스스로 염치없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럼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이게 바로 '정'인가? 생각했다. 20대에는 ''정'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할 수 있어? 매일 연락하면 정을 붙인 거야? 그런 게 어딨어. 인간은 혼자 사는 거지. 내가 정을 붙여봤자 다른 사람이 나한테 정 떨어지면 그게 끝인 거다"라고 되게 (상처받기 싫어서) 결론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씩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런 '정'이 더욱더 소중해지는 듯하다. 나이 들면 들 수록 이런 인간관계가 희소하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미국에 오니 여기도 그런 개념이 있더라. 감히 번역을 하자면 'genuine human connection' 비슷한 것 같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나,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 이사라는 인생 행사를 거치면서 내 인생의 사람들과 정을 쌓게 되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으로는 벅찬다. 펜실베이니아에서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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