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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Aug 11. 2023

생일축하해, 내 동생.

인생이라는 물에서 모히또를 마시며 동동 떠다니는 언니가

너 생일이 다가올 때면 너가 가지고 싶었던 거, 먹고 싶었던 거, 하고 싶었던 거를 항상 물어봤고 요청한 건에 대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던 것 같은데. 


인생의 무게가 너의 어깨를 많이 짓누르는 지금, 너의 인생을 시작한 날을 그저 축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둔감한 성의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정성껏 한번 축하해보고 싶다. 너가 태어난 날 1997년 8월 10일, 5살의 어린 언니로서 나는 아주 심각한 두려움을 느꼈던 게 기억나. 이미 몸집이 많이 자라서 엄마의 두부 사오라는 심부름도 다녀올 수 있는 나로서는 너가 너무 작았고, 엄마아빠는 너가 나보다 너무나도 작으니 너를 안을 때 조심해야하고 보호해야한다고 했어. 너가 3살 정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갔는데, 그날 너가 튜브 위에서 동동 떠서 놀고 있었어. 그게 너무 불안했나본지, 그날 밤 나는 너가 계곡 물살에 휩쓸려가는 끔찍한 악몽을 꾸었어. 그 때 너무 충격이였나본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항상 너를 보호해야하고 지켜야한다는 의무감이 좀 혼란스러웠는지 그냥 도망쳤던 것 같아. 나는 내가 고등학교를 기숙사학교로 가게되면서 너랑 많이 멀어졌지. 너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동안 힘들었던 것도 난 잘 몰랐고, 대학교 입학해서도 우리는 만나곤 했지만 사실 너라는 아이를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게 사실이야. 너랑 나는 정말 다르게 생긴, 다른 성격의,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가족이라는 단체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너와 요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 둘만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물론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친구들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지만, 유년기를 함께 지내온 자매로서 우리는 아주 근본적인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의 감정도 공유할 수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이 황무지같아보이는 인생에서 너의 생일 기념으로, 내가 느끼는 조그마한 축복의 감정들을 너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서 서로 인사를 했어.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물고기가 어린 물고기한테 “오, 오늘 물 좋지?” 했더니, 어린 물고기가 뭐라고 했게? “물이 뭔데요?”


사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너무 크게 와닿았던 게, 나는 학창시절을 거치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우리 가족이 가지기에 많이 힘들어했던 돈, 안정성, 그것으로부터 오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나도 모르게 항상 쫓아왔던 것 같아. 당연히 임용고시를 쳐야했고, 임용고시에 붙었으니 당연히 나는 출근을 하고, 당연히 퇴근을 해서 당연히 월급을 받고 당연히 주말에 월급의 일부분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고.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아니, 생각한 적도 없어. 이건 그냥 그런거고, 그냥 인생인거고. 이게 틀리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이건 우리가 태어나면서 마주하는 환경에 적응해야하니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아.


그런데 아주 잠깐 이 루틴에서 나와보니, 삶을 사는 것과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이 사회에서 돈이 있어야 삶이 가능하니 돈 버는 행동은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가 돈을 벌고 사회활동하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학위를 더 얻는지, 승진을 하는지, 이런 선택이 과연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는 선택일까, 아니면 생계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선택일까. 과연 우리는 물이라는 존재를 알고는 있을까.


내가 정말 존경하는 작가가 한 말이 있어. 무신론자인 인간은 없다고. 돈과 물건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절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고, 힘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힘을 뺏길까봐 항상 두려움에 살아나갈 것이며, 지성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바보같이 보일까봐 항상 불안할 거라고. 이런 숭배는 우리가 태어난 날, 우리의 생일때부터 마주해온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아주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사고방식이고. 하지만 무조건적인 숭배만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길은 아닌 것 같아. 우리는 태어날 때 원하는 물건, 원하는 사람, 원하는 색깔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태어나잖아. 우린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이 힘을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따라 인생의 모양이 달라지는 듯 해.


우리 자매가 살아왔던 세상에서 적응하기 위해 돈, 힘, 지성 등을 끊임없이 숭배해왔던 우리를 가엾게 여기고, 26번 이상의 생일을 보낸 우리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해주자. 힘든 경험도 많았지만, 우린 사랑이 가득한 가족이라는 텃밭을 가진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이기도 해. 그리고 우리에게는 앞으로 다가올 수십년의 인생을 다채롭게 색칠할 수 있는 색연필들을 가지고 있어. 색연필들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서로 이야기하면서 같이 찾아나가보도록 하자. 내면의 목소리가 너는 충분하지 않다고 속삭일 때가 있을거야. 하지만 충분함에 대한 숭배 대신 너는 이미 대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색연필을 가지고 태어난 날이 1997년 8월 10일이야. 


생일, 너의 색연필, 너의 자유와 힘을 아주 진심으로 축하해!


- 인생이라는 물에서 튜브타고 모히또 마시며 동동 떠다니고 있는 언니가

이게 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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