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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Dec 08. 2023

디너파티로 먹고살 수는 없나요

[글루틴 13기 챌린지] 미국 문화 디너파티 즐기기

미국에서 공부하며 나의 진정한 적성을 찾았다. 공부도 아니고 수업도 아니고 연구도 아니다. 그건 바로 디너파티. 


미국에서는 디너파티를 친구들끼리 많이 한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몇 코스로 음식을 차리고 술이나 음료를 곁들여서 몇 시간 동안 같이 먹고 떠들고 하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친구들끼리 집들이할 때나 집으로 초대해서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모임을 가졌던 것 같고 다른 때는 거의 밖에서 모임을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여기 미국은 워낙에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문화가 훨씬 더 크다 보니까 디너파티도 더 활발한 것 같다.

보통 술과 음식을 곁들이는 디너파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보통 미국사람들이 하는 ‘파티'와 ‘디너파티'는 아주 다른 개념이다. 그냥 파티에서는 다양한 핑거푸드류의 간식들을 먹고, 직접 들고 온 술이나 음료를 먹으면서 서서 이야기하거나 캐주얼하게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눈다. 이런 파티들은 오픈 인바이트 (누구나 올 수 있는)라서 친구들도 데려갈 수 있고, 정말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단, 가면 앉을 수 없다 ㅋㅋ 계속 서서 있을 각오도 해야 된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의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서서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뭐 그런 개념이다.

우리 집에서 했던 크리스마스 파티 - 앉을 데 없음

그런데 디너파티는 아주 다르다.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도 하고 앉을자리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미리 사람들을 정해놓고 초대할 수밖에 없다. 저녁 식사 내내 앉아서 밥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배운 건데, 사람들에게 하나씩 뭘 가져오라고 시켜야 된다. 사람들은 밥을 공짜로 얻어먹는 거니까, 사람들에게 디저트를 준비해 오라던지, 음료를 준비해 오라던지 등 업무 분담을 해야 사람들이 편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워낙에 저녁식사와 술을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당연했다. 한국에서는 고기를 먹을 때면 맥주나 소주를 곁들이고, 치킨을 먹을 때면 맥주를 곁들이고 하는 게 아주 당연한 거 아닌가. 별로 특별하게도 생각 안 했다. 이런 페어링이 사치라는 걸 깨달은 건 우리가 지금 사는 오하이오의 시골지역으로 오고 나서였다. 나는 모든 서양인이 점심에 샐러드랑 화이트와인 곁들여서 먹는 줄 알았다. 미국은, 특히 시골지역은 정말 아니다. 미국은 음식을 술과 함께 하는 것이 맥줏집 (펍) 아니면 거의 없는 것 같다. 와인바도 여기는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여기 시골지역은 음식이 맛있으면 술을 팔지 않는다. 음식 아니면 술이다. 내 추측으로는 아마 이 나라에서 술을 팔 수 있는 라이선스를 따기 굉장히 힘들어서인 듯하다. 


그래서 친구들과 한국에서처럼 모임을 하며 밥을 맛있게 먹고 술을 먹으면서 진득하게 오래 앉아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없다. 가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거다. 이거 읽는 사람들한테 물어본다. 맥도널드에서 빅맥 먹으면서 친구와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모임 할 수 있을까? 그냥 빨리 나오고 싶지 않나… 그래서 나는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작년에 ‘디너파티'를 우리 집에서 시작했다. 


작년 겨울, 내가 그래도 조금 친해진 여자친구 둘과 그들의 남편과 남자친구를 초대해서 우리 여섯 이서 디너파티를 했다. 메뉴는 당연히 한식. 애피타이저로 새우전과 김치를 내고 식전주로 소맥을 말아줬다. 나는 속으로 막걸리를 외치고 있었지만, 우리 친구들은 너무 좋아했다. 소맥 퍼포먼스도 참 좋아했다. 그러고 나서 메인으로 돼지갈비와 김치찜, 그리고 흰쌀밥과 반찬 몇 가지를 내어줬는데 정말 친구들 눈 돌아가면서 먹는 걸 보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먹는 것만 보다가 다른 미국인들 먹는 걸 보니 너무 뿌듯했다. 친구들이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저녁을 마무리했는데, 아주 바람직했던 건 이 친구들과 저녁 먹는 시간 내내 별의별 얘기를 다하다 보니 아주 가까워졌다는 거였다. 그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한 시까지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친구들과는 참 끈끈하다. 엄마가 항상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으면 밥을 사주라고 했는데, 정말 밥을 같이 먹으면 사람들 간의 끈이 더 강해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일회용 접시와 함께한 첫 디너파티

이번 여름에는 이 시골로 유학온 한국학생들을 초대해서 이른 추석 디너파티를 했다. 어린 친구들이 많고 박사언니 딸도 와서 술은 같이 하지 않았지만, 추석 때 먹는 산적, 나물, 전, 그리고 (그냥 한국인들이니까) 김치찌개를 해서 같이 먹었는데 참 의미 있었다. 한국에 안 간 지 1년이 된 시점에서 한국음식 먹으면서 한국사람들과 한국말로 대화하는 시간이 참 꿈만 같았다. 그때 처음 만난 한국분들과도 정말 별의별 얘기를 다 했다. 밥을 같이 먹으면 희한하게 내 속 얘기를 더 하게 되는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한국 박사생들과 연이 깊어져서 같이 재미난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타인과의 만남으로 점점 넓혀지는 나의 세상이 참 자랑스럽다.

코리안 디너파티!

그리고 지난달, 나는 미국인 친구들과 이 지역에 새로 이사 온 친구들 8명을 초대해서 디너파티를 했다. 이번엔 정말 이런저런 틱톡 디너파티 영상을 보면서 야심 차게 준비했다고 한다. 애피타이저로 소시지계란 미니김밥을 만들어서 먹고, 엔트레로 보쌈+김치+배추 삼합을 간단하게 먹고, 메인으로는 나물 4가지에 소고기고추장과 계란프라이를 곁들인 비빔밥을 했다. 정말 지금 써놓고 보니 나도 참 유난이다. 쓰리코스라니 ㅋㅋ 친구들은 맛있게 먹어줬고, 비빔밥의 영광스러운 비주얼을 보고 ‘I feel so privileged (나 되게 특권을 가진 사람 같아)’라고 얘기했다. 에이미네 디너파티 구글리뷰 어디에 작성하냐고 미국식 농담도 던지고… 칭찬에 어색한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나는 그저 허허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기뻐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때도 역시 사람들 모두 3-4시간 저녁 먹고 술 마시는 내내 어색한 정적 한 번 없이 진솔한 이야기가 오갔고, 친구들은 너무 재밌었다고 하며 적절하게 알딸딸한 채 우리 집을 떠났다. 

영롱한 비빔밥

이번에 깨달았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가만히 내 음식을 기다리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하 호호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말 말도 못 하는 기쁨과 행복이 차오른다. 변태인가 싶긴 한데, 정말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어주려고 조심스럽게 수육 한 점을 배추 위에 올리고 김치를 수육 위에 예쁘게 얹는 우리 미국 서방을 보면, 뭔가 엄청난 감정 (이게 바로 사랑이겠지 ㅋ)과 감동이 몰려온다. 타인과의 연결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 부부가 참 자랑스럽고 그렇다. 


디너파티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보쌈 먹는 법 가르쳐주는 내 남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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