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Dec 11. 2023

미국인 시어머니의 코코아

[글루틴 13기 챌린지] 코코아와 시어머니

우리 시어머니는 참 나이스하시다. 한국말로 ‘착하시다’라고 하면 왠지 며느리로서 어색한 표현인 것 같고, 우리 시어머니는 나이스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


사실 미국으로 오면서 이미 미국 문화에 많이 익숙했던 영어교사인 나는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큰 문화충격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와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어마어마한 문화차이를 느꼈고, 시가족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무나도 큰 장벽에 저절로 눈물이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먼저 말하자면 시어머니는 정말 나이스하시고, 내가 편할 수 있도록 많이 챙겨주신다. 지난겨울, 크리스마스 직전에 우리는 시댁에 가서 트리를 장식했다. 플라스틱 트리에 같이 딸려온 오나먼트 (장식구)들을 달아왔던 나로서는 참 희한한 문화였다고 한다. 아니 왜 이걸 1시간이나 운전해서 와서 같이 모여서 하지…? 했는데 정말 남편이 태어나서부터, 우리 시어머니가 태어나서부터 가지고 있던 오나먼트들을 달면서 기억을 회상하고 가족과 얘기하면서 트리를 장식하는 하나의 액티비티여서 그랬던 거였다. 

우리 시댁 트리 - 남편보다 더 큼

참 의미 있는 문화 액티비티 다 좋은데, 난 다리가 너무 아팠다. 오나먼트들도 무슨 세 상자씩이나 있고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남편네 가족의 대화가 꽃을 피우는 바람에 정말 오래 걸렸다. 그리고 내가 다 모르는 친척 얘기를 하니까 정말 그냥 끄덕끄덕 들으면서 오 나이스~ 댓츠 나이스~ 하며 처음에는 영혼이 있었지만 나중엔 영혼 없는 대답으로 변해갔다. 밖에서 바람 좀 쐬려고 하니, 우리 시어머니는 코코아를 끓였다며 나에게 코코아 한잔을 주셨다.

우리 남편 탄생 기념 오나먼트

얼마나 나이스한 시어머니신가. 남편과 코코아 한 잔씩 들고 나와서 찬 바람에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는데, 오 마이갓. 세상에서 그렇게 설탕을 들이부은 코코아는 처음이었다. 이가 아플 정도로 너무 달았다. 마시멜로우까지 많이 넣으셔서 코코아는 죽처럼 진득한 액체였다. 남편이 나의 찡그린 표정을 보자 참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많이 달지…? 우리 가족은 그렇게 먹어….’라고 했다.


우리 시어머니의 단순한 사랑과 관심마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할 수 없는 나를 보니 참 혼란스러웠다. 미국은 컵도 커서 이 어마어마한 양의 코코아를 다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보위 하에 비밀작전으로 코코아를 화장실로 가져가서 버렸다ㅠ 지금 적어놓고 나니 정말 너무 나쁜 며느리가 된 것 같아서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ㅠ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의 ‘내 아들과 아들이 사랑하는 아내가 나의 시크릿 레시피의 코코아를 잘 마셨군’이라는 동심? 이미지를 깨뜨릴 수 없었다.


코코아. 참 단순한 것도 참 어려울 수 있구나 싶다. 이번 겨울에 시어머니가 코코아를 또 끓이시면 어떻게 하지, 참 고민된다. 그냥 ‘당을 끊었어요’라고 해야 되나. 그러면 시어머니 쿠키 못 먹는데. 헤유. 한국이나 미국이나 시댁은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