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Dec 13. 2023

한국에서 온 소포

[글루틴 13기 챌린지]  말린 나물, 건어물, 시, 그리고 곱창김

어제 한국에서 대형 소포가 왔다. 동생이 이것저것 사서 뭘 보내준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클 줄이야. 남편이 거실에 놓았을 때 나는 바로 풀지 않았다. 저 큰 상자를 열면 내가 일 년 반동안 눌러앉고 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쳐 오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온 물건들

한 30분이 지난 후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소포상자를 열었다. 미국 생리대가 너무 거칠다고 말했던 걸 동생이 기억했는지 위에 한국 생리대가 있었고, 역시 한국인스럽게 생리대는 생리대만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다. 상자 안이 찌그러들지 않게 완충재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생리대를 다 걷어내니 아빠의 친환경 예술작품이 나를 맞이했다. 우리 아빠는 주변에 보이는 재활용품을 활용에서 업사이클링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취미신데, 이번에는 우리 부부에 대한 시를 써서 시화를 만드셨다. 나는 아빠의 이런 감성충만한 작품이 참 좋다. 재활용품이라 그런지 아빠의 잔소리도 같이 들린다. 일회용품 자제하자, 지구를 위해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등.

아빠의 판넬 시화

아빠의 큰 판넬시화를 걷어내니, 동생의 선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육개장을 만들면 고사리랑 토란이 없어서 그 맛이 안 난다고 했더니, 마른 고사리랑 마른 토란, 다른 마른 나물들을 엄청 보냈다. 예전에 동생이 보내준 노가리랑 맥주 한잔이 정말 천국 같았다고, 을지로 오비맥주 마시는 느낌이었다고 얘기했었는데, 그걸 기억했나 본지 온갖 건어물을 다 보냈다. 먹태, 쥐포, 진미채 오징어 등. 정말 귀신 들린 듯이 나는 딱 보고 바로 뜯어서 다 하나씩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정말 절대 미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맛, 건어물 맛.

곱창 김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꺼운 사전 같은 게 뭔지 보니, 엄마가 직접 샀다는 곱창 김이었다. 보니까 또 시장에서 파는 게 아니라 진짜로 비싸게 파는 곱창김을 넣었다. 미국에서는 조미김만 팔고, 김밥김도 참 저퀄리티 김이라 곱창김이 너무 그립다고 엄마한테 말했었는데 저 두꺼운 곱창김 사전을 두 개나 보냈다. 하나는 냉동실에 넣고 하나는 열어서 예전에 우리 아빠가 하던 것처럼 유리통 사이즈에 맞게 고이 잘라서 넣었다. 김이 정말 고퀄 김이었던 게, 너무 두꺼워서 아주 조심스럽게 잘라야 했다. 통에 쌓인 김을 흡족스럽게 보고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김 맛을 봤다.

한국인만이 아는 김 통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시집가기 전에,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로 다시 나 자신이 돌아간 것 같았다. 항상 아빠는 다른 반찬통과 함께 곱창김 통을 열었고 엄마가 계란프라이를 가져다주면, 나랑 동생은 곱창김에 밥을 깔고 계란프라이와 김치를 올려서 돌돌 말아 ‘미니김밥이다~’하면서 먹었었다고 한다. 정말 너무 멀었던 기억이 곱창김의 질겅거리는 식감으로 한순간에 돌아와 버렸다. 서로에게 상처도 주기도 했던 나의 가족이지만 정말 근본적인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한 나의 가족.


남편의 품에 안겨 입술에 김 부스러기가 잔뜩 묻은 채로 한 5분 동안 엉엉 울었다. 내일 아침으로는 곱창김으로 미니김밥을 해 먹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